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권 : 천지의 본음/1부 2장

마고신화의 ‘오금을 귀에 걸어 음을 듣다’

능 소 2022. 8. 18. 14:01

 
  
 
부도지는 마고성의 네 천인이 성의 사방에 관을 쌓아 음을 만들었고 사람들이 오금을 귀에 걸어 음을 들었다고 전한다. 그러던 중 마고성 사람들이 포도를 먹어 본래의 성정을 잃게 되는, 큰 변고가 일어나게 된다.
 
처음 포도를 먹은 것은 백소씨족의 지소씨였다. 그는 어느 날 지유(地乳)를 마시려고 샘에 갔다가 사람은 많고 샘은 작아서 자기 차례를 양보하기를 다섯 차례나 하다가 끝내 마시지 못하고 자기가 집무를 보는 소(巢)로 돌아왔다.
 
지소씨는 허기져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때 지소씨의 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내는 것은 소 난간 위에 익은 포도(葡萄)였다. 익은 포도가 향긋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당시 마고성 사람들은 지유만을 먹었지만 지소씨는 너무 허기진 데다가 향기에 이끌려서 포도를 맛보게 되었다.
 
포도를 먹은 지소씨는 펄쩍 뛰었다. 포도의 독력(毒力, 알콜) 때문이었다. 지소씨는 취해서 소의 난간에서 내려와 비틀비틀 걸으며 이렇게 노래했다.
 
넓고 크구나, 천지여!
내 기운이 능가한다.
이 어찌 도(道)인가!
포도의 힘이로다.
 
 
지소씨가 포도를 먹고 취한 이야기가 소문이 났다. 사람들은 다른 것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믿지 않다가 지소씨가 “참으로 좋다!”고 하므로 호기심에 이끌려 포도를 맛보게 되었다. 포도를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다른 씨족 사람들도 포도를 먹게 되었다.
 
포도를 먹은 것에 따라 큰 변고가 초래되었다. 포도를 먹은 사람들에게서 이빨이 생겼고, 입의 침(唾)이 뱀의 독과 같아졌으며, 두 눈이 올빼미처럼 밝아져서 사사로이 공률(公律)을 훔쳐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성경의 실낙원 이야기에서 선악과를 먹고 지혜가 생긴 것과 같다.
 
공률을 훔쳐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한 것인가? 이에는 수면이 햇빛을 비추어 환하지만 결국은 해가 아니라 물인 것과 같이 내면의 빛에서 우러난 참 앎이 아닌, 진리를 알음알이로 풀이하여 행세하는 것이 포함되리라.
 
포도 섭취가 사회 문제가 되자 금지령이 내려졌다. 이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조심하는 자재율(自在律)이 깨진 사건이었다. 철(哲)이 없어진 것이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마고는 분노했다. 사람들이 본성을 잃는 것은 묵과될 수 없는 일이었다. 마고는 성문을 닫고 수운(水雲)의 위를 덮고 있는 실달대성의 기운을 거두어버리는 극단적인 조처를 내렸다.
 
실달대성의 기운을 거두어버렸다.
 
오미의 변에 따른 변고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땅이 단단해져서 걸을 수 있게 되었으나 사람들의 발이 무거워져서 뛸 수가 없게 되었고, 태정(胎精)이 불순해져서 짐승처럼 생긴 사람도 태어났다.
 
앞에서 마고와 네 천인·네 천녀는 일기(一氣)에 가까운 존재이고 마고성은 세상보다는 하늘에 더 가까운 세계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마고와 천인·천녀가 영체(靈體)였다는 말이다. 영체는 텔레포트(teleport)적인 이동으로 어디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 즉, 오미의 변이 일어나기 전 마고성 사람들도 천인·천녀의 후예로서 영체적인 상태였으나 오미의 변으로 물화(物化)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귀에 있던 오금(烏金)이 변해 토사(兎沙)가 되므로 음(音)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앞의 이야기에서 천인들이 관을 쌓아 음을 만든 것이 천지의 본음이 풍부해지도록 불러오는 활동이라면 음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은 있었던 음마저도 상실된 것이다.
 
