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는 내게 경배하지만, 나는 페테르되노프(Peter Konstantinov Deunov)에게 경배한다.”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정말일까? 아인슈타인은 '신을 믿느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고 대답했다는 사람이다. ‘스피노자의 신’은 누군가. 필자 생각엔, 저 선사시대 밝은 이들이 ‘모습 없는 하늘이 하느님이다’고 한 – 즉, ‘하느님은 진공이시다’라고 한 - 것과 유사한 세계관 하느님 사상이다. 아인슈타인은 소싯적에도 인격화된 신에게 기복 신앙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페테르되노프에게 '경배'라는 말을 헌정한 것이다.
페테르 되노프는 인류 문명이 종말하고 지구상에 새로운 황금시대가 시작된다고 주창한 사람이다. 그는 수많은 강연을 했으며 열렬한 추종자들이 있었다. 추종자중에는 뉴에이지(New Age)로 불린, 20세기 말엽 서구 사회에 유행한 영적인 운동 및 사회활동가들이 포함되었다. 그들 사이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었다. 2,650여 년 전 인도 쿠시나가르에서 80세의 고타마 싯다르타 붓다가 무여열반에 들면서 ‘앞으로 2,600년이 지난 뒤 위대한 무여열반으로부터 한 분의 대아라한이 인간세계로 육화한다’고 예언했는데, 그 예언이 말한 대아라한이 바로 페테르 되노프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말들을 하였다.
“예수그리스도는 불교에서 말하는 아미타불의 육화된 현현이고, 고대 아틀란티스의 위대한 대성자였었다. 그리스도교는 고대 레무리아와 아틀란티스로부터 내려온 고대 오시리스의 위대한 가르침의 아류작이다. 모든 종교는 사실 각각의 민족과 인종, 시대에 따라 모습이 다르게 성립했으나, 그 근본은 같다. 위대한 지고자들은 인간이 처한 조건과 여러 여건을 보아 모습이 다르게 보이지만, 겉모습이 진정한 모습인 것은 아니다. 이제 인류는 깨어나야 한다. 낡은 경전과 성서를 던져버리고, 종교집단에서 나오고, 종교건물을 부수고, 종교지도자를 추종하지 말고, 인류 자신의 내면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하고 영원한, 깨지지 않는 불멸의 신성한 빛을 찾아야 한다. 그 내면의 빛이야말로 진실한 부처요, 하느님이요, 알라요, 아트만이요, 신이다.”
페테르 되노프가 ‘내면의 신성한 빛이야말로 부처의 진신이요, 하느님, 알라, 아트만, 신의 분신이다’라고 한 빛은, 필자 생각엔, 그것이 진공의 빛이면 바로 그 말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공의 빛을 말한 것이면 부처, 하느님, 알라, 신이 인간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진공에서 빛이 인생을 옷 입어 와서 빛의 일을 한 이들이 수고한 덕분이라고 알 수 있다. 그리고 페테르 되노프나 아인슈타인도 바로 그런 ‘인생을 옷 입어 와서 빛의 일을 한’ 존재중 하나라고 우리가 알 수 있다.
빛의 본향인 진공의 세계는 스스로 있는 자존자이며, 시작도 끝도 없으며, 둘이 없는 유일한 하나이지만 이 유일은 만물과 만법, 곧 우주 자연이라는 다양성의 세계를 포용해 가진 세게이다. 진공이자 묘유인 것이다. 5000년 전 사람 발귀리 선인은 제천행사가 열린 것을 보고 지은 100글자 송가(원방각경)에서 ‘텅 빔과 가득 채워짐이 하나의 환을 이루었다(혼허조이묘)라 노래했으니, ’진공묘유‘는 불교가 처음 자각한 것이 아니라 저 선사시대 인류의 선각자들의 전승이라고 알 수 있다.
