제 3권 : 천지의 본음 57

없지만 있는 수 ‘0’

명수법(命數法)의 기초는 0에서 시작하여 9로 끝나는 열 가지 숫자다. 만일 여기서 0이 빠진다면 인간이 소중히 여기는 개념들이 허물어진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라. 2020과 22의 차이는 크다. 숫자 0이 존재하기 위한 철학적 기초가 우리들의 머릿속에도 있고 가슴속에도 있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보이되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기막힌 변증법적인 개념에 익숙하다. 산스크리트어 ‘슈냐 shunya’는 ‘공’이면서 ‘부재’를 뜻한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나 ‘공즉시색(空卽是色)’ 이라는 말은 불교인이 아니더라도 친숙하다. 우리는 0을 발견하기 위해서 ‘空(공)’이란 개념을 수용한 문화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선가 이런 말도 ..

공사상과 빛운영

초기불교의 공은 번뇌가 ‘비어 있다’거나 어떤 것 혹은 어떤 상태의 ‘부재(不在)’를 의미했다. 붓다 ; 사리불이여, 그대의 모습은 고요하며, 표정은 맑고 빛이 난다. 그대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사리불 ; 스승이시여, 저는 지금 (마음이) 비어 있는 상태 (空, śūnyatā)입니다. 붓다 ; 참으로 좋다, 사리불이여, 그것이 바로 성자의 경지로서 空(공)이라 한다. (Majjima Nikaya) 이 말은 ‘마음에 번뇌나 망상이 없는 상태가 공(空)’이라는 뜻이고, 특히 '심공(心空)'에 대해 말한 것이다. 불교가 말한 ‘심공(心空)’은 우리가 ‘빛운영’과 연계해 ‘빛의 자기화를 위한 명상’을 하면서 순수의식의 주의를 진공에 기울인 상황 - 그리하여 진공빛이 응답해 순수의식에 밝아진 상태 - 와 유사할..

하늘과 통한 빛, 이마에서 나가는 빛

불교가 발생한 이후 약 500년간 인도에서는 불상을 만들지 않았다. 이미 열반에 들어 존재하는 자로서의 의미가 없는 것이 부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불상은 서기전 1세기 무렵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불상이 표현한 모습은 부처라는 존재의 철학적 의미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조형물이라 할 수 있는데, 깨달은 자(Buddha)인 부처는 인간과 다른 32가지의 모습, 80가지의 특징을 가졌다고 이야기되었지만 불상을 만들 때 이것들 모두가 다 적용되지는 않았다. 가장 보편적으로 쓰인 것은 머리에 높이 솟은 육계(肉髻), 이마의 백호(白毫), 둥글게 말린 머리카락인 나발(螺髮), 금색으로 빛나는 신체 등이다. 이 조형들은 모두 부처가 불성 정광명(진공빛)이 석가라는 인생을 옷 입어 응신해 오신 빛의 존재..

뇌에 내려온 빛

진공은 신이 만든 피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비어 있는 자존자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진공, 곧 ‘모습 없는 하늘’(진공)은 ‘하늘들의 하늘’이고 ‘하느님’이 존재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진공빛은 사물이 발한 빛으로 대체될 수 없고, 신앙이라는 마음 활동이 일으킨 정신 성분의 빛과도 동일시되지 말아야 한다. 진공빛은 인생이 마음 활동을 그치고 진공을 바라보는 동안에 그가 거기 존재한 것을 본다. 빛은 빛을 알고, 빛 아닌 것은 알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주체와 객체, 존재와 비존재, 선과 악, 상승과 하강, 완전과 불완전, 속박과 자유의 차별에 관한 탐사 활동을 하고 그것들에 반응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래서 이에 따르는 문제를 극복하고자 척추를 곧추세우고 호흡을 조절하는 훈련도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런 명..

선인장과 신선

​ 백년초는 Cactus / 仙人掌(선인장)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왜 ‘신선의 손바닥’(仙人掌)인가? 선인장의 두드러진 특징은 가시가 많다는 것이다. 손바닥처럼 넓적한 선인장에 바늘같은 가시가 숭숭 돋아나 있다. 그런데 신선의 손바닥이다. 인류사 최초의 신선은 누구냐 하고 생각하고 보니 구약 성서에 나오는 인류의 시조인 남자《히브리 어로 ‘사람’의 뜻》, 아담(Adam)이 떠오른다. 그는 하느님의 동산에 산 사람이다. 神仙(신선)이라는 글자는 神 + 亻 + 山 으로 파자된다. 산(山)에 사는 신령(神)한 사람(亻)이라는 뜻이다. 또 佺(전)이라는 글자는 ‘신선의 이름’이라는 글자인데, 亻 + 全으로 파자되고, 완전한(全) 사람(亻)이라는 뜻이다. 성경에서 아담은 하느님이 살린 생령(神)인 ‘사람’(亻)..

