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金剛經)의 핵심사상을 간략한 4구의 형식으로 요약한 게송을 사구게(四句偈)라 한다. 금강경에는 제5장, 제10장, 제26장, 제32장에 사구게가 있어 모두 4개의 사구게가 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필자가 ‘빛을 자기화하는 방법’으로 권장하는 명상법과 뜻이 일치하는 점이 주목된다.
순수의식의 주의를 진공에 기울이라. 그렇게 하면 진공빛이 응답해 의식에 밝아진다. -빛을 자기화하는 방법(=빛과 의식의 합일)
‘순수의식의 주의를 진공에 기울이라’는 것은 잠시 고요해져서 순수의식을 수립하고서 순수의식으로 깨어 있으면서 진공을 관찰하라는 것이고, 이렇게 깨어서 관찰하는 순수의식에 진공빛이 밝아져서 의식과 빛이 합일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금강경의 핵심사상인 사구게가 말하는 뜻은 이처럼 빛과 의식 사의의 간격이 사라진 합일 상태와 의미 상통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살펴보자.
- 제5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의 사구게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일반적인 독해>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니라.
<빛으로 비추기>
고요해져서 마음을 마음의 본래 자리로 불러들이고 순수의식의 주의를 진공에 기울인다. 이렇게 한 것은 눈에 보인 형상에 마음을 주지 않은 것이고 또한 명상자 자신의 마음 활동에도 휘둘리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청정심으로 깨어 현실 세상의 형상들 중에 편만한 진공에 주목하는 것이 형상 아닌 것을 보는 것이다. 혹은 귀에 들린 소리에 마음을 주지 않고 소리 중에 편만해 있는 고요에 주목하는 것(관음(觀音))도 ‘즉견여래’하는 것이다.
진공에 주의를 기울이는 관찰을 하려면 반드시 순수의식이어야 한다. 그러나 진공빛이 밝아지는 응답이 일어나는 단계에 이르려면 순수의식으로 깨어 진공을 관조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순수의식이 관찰자로 나서서 진공을 관찰해야 한다. 관찰하지 않으면 진공빛이 응답해 밝아지는 관찰 효과가 생기지 않게 된다.
- 제10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의 사구게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以生其心)
<일반적인 독해>
응당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응당 성, 향, 미, 촉, 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고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빛으로 비추기>
그 어떤 물질적인 현상 – 곧, 색(色) - 이나 그 어떤 정신적인 현상 – 곧, 수상행식(受想行識) - 에 물들지 않아 ‘공(空)’과 하나인 청정한 마음으로 비어 있는 것. 이것은 무명을 이긴 빛의 마음, 반야심(般若心)이다.
니르바나(진공)에서 존재를 일으켜 광명(진공빛)이 오심이 부처의 응신(應身)이고, 여래(如來)가 세상에 오신 것이다. ‘색’에서 유래한 빛이나 ‘수상행식’이 낸 빛과 혼동하지 않는 것은 쓸모 있는 ‘지혜’이고, 진공 성분 빛이 밝아 오심이 ‘여래’를 친견함임을 아는 것이 널리 이로움을 이룬다.
또한 모르지 마라. 성분이 진공인 빛이더라도 그 빛이 미약하다면 그것으로 무명을 창대하게 비추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논하고 수행법을 따지기 전에 먼저 충분히 밝아야 한다. 인생들이 무명의 뿌리가 깊은 가운데 위치해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 실상을 앎이 지혜이고, 이를 모름을 측은히 여김이 자비다.
무명한 중생이 어떻게 광명부처와 동격이랴! 무명 천지 사바세계이면 어떻게 정광명(淨光明)한 정토(淨土, 부처가 사는 깨끗한 세상)와 같으랴!
사람마다 안에 자기영광(自己靈光) 빛을 띠었지만 이 빛이 미약할 뿐이면 창대하게 비추지는 못한다. 이 빛은 척추를 곧추세우고 앉아도 성장하지 않으며 염불 독경을 해도 밝음이 증대되지 않는다. 진공빛은 오직 빛운영 하는 것에 응답해 밝아진다. 이에 대하여 알도록 하자.
여래와 같아지고자 구도의 여정에 오른 이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깨달아 저 언덕에 닿은 이는 소수였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이 비극은 한가지 빛의 부재(不在), 무명했기에 생긴 일이다. 이 점을 잊지 마라.