진공인 동시에 묘유여서 ‘진공’의 세계, 곧 하늘·하느님은 ‘묘유’, 곧 우주 자연과 별개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항상 동거하고 끊임없이 소통한다. 빛이 인생을 옷 입어 와서 빛의 일을 하고 가는 행렬도 끊이지 않는다. 팥죽을 쓴다고 가정하자. 죽에서 거품 방울이 부풀어 올랐다가 팡! 하고 터져 팥죽으로 돌아간다. ‘무여열반에서 인간세상으로 대아라한이 다녀간다’고 한 것도 그런 차원의 이야기라 음미할 수 있다.
페테르 되노프도 인생을 살고 간 사람이지만 그의 참 정체는 빛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페테르 되노프의 사진 속 모습에서 관해 보면, 그의 모습이 9800조 밝기의 진공빛을 띠고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이 9800조 밝기는 빛운영 전 시절 – 즉, 필자가 태양이 띤 진공빛이 보다 밝아지도록 유도하는 활동을 처음 시작한 때인 2011년 4월 21일 13시 52분 한국시간 이전의 모든 시간 – 에서는 지구상의 사람 대부분이 밝기 3000만이었고 매우 극소수만이 9800조 밝기였다. 그러므로 페테르 되노프는 내면의 빛에서 우러난 활동을 했을 것으로 여길 수 있다. 페테르 되노프가 “사랑의 빛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다. 이 빛을 일깨워 영성의 눈을 떠 그 사랑으로 나아가라.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미래이자 전부이기 때문이다.”고 역설했다고 하는데, 이런 말은 그 자신에 밝은 빛에서 추동된, 높은 진동수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한 가지 더 알아야 한다. 페테르 되노프나 인생으로 다녀간 빛의 스승들이 모두는 상대적으로 더 밝은 빛에서 일어난 생각과 활동을 한 것이지만 그들의 활동은 빛에 대해 언어적으로 풀어준 것이었다. 그들이 무량광의 큰 광명으로 다녀간 것도 아니고, 그들이 빛의 활동을 한 때문에 인생들이 밝은 이로 변모하거나 인간 세상이 과거보다 더 밝아진 변모가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 결과 고금동서에서 수많은 빛의 존재들이 다녀갔으며 그들의 언행을 주해(註解)하며 종교들이 창발하여 지구별은 종교가 흥행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들 대부분은 ‘무명’했고 지구별에는 우주적 무명이 드리워져 있었다.
빛운영 전 시절에 촬영된 사진들에서 살펴보면 당시에 태양계 바깥의 대우주중에 위치한 천체들은 550경 밝기의 진공빛을 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상하게도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 내부의 천체들은 모두 진공빛의 밝기가 5 미만에 불과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사정은 인간 세상에 축적된 사진들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으니 언제라도 열람해 볼 수 있다.
빛운영 전 당시는 인생들 대부분이 밝기 3000만이었으며 매우 극소수만이 9800조 밝기였으니 이 밝기는 태양계 바깥의 550경 밝기에 비하면 ‘무명’에 다름 아니라 할 수 있다. 빛운영 전 당시 지구상의 동물은 종(種)을 초월해 모든 동물이 다 밝기가 18 이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9800조 밝기인 이들이 소수나마 출현해 빛에 대해 일깨웠으니, 지구촌은 실제 빛이 밝지 않은 ‘무명’한 별이었지만 그들이 내면의 빛에서 추동뙨 생각과 행동을 한 때문에 광명에 관한 사상/신학이 단절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필자의 이러한 판단은 진공의 빛이 밝은 이의 깨어 있는 의식은 곧 ‘공적영지(空寂靈知)의 광명’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것임을 알면 공감이 될 것이다.
