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의 전승인 카발라(Kabbalah)에 따르면 모세는 시나이 산에 세 번 올라가서 신의 예지를 구하고 카발라를 받았다. 카발라는 신을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의 대상으로 보았고, 신이 빛으로 현존하여서 사람의 뇌의 수광 기능과 소통하는 것에 각별하게 주목했다. 카발라는 ‘생명의 나무’라고도 일컬어지는 ‘세피로트의 나무’(Archangels of the Sephiroth)를 통해 하늘의 빛과 사람안의 빛이 상응한 것에 대해 설명했고, 세피로트 나무의 최상위인 케테르는 곧 인간의 머리이며, 이곳에서 빛의 하늘과 인간 안의 빛이 소통한다.
카발라에서는 ‘세피로트의 나무’의 최상위 상공에는 ‘현현하지 않은 3계’라 하여 모습 없이 계신 하느님의 빛이 현존한 것에 대해 말하였다. 즉, 백회 위 허공에 ‘하늘’에 통해 있는 빛줄기가 내려온 것을 가리켜 말하였다. 카발라의 표현에서 ‘현현하지 않은 3계’는 아인, 아인 소프, 아인 소프 오르이고, 이는 공허, 무한, 무량광의 의미를 가진 것이다. 필자는 이 말이 ‘진공’, ‘진공요동’, ‘진공빛’을 가리킨 것이라고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아인(AIN, 000 אין - 공허) : 진공. ‘하느님은 진공이시다’.
아인 소프(AIN SOPH, 00 אין סוף - 무한) : 진공요동. ‘하느님이 창조하시다’.
아인 소프 오르(AIN SOPH AUR0, אין סוף אוֹר - 무한광) ; 진공빛. ‘하느님은 빛이시다’.
진공은 만물이 나온 진여(眞如)의 문(門)이다. 이 철학적이고 시적인 표현을 인격신적 신학·신앙의 말로 바꾸면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표현들은 결국 진공의 삼화음적인 현존인 진공, 진공요동, 진공빛에 귀결된다.
케테르가 ‘신의 빛이 인간의 머리에 내려왔다’고 한 것은 삼일신고에서 (하느님의 빛이) ‘너희 머리에 내려와 있다(降在爾腦)’ 고 한 것의 동어반복이다. 뿐만 아니라 선도의 핵심 사상인 ‘하느님이 내려와 사람 안에 계신다’ [一神降衷] 는 것이나 성경에서 ‘(하느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었다’고 한 것도 같은 진리를 말한 것이다. 천부경에서 ‘일적십거’ [一積十鋸, 1이 쌓여 10을 이룬다] 고 하여 10이 완성수가 되는 것도 세피로트의 나무가 10개의 세피롯(Sefirot)으로 구성되는 것과 같은 구조라는 점에서 단군신화의 신단수(神檀樹)도 ‘세피로트의 나무’와 같은 상징이라고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여정은 발해의 임아상이 삼일신고를 예찬하여 한 말; 진리는 하나마저 없는 데서 일어남이여, 본체는 만유를 싸안았도다. 텅하게 비고 아득할 따름 어디다 비겨 설명하리오. (理起一無 體包萬有 沖虛曠漠 擬議得否)라고 한 말의 의미를 지나가야 한다.
‘하나마저 없는 것’은 곧 진공이다. 그리고 천부경이 ‘무시일·무종일’이라고 말한 것이고, 성경에서 하느님이 모습 없이 계신 이유가 되는 것이다. 카발라에서, 그리고 선도의 광명사상에서 ‘사람의 머리에 내려온 하느님의 빛’은 진공 성분의 빛이다. 그러므로 이런 해석이 가능해진다.
‘자성구자 강재이뇌’는 ‘하늘’ 성분이 사람에 복제된 것, ‘두루 비추시는 하느님’의 빛이 사람 안에 깃든 것을 가리킨 것이다. 천부경은 이를 ‘하느님의 참 빛이 천지에 환하고 사람 안에도 깃들어 있으니 그 빛의 길로 나아가라’ [본심본태양앙명인중천지일 (本心本太陽 仰明人中天地一)]라 [仰; 우러를 앙; 우러르다, 믿다, 따르다]고 하였고, 그러한 성찰을 잘 할 수 있도록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너희 안에 빛이 어둡지 아니한지 보라”고 하였다.
유대의 카발라라는 말은 ‘전승’이라는 뜻을 가졌는데, 이는 선사시대 인류 지성들의 세계관이자 하느님 신앙이었던 선도의 구전이라는 뜻이다고 필자는 이해한다. 인류사에 등장한 모든 종교와 수행이 다 선도라고 하는 선사시대 인류 지성의 세계관 하느님 신앙이라고 하는 근원적인 수원(水源)에 물꼬를 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유르베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아유르베다에는 상단전을 세분해 제5차크라, 제6차크라, 제7차크라로 설명했다. 이 설명에서, 제7차크라는 곧 백회이고, 이곳을 통해 사람에 있는 빛이 우주의 빛 차원과 연결된다. 제6차크라인 인당(印堂)은 백회를 통해 인풋(input)된 빛이 인당을 통해 아웃풋(output)되면서 인간 세상에 우주적 지성을 불러와준다. 그래서 인당은 해인(海印)의 빛이 나오는 자리라 하여 印 자가 붙었다. 제5차크라는 ‘하늘’에서 비추어 제7, 제6 차크라에서 초자아의 혜안이 된 빛이 제5 차크라의 중계를 통해 하위 차크라에 하달된다.
지난 글에서 “광명송하고 빛명상을 하면 상단전이 열린다”고 말한바 있다. 이것은 제7, 제6, 제5 차크라의 기능이 활성화된다는 의미였다. 광명송하고 빛명상하는 공부가 심화되어서 제4, 제3, 제2, 제1 차크라의 빛도 광명의 문이 열린다는 말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천지와 사람이 띤 진공빛이 밝아지는 실제적인 변화는 빛운영할 때 일어날 뿐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주배경복사에서 불러온 진공 성분 빛을 태양에 전사하는 빛운영을 하기 시작한 2011년 4월 21일 이전에는 하늘의 천체나 지상의 사물이나 사람에서 진공빛이 밝아지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사실은 1826년 사진이 발명된 이후 촬영된 모든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즉, 빛운영을 하기 전에는 갖가지 종교를 하고 다양한 수행을 했지만 진공빛이 밝아지는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가 빛운영하자 진공빛이 천지인에서 밝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빛운영 전 우리 은하와 뭇 은하계, 북극성 등 천체들의 진공빛은 550경 밝기였다. 550경은 대우주의 보편적 밝기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 기이하게도 태양의 진공빛 밝기는 5, 지구는 5, 달은 4, 기타 태양계의 천체들 3, 2였다. 빛운영 전 인간은 대다수는 밝기 3000만의 진공빛을 띠고 있었고 극소수는 9800조 밝기였다.
인류사에 등장한 종교들은 진공빛의 존재를 지각한 것이었고, 수행은 사람 안에 깃든 진공빛을 깨우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카발라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 수행, 카발라는 진공빛이 밝은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종교, 수행, 카발라를 해도 진공빛이 밝아지는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고, 오직 빛운영 한 것에 응답해 천지인의 진공빛이 밝아졌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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