이 지경이 되자 사람들이 포도 먹는 것을 가르친 지소씨를 원망했고, 원성이 자자해지자 지소씨가 크게 부끄러워 권속을 이끌고 성을 나가 멀리 가서 숨어 버렸다. 지소씨의 백소씨 권속만이 아니라 포도를 먹은 사람들 모두가 마고성에서 떠나게 되었다. 황궁씨는 마고성 시대 네 씨족 집단의 총 수장, 즉 제사장이었고, 황궁씨와 권속들은 천부를 받들어 모시며 자재율을 지켜 포도를 먹은 이가 없었으므로 황궁씨 권속 중에는 마고성을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황궁씨는 사람들이 마고성을 떠나 황량한 땅으로 이주해 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신표로 나누어 주면서 말하였다.
 
“여러분이 미혹함을 키워서 성품과 모습이 변했으므로 성중에서 같이 살 수가 없게 되었소. 하지만 열심히 닦아 미혹함을 깨끗이 씻으면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이켜질 것이니 부디 노력하고 노력하시오.” 
 
천부삼인(天符三印)은 단군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물(神物)로, 천제 환인이 아들인 천왕 환웅에게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데 사용하도록 준 세 가지 물건이라고 알려진다. 거울, 방울, 검이 그 상징이고, 원방각(○, □, △)으로 표기된다. 이로서 조화주, 교화주, 치화주 삼신을 상징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삼신은 누구신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선사시대의 선도의 철인들은 다음의 한 줄 말씀에 요약되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고, 그들이 지각한 진리와 삶에서 누린 천부 문화도 모두 이러한 앎에서 일어났음을 상기해야 한다.
 
모습 없는 하늘은 하늘의 하늘이고 하늘의 하늘은 곧 하느님이시니
無形之天 謂之天之天 天之天 卽天神也. 참전계경-敬神 中
 
이 세계관에는 ‘하느님은 진공이시다’는 선언이 담겨 있다. 진공의 자기복제에서 우주 자연이 나왔다는 인식이 들어 있고, 진공이 사물을 내고 사물에 빛을 비추어 진공 자신의 생명을 부여해주었다는 성육신적 진리가 담겨 있다. 사람의 참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온갖 복이 다 하느님에게서 주어진다는 앎이 충만해 있다.
 
하느님이 진공이시면, 천부삼인은 무엇인가?
 
진공이라는 하나의 본체가 진공, 진공요동, 진공빛이라는 세 작용으로 활동해 천지인 삼극이 분화한 것이 ‘삼인’의 정체라고 알 수 있다. 즉, 선사시대 철인들은 우주 만물의 출처가 진공인 것을 안 앎에 바탕하여 천부 문화를 꽃피웠다. 이를테면, 고대인들이 태양 속에 삼족오를 그린 것도 ‘삼인’을 상징한 것이다.
 
귀에 있던 오금(烏金)이 변하여 토사(兎沙)가 되므로, 끝내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오금은 금오(金烏), 해 속에 산다는 까마귀, 곧 삼족오(三足烏)이다.
 
삼족오는 무엇이고 하필이면 왜 해 속에 사는가?
 
『환단고기』에 태양을 ‘광명이 만나는 곳’이라 한 말이 있다. 천부경은 무시무종한 본체의 빛을 ‘본태양’이라고 하였다. 즉, 삼족오는 하느님의 참빛이 태양에 깃들어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초창기 기독교 문헌에 "별빛이 그 너머의 참빛의 파편을 전달한다"고 한 말이 있다. 이 말은 선사시대의 전승일 것이고, 하느님에서 유래한 빛이 별(태양)이 낸 물질 성분 빛에 함유된 것을 말한 것이다. 빛들이 이처럼 중첩된 것을 언급한 까닭은 인생들이 자아로 여기는, 마음이라는 정신 성분 빛에도 하느님에서 유래한 빛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락 이전의 아담이라는 본래에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인생들이 이 빛이 어둡지 않은지 보아야 하고, 이 빛이 밝게 깨어나서 빛으로 거듭나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진공이시다는 앎에서 진공은 하나의 본체로서 일신(一神)이고, 진공이 진공, 진공요동, 진공빛이라는 세 작용으로 존재와 활동을 일으킨 것이 삼신(三神)이다. 하나가 셋이고 셋이 하나인 것이다. 이 일즉삼(一卽三) 삼즉일(三卽一)을 선사시대의 철인들은 머리가 하나이며 발이 셋인 참빛의 새로 형언해 들려준 것이다.
 