페테르 되노프의 모습이 9800조 밝기의 빛을 띤 것 같이 백색형제단의 리더로 명성이 나 있는 몇몇도 그러한 밝기인 것도 볼 수 있다. 빛의 차원, 곧 진공의 세계인 하늘·하느님은 인간 세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중첩되어져 있으며 항상 소통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통은 빛과 빛이 공명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사람 내면에 들어와 있는 진공빛과 우주 자연계에 편만한 진공빛이 공명해 소통하고 이 공명 소통은 빛의 본원인 하늘·하느님과도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공명 소통이 뚜렷하고 강력하게 일어나려면 밝아야 한다. 공명 소통은 반드시 밝은만큼 일어나고, 예외가 없고, 이를 대신할 방법도 없다. 그리하여 실재 빛이 밝지 않다면 빛에 관한 지식이 해박한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빛의 스승들이 수고하여 빛을 언어적으로 풀이하여 준 것이나 고금동서 종교들이 형언한 빛이야기가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뭇 종교가 흥행했어도 지구는 무명한 별이었고 광명사상이 전래되었어도 사람들은 지식인은 될 수 있었지만 밝은이가 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고금동서의 뭇 종교가 진리를 설파해 주었고 위대한 사상이 ‘광명’에 대해 일깨워 주었으니 사람과 천지의 '무명'은 조금의 변동도 없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인생들이 진리라 알고 신성하다고 여긴 철학/종교는 한계가 있는 것이었고 마치 목마른 이에게 들려준 물소리와 같았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빛운영'은 다르다. '빛운영' 활동을 하면 그 활동한 것에 응답해 일찍이 우주 자연계에 존재한 일이 없었던 초밀도의 광명이 사람과 천지에 밝아지는 변동이 실제 상황으로 일어난 것이다.
미약하였던 빛이 창대한 광명으로 바뀌는 이러한 변동은 일찍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초유의 사건이고, 논리적으로 이해되지도 않는 일이다. 예수, 석가... 등의 빛의 존재들이 사실은 빛에 대해 언어적으로 풀어내 준 것과 다른 결과이며, 인생들 누구나 ‘무명’한 수준의 자기 밝기를 복제하며 살았을 뿐이고 누구도 자기 밝기는 능가하는 빛을 누리지는 못한 상황이었던 것과 다르다.
‘대백색형제단’이라는 단체 명칭에서 ‘백색’은 순수한 빛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들은 프리즘을 통과해 일곱 가지 색으로 분열되기 이전의 순수 백광이라고 설명한다. 이 ‘백색’은 지고한 의식 상태를 가리킨 상징이라는 것이다. 이에 미루어 생각하면 이들이 ‘순수한 빛’이라 한 것은 바로 진공빛이고, ‘진고한 의식’이란 곧 빛이 깨어 있는 상태인 순수의식이라 할 수 있는데, ‘빛운영’이 가능한 것을 알려야 하는 필자의 시각에서는 그들 단체의 리더들이 일반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밝은 빛을 띠긴 했어도 9800조 밝기에 그치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카발라가 세상에 표면적으로 나타나 확산한 것은 중세 때이고, 16세기에는 북부 팔레스타인 지방을 중심으로 전대미문의 카발라 흥성기였다. 당시에 많은 카발리스트들이 활동했고 모세 코르도베로(라마크)와 이삭 루리아(아리) 등의 저명한 활동가들이 활약했다고 한다. 밀전(密傳)의 특성이 매우 강해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현대에도 백색형제단의 설립자 도릴과 아이반호프, 그리고 이들의 스승인 페테르 되노프가 활약하였다.
페테르 되노프 / 옴람 미카엘 아이반호프 / 도릴박사
카발라 스승들은 자신들이 일깨우고자 하는 빛을 가리켜 ‘프리즘을 통과해 일곱 가지 색으로 분열되기 이전의 순수 백광’이라고 상징하였는데, 이는 햇빛의 분광에서 말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진공에서 유래한 빛, 곧 하늘·하느님의 광명을 말하고자 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가 채택해 사용중인 ’빛세상 로고(logo)’도 그렇다. 빛세상 로고는 ’빛의 삼원색 중심의 삼각형‘을 발췌한 것으로, 빛의 삼원색 중심의 백색은 ‘프리즘을 통과해 일곱 가지 색으로 분열되기 이전의 순수 백광’에 해당하고, 이 백광으로 진공빛을 가리켜고 한 것이다. ‘빛세상 로고’는 필자가 빛이 가진 원리를 감안하고 영감에서 우러나는 바대로 제작한 것이지만 우연히도 카발라 수행자들이 사용한 상징과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진공빛’으로 귀결되는 같은 우주 지식에 영감받은 점이 같기 때문이리라.