불화의 빛

불교에는 수많은 불보살이 등장하였는데, 모두 비로자나불을 진신(眞身)으로 하여 설법을 위해 응신(應身)한 형식이다. 비로자나는 청정법신(淸靜法身)이라 하여 형상이 없이 계시고 일체중생을 감싸 보호하시는 부처이다. 사찰에서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은 불상이 없이 비워 두는데, 이는 비로자나는 진공을 불격화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비로자나를 모신 법당을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 부르는데, ‘대적광’은 ‘크게 고요한 광명’으로, 진공의 세계가 큰 고요의 세계이자 진공빛의 세계인 것을 말한 것이다. 진공 세계의 큰 고요를 ‘부처가 설법하는 말소리가 없다’하여 ‘무설(無說)’이라고도 부른다. 불국사에 법을 설하는 강당 이름이 무설전(無說殿)인 것도 그런 뜻이다. 비로자나의 산스크리트어는 바이로차나(vairocana)..

성화의 빛

성경의 창세 이야기에서 해와 달은 창조의 넷째 날에 발광체라 하여 낮과 밤에 등장했다. 이 빛은 사물이 낸 빛이니 우리는 편의상 물질 성분의 빛이라고 부를 수 있다. 창조의 마지막 날에 사람이 창조되자 이제 생명체가 마음 활동한 정신 성분의 빛도 있게 되었다. 물론, 신앙심이 낸 빛도 정신 성분이다. 물질이나 정신이 낸 빛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비춰온 빛이 있다. 그림에서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하느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빚고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자 그가 생령이 되었다. 이 표현에서 사람은 피조물이고 사람 안에 넣어진 생기는 조물주 자신의 영원한 생명이다. 생령이 된 아담은 하느님의 빛이 밝은 사람이었다. 그가 만물 중에 가장 밝았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빛은 천지와 사물들도 두루 비추었다. 빛이신 ..

산상수훈 빛으로 읽기

막 45~46. 예수께서...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산에 오르시어 예수께서는 고요하게 계셨다. 모습 없는 하늘처럼 텅 빔 가운데 머무시고, 세상 이전의 태어나지 않은 빛으로 깨어 계셨다. 바라고 구하는 것 없이 하느님께 다가가셨다. 산상수훈은 거기서 나왔다. 마태복음 5장 3절.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 마음 가난은 생각의 중얼거림과 마음의 칭얼댐이 그친 것이다. 그것은 의식 본래의 순수이다. 그것은 하느님이신 원본 빛의 사본인, 빛의 영들이다. 천국은 그들의 것이다. 누가복음 18장 18절~22절. 어느 관리가 물어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아직도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

‘나’를 연속시키는 것

​ 파동역학에서 파동의 간섭은 둘 이상의 파동이 만나 중첩될 때 파동의 진폭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파동의 독립성은 중첩된 후 분리된 각 파동은 중첩 전의 진폭, 파동, 진동수, 속도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진행한다는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이 두 파동 현상이 인생의 마음에서 ‘나 있다는 견해’(我相)가 존속되도록 기회와 에너지를 주고 있는 것에 주목해보자. ‘파동의 간섭’은 다른 파동으로부터 영향받아 변화를 일으킨 것이고, ‘파동의 독립성’은 다른 파동의 영향력에서 분리되어 본래의 자기 상태를 회복하는 것인데, 이 두 파동 현상이 '나'를 존속시킨다니? 이해를 위해 잔잔한 수면에 생긴 동심원이 퍼져 나가다가 다른 동심원과 만나 두 동심원이 중첩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이렇게 두 개 이상..

자기빛에서 초탈하기

우리 마음이 활동한 정신 정서 감정의 파장에는 우리 내면이 띤 진공빛이 밝기 그대로 전사되어 있게 된다. 그리하여 인생들이 한 생각, 말, 글, 그림 등 마음 활동이 만든 저작물들은 그 사람이 띤 빛과 같은 밝기의 빛을 띠고 있게 된다. 어떤 생각인지, 무슨 내용인지, 작품성이 어떤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인생들은 이런 것에 의미를 두지만, 빛은 이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 사람이 밝은 사람이면 그의 마음 활동이 무엇을 하든 그것에는 빛이 담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 사람이 밝은 빛을 띤 사람이면 그가 구구단을 외워도 그 외운 것에 밝은 빛이 복제되어 있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밝지 않으면 그가 좋은 말과 글을 이어 거룩하게 만들어도 그것에 밝은 빛이 담기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어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