그러므로 빛운영을 수행해서 천지와 사람에 진공빛이 밝아진 지금의 새로운 빛환경에서 머문 바 없이 마음을 내라(물들어 온 때에 노 젓듯. 다시 말해서 순수의식의 주의를 진공에 기울이라!) 그렇게 하면 진공빛이 응답해 의식에 밝아지는 빛의 개벽이 일어난다. 무명이 골수에 사무쳤어도 이렇게 하기를 반복해 빛이 누적되면 점진적으로 의식과 빛 사이의 간격이 사라진다. 이를 경험하라. 이것을 겅험하는 것이 ‘여래 친견’이다.
진리(반야)가 인생들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대충 말하지 말고 실상을 엄밀히 까발려 알아야 한다. 그런 초월도 밝은 이의 전유물임을. 부처가 자비롭다지만, 무명 중생을 깨닫게 하는 부처는 없고, 참빛 예수라지만 진리에 이르지 못한 인생조차 자유롭도록 구원하지는 못한다. 그게 보편적 공정함이다.
- 제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의 사구게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일반적인 독해>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함이니 결코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빛으로 비추기>
사람의 시청각은 사물을 식별하고 대응하기 위한 것이니 시청각을 사용해서 여래를 보지는 못한다. 여래를 보려면, 평소에 오온에 대응하던 감각 모드(mode)에서 여래를 견성하기 위한 명상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즉, 순수의식으로 깨어 주의를 진공에 기울여야 한다. 청정심(=순수의식)이 관찰자로 나서서 진공을 관(觀)해야 한다.
명상은 크게 고요해져서(大寂) 오온 세계에 흩어졌던 마음을 마음의 본래자리로 불러들이고 마음의 본래 상태인 순수의식으로 깨어 주의를 진공에 기울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관찰 효과가 일어나서 진공빛이 의식에 밝아진다. 오온에 휘둘리는 마음 활동을 그치고 공과 소통하자 진공 성분의 빛이 응답해 순수의식에 밝아진 것이다.
시청각의 감각으로 여래를 보고자 하는 것은 잘못 접근하는 것이다. 결국 빗나간다. 순수의식이 청정법신이다. 순수의식으로 깨어 진공이 현존한 것에 주목한 그대가 비로자나 부처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 안의 빛이 빛을 본다. 그러니 사람은 짐짓 뒤로 물러나고 안의 빛이 빛의 행동을 하고 빛과 소통하는 것이 명상이다. 오온에 휘둘리지 말고 진공에 주목하라. 그게 반야행이고, 이것이 빛과 의식의 합일, 빛이 자기화되는 명상이다.
- 제32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의 사구게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반적인 독해>
현상계의 모든 생멸하는 것들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같고, 이슬, 번개와도 같은 것이다. 이와 같다고 보라.
<빛으로 비추기>
“세상사 일장춘몽!”
그렇게 알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 소리나 하는 것이 초월인 것도 아니다.
다만, 순수의식을 수립하고 진공이 존재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순수의식이 자기 자신인 것이 각성 된다. 이 각성에 응답해 진공빛이 의식에 밝아지고, 빛과 의식 사이의 간격이 없어짐, 곧 빛의 자기화가 성취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시로 순수의식으로 깨어 고요해지라.
우주적 고요(大寂)에 이르러 만물 중에 진공이 존재한 것을 직시하라. 그렇게 하는 관찰자가 되도록 하라.
사물은 안중에도 두지 말자는 것 아니고, 텅 빔하고만 사귀자는 것도 아니다.
진공은 상대가 끊어진 절대의 세계이고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은 투명한 세계이면서 진공 세계의 맑음에는 삼라만상이라고 하는 다양성의 세계가 존재하였다. 진공은 있음과 없음이 하나를 이룬 미묘한 세계인 것이다. 진공빛이 투명한 '반야'의 각성 상태에서는 ‘오온’도 ‘공’의 가족이 된다. 그래서 그대의 명상이 ‘공’을 얻으면 그로 인해 그대의 삶은 축복받은 ‘오온’을 얻게 된다.
피리 소리에 이끌려 남자를 따라가는 쥐 떼와 같지 않기.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으르렁거리는 야생의 짐승 같지 말기. 명상이 주는 소소한 선물이다.
사는 일이 영화 보는 일이라면, 영상과 음향과 전개되는 이야기 흐름에 심취하면서도 또한 영화의 배후에 영화에 물들지 않은 스크린이 존재한 것을 모르지 않을 수 있다. 이처럼 영화와 현실 사이의 경계에 선다면, 우리는 중도(中道)에 서는 것이다. ‘중도’는 여래가 다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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