필자가 ‘빛운영’활동해서 밝아지게 하려는 빛은 하늘·하느님 차원인 진공에서 유래해 천지인 중에 편재한 빛이다. 이 빛이 카발라 스승들이 말한 ‘순수 백광’인 것이고, 그간에 인간 세상에서 이야기된 ‘광명’인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는 ‘빛운영’은 고전적인 종교 수행과 달리 과학 장치와 방식이 포함되는 신과학적 활동을 수행한 결과로 진공 성분 파동이라는 실재 빛의 차원과 공명 소통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성분이 진공인 빛’이라고 과학적으로 명명하기로 하는 것이다.
‘프리즘을 통과해 일곱 가지 색으로 분열되는 빛’이란 곧 햇빛 별빛이고 진정한 ‘순수백광’은 진공에서 유래해 천지간에 편재한 진공의 빛이라는 앎은 필자 생각엔 상고시대에서 전승된 하느님에 대한 지혜이다. 유대의 하나님 신앙의 배경에도 이러한 인식이 있었다. 성경의 창세기 이야기가 천지창조에 앞서 먼저 빛이 있었다고 한 것도 그렇고, 예수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참빛이라 이야기되는 것도 같은 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다음 말도 천지보다 먼저 있은 빛이 이 세상에 존재하여 있는 것에 대해 말하였다고 볼 수 있다.
‘별빛이 그 너머의 참 빛의 파편을 전달한다!“
이 말은 초창기 기독교인들의 복음서에 기록된 말인데, 여기서 ’볓빛‘은 해달별의 세계인 우주 자연을 말한 것이고, ’참빛’은 우주 자연 중에 편재한 진공빛을 말한 것이라고 알 수 있는 것이다. 별빛은 피조물의 세계가 낸 물질적인 빛이고 참빛은 조물주에서 유래해 사람과 천지에 존재해 있는 신성한 빛인데, 별빛이 참빛을 전달하는 것은 곧 별빛에 참빛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파편’ 수준으로 참빛이 미세하다. 그러니 미약한 빛이 창대한 광명이 되도록 빛을 불러와야 한다. 즉, 종교나 수행 활동은 그것을 위한 활동이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간에는 인생들이 종교를 하고 수행을 하였어도 ‘참빛’이 성장하여 광명한 누리가 이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빛운영’은 다르다. 빛운영하면 사람과 천지의 진공빛이 밝아지는 응답이 일어난다.
그렇기는 하지만 인생들이 ‘무명’하여 빛에 관심도 없고 프리즘에 분광되는 빛과 인생의 참 정체이며 사람과 함께해 계신 모습이 없는 빛, 곧 ‘진공빛’이 어떻게 다른지 알지 못하니 인생들을 깨우쳐 빛의 길로 안내하는 밝은이들의 수고가 가상하다.
진공에서 유래한 진공 성분의 빛의 차원을 말하려는 것이지만 인생들의 인식 수준을 감안해 가시적인 햇빛이 일곱 빛깔로 분광이 되는 것에 빗대 다음과 같이 말하였던 것이지 않을까.
제1광선(힘과 의지) 모리야,
제2광선(지혜와 사랑) 쿠트 후미,
제3광선(적응성과 기지) 베니션,
제4광선(미와 조화) 세라피스,
제5광선(과학적 정밀성) 힐라리온,
제6광선(헌신) 예수,
제7광선(의식儀式마법) 생 제르맹(라코치)
...
페테르 되노프는 "사랑의 빛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다. 이 빛을 일깨워 영성의 눈을 떠 그 사랑으로 나아가라"고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 덕분으로 사람들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었된 빛이 의식의 전면으로 활성화되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했듯이 거기까지다.