오금(烏金)이 변해 토사(兎沙)가 된 것은 금이 모래가 되었다고 비유한 것이다. 언어적으로 이 말은 달에 사는 토끼인 ‘옥토(玉兎)’가 토끼라는 이름의 모래가 되었다고 한 것으로, 이는 아담이 타락하여 하느님의 생기를 잃게 되어서 흙으로 돌아가게 된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것은 ‘금오'는 태양의 빛이 강한 큰 발광체이고, '옥토'가 햇빛을 반사하는 작은 발광체로서 활동하는 것인데, 옥토가 토사로 바뀜에 따라 거울에 먼지가 끼듯이 되어서 햇빛을 되비추는 일조차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진동수가 높아 불빛을 내듯 해야 하는데 진동수가 낮아져서 재가 남은 것처럼 식은 상황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천지의 본음, 곧 진공이신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영혼의 귀를 열어야 하는데 입으로는 세상 소리를 말하고 귀로는 이익되는 소리를 듣고자 하는 속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부도지에 나오는 상징적인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읽으면, 수증복본(修證復本)은 불 꺼진 재처럼 된 마음에 다시 영성의 불꽃이 타올라 내면에 회복된 광명으로부터 각성이 일어나는 빛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알아차림에 이르게 된다.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앞에서 오미의 변이 일어난 것에 대한 응징으로 마고가 성문을 닫고 실달대성의 기운을 거두어버렸다고 했는데, 이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마고가 실달대성의 기운을 거두어버린 것은 곧 선천을 계승한 기운이 상실된 것이다. 이는 음이 사라져 들을 수 없게 된 것이고, 이는 성경의 이야기에서는 아담이 하느님이 주신 ‘생기’를 잃은 것이고, ‘하느님은 빛이시다’는 말에서 이해하면 아담이 하느님이 주신 빛을 잃어 무명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후 사람들은 마고가 거두어버려서 인간에서 사라진 '기운'을 회복하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성경의 이야기에서라면 상실한 하느님의 빛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회피할 수 없는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오미의 변은 사람 개개인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고, 또 마음 내면의 문제요, 생체의 문제이지만 마고가 실달대성의 기운을 걷어버린 것은 포도를 먹지 않은 사람들조차 함께 고초를 겪게 된 일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성경의 실낙원 이야기에서 생각하면 금단의 열매를 먹은 것은 아담과 이브인데 당사자들뿐 아니라 그들의 후손 모두가 낙원에서 추방된 것을 직시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해법이 나온다.
 
말하자면 ‘열매’를 먹은 것은 개개인의 문제이고 이에 대한 처벌은 환경 전체가 나빠지는 것이 되었다.
 
마고는 왜 기운을 걷었는가? 그것은 오미의 변으로 성정이 혹독해지고 짐승 같은 모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된 것은 선천을 받들어 모시는 자 다운 자세이지 못한 것이다. 천부의 ‘기운’ ‘하느님의 생기'를 모시기 위해서는 인생이 순수하고 아름다워야 하는데 그 순수가 상실되고 추악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숙고하면, 인생들이 수증복본 하고자 단지 '열매'의 독기를 씻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마고가 실달대성의 기운을 걷어버린 것이 본래대로 되돌려지도록 원시반본적인 변화가 함께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사람 개개인이 밝아져야 하고, 그렇게 될 수 있기 위해서라도 환경이 같이 밝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닦을 뿐만이 아니라 천지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공생명 장치를 구성해 빛운영을 하는 것은 그 원리나 취지에서 마고성의 천인들이 관을 쌓아 놓고 음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고 오금으로 음을 듣는 것도 그렇다는 점도 돌아볼 일이다. 부도지의 이야기는 신화이지만 빛운영하면 진공빛이 밝아지는 응답이 천지와 사람 모두에서 두루 일어나는 것은 현실에 일어나고 있는 실제 상황인 것을 지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