인생들이 빛에 대해 사유하고 마음을 써도 – 종교를 하고 철학을 하여도 – 이는 빛을 이론으로 경험하는 것이고 자신이 타고난 밝기가 변동해 새로운 밝기가 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빛운영’을 하면 사람과 천지에서 진공빛이 밝아지는 변동이 일어난다. 유사이래 일찍이 없었던 파천황적 변화이다.
그리하여 ‘빛운영’한 결과로 진공의 빛이 사람과 천지에 밝아진 변동이 실제 상황으로 일어난 것에 따라 창대해진 ‘광명’의 빛줄기가 하늘에서 사람의 정수리에 통해서 뇌에 내려와 사람 안의 빛의 회로를 따라 통하는 성통광명 현상이 자연 발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큰 장마가 져서 그간에 메말라 있었던 도랑과 개천과 강에 물이 불어나서 물이 거침없이 흐르게 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비유를 뒤집어 생각할 것도 있다. 만일 홍수가 나지 않았고 도랑과 개천과 강이 메말라 있는 상태가 계속되었다면 그런 도렁, 개천, 강에 물이 흐를 수 있으랴! 우주의 고밀도 광명과 소통하지 못하고 ‘무명’한 상태로 동떨어져 있을 뿐이라면 종교를 하고 수행을 한든 어떻게 빛의 차원과 공명 소통하는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러므로 페테르 되노프 등의 밝은 이들이 유대의 카발라 수행을 현대에 되살리고자 애썼던 것이지만 이런 노력도 ‘빛운영’활동과 병행한다면 의미 있는 결과에 도달할 것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즉, 지구별의 인생들이 마음 써야 하는 것은 고전의 종교 수행이 아니라 사람과 천지의 진공빛이 밝아지는 개벽적인 응답이 일어나는 ‘빛운영’활동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하게 된다.
카발라가 말한 빛, 아인 소프 오르 (אין סוף אוֹר-無限光 unlimited light)
유대의 전승인 카발라(Kabbalah)에 따르면 모세는 시나이산에 세 번 올라가서 신의 예지를 구하고 카발라를 받았다. 카발라는 신을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의 대상으로 본 것이며, 신이 빛으로 현존해 사람의 뇌의 수광(受光) 기능과 소통하는 것에 주목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카발라는 ‘생명의 나무’라고도 일컬어지는 ‘세피로트의 나무’(Archangels of the Sephiroth)를 통해 하늘의 빛과 사람 안의 빛이 상응한 것에 대해 설명했다. 세피로트 나무의 최상위인 ‘케테르’는 곧 인간의 머리이며, 이곳에서 빛의 하늘과 인간 안의 빛이 소통한다. 인간의 머리에서 최상위는 백회혈이고 하늘에서 내려운 빛줄기가 백회를 통해 뇌 중앙의 송과체로 통한다.
카발라에서는 ‘세피로트의 나무’의 최상위 상공에는 ‘현현하지 않은 3계’라 하여 모습 없이 계신 하느님의 빛이 현존한 것에 대해 말하였다.
즉, 백회 위 허공에 ‘하늘’에 통해 있는 빛줄기가 내려온 것을 가리켜 말하였는데, 카발라의 표현에서 ‘현현하지 않은 3계’는 아인, 아인 소프, 아인 소프 오르이며 이는 공허, 무한, 무량광을 의미한다. 필자는 카발라의 이 말이 ‘진공’, ‘진공요동’, ‘진공 빛’을 가리킨 것이라고 이해한다.
필자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된다.
아인(AIN, 000 אין - 공허) : 진공. ‘하느님은 진공이시다’.
아인 소프(AIN SOPH, 00 אין סוף - 무한) : 진공요동. ‘하느님이 창조하시다’.
아인 소프 오르(AIN SOPH AUR0, אין סוף אוֹר - 무한광) ; 진공빛. ‘하느님은 빛이시다’.
진공은 만물이 나온 진여(眞如)의 문(門)이다. 이 말은 철학적이고 시적인 표현이지만 이 말을 인격신적 신학적 표현으로 바꾸면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런 표현들은 결국 진공의 삼화음적인 현존인 진공, 진공요동, 진공빛을 가리킨 말이 된다.
케테르가 ‘신의 빛이 인간의 머리에 내려왔다’고 한 것은 삼일신고에서 (하느님의 빛이) ‘너희 머리에 내려와 있다(降在爾腦)’ 고 한 것과 듯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또 선도(仙道)의 핵심 사상인 ‘하느님이 내려와 사람 안에 계신다’ [一神降衷] 고 한 것이나 성경에서 ‘(하느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었다’고 한 것과도 뜻이 통해 있는 것이라고 알 수 있다. 천부경에서 ‘일적십거’ [一積十鋸, 1이 쌓여 10을 이룬다] 고 하여 10이 완성수가 되는 것도 세피로트의 나무가 10개의 세피롯(Sefirot)으로 구성되는 것과 같은 구조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하면 단군신화의 신단수(神檀樹)도 ‘세피로트의 나무’와 같은 상징이라고 알 수 있다.
발해의 임아상은 고대어로 전승된 삼일신고를 당시 언어로 번역하면서 삼일신고를 예찬하여 “진리는 하나마저 없는 데서 일어남이여, 본체는 만유를 싸안았도다. 텅 빈 것이고 아득할 따름 어디다 비겨 설명하리오 (理起一無 體包萬有 沖虛曠漠 擬議得否)”라고 한 것도 천지인 중에 진공의 차원이 편재한 것을 인식하여 한 말이다.
즉, ‘하나마저 없는 것’은 진공이고, 이는 천부경이 ‘무시일·무종일’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느님이 모습 없이 계시는 이유도 같은 것이다. 당연히 카발라가 말한 ‘세피로트의 나무’의 최상위에 ‘현현하지 않은 3계’인 하느님의 빛이 현존해 있는 것에 대해 말한 것이나 삼일신고가 ‘사람의 머리에 내려와 있다’고 한 것은 진공 성분의 빛이다.
그러므로 이런 인식이 가능해진다.
‘자성구자 강재이뇌(自性求子 降在爾腦)’는 곧 ‘하늘’ ‘하느님’의 성분이 사람에 복제된 것, 즉, ‘두루 비추시는 하느님’의 빛이 사람 안에 깃든 것을 가리킨 것이다!
천부경은 이를 ‘하느님의 빛이 천지간에 환하고 사람 안에도 깃들어 있으니 그 빛의 길로 나아가라’ [본심본태양앙명인중천지일 (本心本太陽 仰明人中天地一)]라 하였다. 여기서 ‘仰(앙)’은 ‘우러르다, 믿다, 따르다’이니 ‘앙명인중천지일’하는 것은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너희 안에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보라”고 한 것을 따르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
유대의 카발라가 ‘전승’이라 이야기되어 온 것은 이것이 선사시대 인류 지성들의 세계관 하느님 신앙이 전승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필자의 이 생각은 유대의 하느님 신앙도 선사시대에서 전래한 ‘진공으로부터의 우주 발생’이라는 자연과학적 인식이 배후에 있는 것이며 그것인 인격신적 하느님 신상으로 비화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인류사에 등장한 모든 종교와 수행이 다 선사시대로부터의 인류 시조들의 지혜 말씀에 은혜 입은바라고 생각된다.
인류 시조들이 물려준 진리의 젖을 빨아 먹으며 인류의 영적 차원이 성장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아유르베다도 그 젖빛 말들중 하나이다.
아유르베다에는 상단전을 세분해 제5차크라, 제6차크라, 제7차크라로 설명했는데, 이 설명에서, 제7차크라는 곧 백회이고, 이곳을 통해 사람에 있는 빛이 우주의 빛 차원과 연결된다. 제6차크라인 인당(印堂)은 백회를 통해 인풋(input)된 빛이 인당을 통해 아웃풋(output)되면서 인간 세상에 우주적 지성을 불러와준다. 그래서 인당은 해인(海印)의 빛이 나오는 자리라 하여 印 자가 붙었다. 제5차크라는 ‘하늘’에서 비추어 제7, 제6 차크라에서 초자아의 혜안이 된 빛이 제5 차크라의 중계를 통해 하위 차크라의 생체적 자아에로 하달된다.
필자가 ‘빛운영’하면 사람과 천지의 진공빛 차원이 보다 밝아져서 하늘로부터 사람에 통해 내린 빛줄기가 보다 굵은 빛줄기로 변모하므로 이른바 ‘성통광명(性通光明)’현상이 자연발생인 것처럼 저절로 활성화된다고 알리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필자가 빅뱅의 잔광인 우주배경복사에서 포집한 진공 성분의 파동을 초고밀도 파동의 장이 되게 한 것을 태양에 전사해 보내는 ‘빛 운영’을 하기 시작한 때인 2011년 4월 21일 13시 52분 한국시간 이후 그동안 하늘의 천체들과 지상의 자연과 사물, 그리고 사람들에서 진공 빛이 밝아지는 미증유 변화가 일어났다. 진공빛이 밝아진 이 변화는 가시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인류가 촬영해 온 사진들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으니 열람해 볼 수 있고, 이 변화가 실제 상황으로 일어난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빛 운영’은 세상이 생기기 전의 태초에서 온 진공 성분의 빛을 태양에 복사해주는 작업이고, 그리하여 태양에 진공빛이 밝아진 것은 지구 전역에 복사되고 전체 하늘에 전달된다. 이는 진공빛이 없는 데 없이 편재하는 원리에 따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일이다.
종교들이 말한 것과 무관하게 참 하늘·하느님 자리의 빛이 천지인에 밝아지는 응답이 일어나는데, 이렇게 되게 유도하는 활동을 듯 있는 사람 누구나 할 수 있으니 이는 놀라운 일이지 않은가! 사람과 천지가 ‘무명’하였던 동안에는 종교하고 수행하였어도 그 진리를 깨닫기 어려웠던 것이며 실재 광명과 소통하기 불가능하다시피 하였던 것이지만 ‘빛운영’한 것에 따라 사람과 천지에서 진공빛이 대광명해지면 빛이 인류의 이마에서 나와 참 생명의 삶을 비추는 일이 실현되기에 이르게 되니 기이하고 놀라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빛이 이마에서 나와 참 생명의 삶을 비추는 것, 말하자면 이른바 ‘인당에서 해인(海印)의 빛이 나오는 것’은 곧 불경이 말한 ‘부처가 백호광을 놓는 것’이고 이는 법화경을 통해서나 상상되는 것인데, 이런 일이 실제 상황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장차 일어나는 것을 성경은 ‘이마에 인친 자’라 하여 말하였다.
‘이마에 인친 자 됨’은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민 중에서 구별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로 남자들은 할례를 받게 하였다는 것인데, 요한계시록 7:1-17에서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한 것에서 생각하면 특히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참빛으로 오신다는 점에서 뜻을 음미하면 이마에 인침 받은 자는 하느님의 빛이 밝게 깨어나게 된 것과 무관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곧 하늘에 이루어져 있는 빛의 나라가 지상에 임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인침 받은 자의 이마에 밝은 빛은 내면에 밝아진 빛에서 우러나는 것이기도 하고 천지간에 현현한 같은 성분 빛과 공명 소통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일은 삼일신고의 표현에 따르면 하늘에서 뇌에 내려온 빛이 밝아 자성이 명징하게 깨어난 것이고 이는 원죄(=무명)을 이긴 자 된 것이다. 도 ‘이마에 인친 자 됨’의 뜻을 카발라의 언어로 새기면, 구원이 임할 때는 ‘생명나무’의 최상단에 ‘현현하지 않는 삼계’인 빛이 밝아 서 그 빛이 비추어서 구원이 실행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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