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권 : 천지의 본음/1부 2장

꽃의 문을 두드리면

능 소 2022. 8. 18. 12:35

 

 

식물의 씨앗은 땅에 뿌려지기 전에는 두꺼운 껍질로 자신을 보호하지만 땅에 떨어진 후에는 껍질이 손상되어야 발아할 수 있게 된다. 껍질의 손상은 며칠 혹은 몇 달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몇 년, 그 이상에 걸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씨앗의 생명력은 씨앗의 종류에 따라 천지 차이가 난다. 어떤 식물의 씨앗은 몇 년밖에 견디지 못하는데, 어떤 것은 몇백, 몇천 년 동안 보존되었다가 거짓말처럼 싹을 틔우기도 한다.

 

헤롯의 궁전에서 발굴된 2천 년 된 야자수 씨앗이 발아한 일도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남 함안에서 산성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고려 시대의 아라홍련의 씨를 수습했는데, 이것이 7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20169월 외신은 칠레 아타카마 사막이 분홍빛 꽃밭으로 변신하는 생명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언제 비가 왔었는지도 모를 만큼 실로 오랜만에 비가 왔는데도 그 척박하고 황량한 사막의 모래 속에 잠자고 있었던 당아욱 씨앗들이 생명의 싹을 틔운 것이다. 호주의 밀림의 병솔나무의 씨는 껍질이 매우 단단해서 싹이 움터 나올 수가 없다. 그러나 씨가 떨어진 뒤에 밀림에 불이 나서 병솔나무의 씨도 불에 타 껍질이 약해지면 그 틈을 타 싹이 움터 화재로 다른 나무들이 불타 없어진 데서 저 혼자 햇볕을 받으면서 성장한다. 씨앗들의 이런 지혜와 놀라운 생명력은 경이롭다.

 

그래서 씨앗은 생명력의 대명사로, 그리고 미래의 희망으로 상징된다하지만 생명력이 그 꽃을 피우고, 희망이 그 뜻을 이루려면 씨앗이 먼저 잘 여물어야 한다. 잘 여물어야 활기차게 성장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깨달음이 촉발할 수 있도록 충분히 밝아지는 것도 씨앗이 잘 여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씨앗이 잘 여무는 것이 다음 단계의 개화를 보장하듯이 충분히 밝아지는 일은 빛의 존재가 깨어날 수 있게 담보한다. 그리고 또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씨앗이 여무는 일이나 내면의 빛이 성장하는 것이나 한끝 차이로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물이 99도까지는 끓지 않다가 100도가 되면 비로소 끓는 것처럼, 씨앗의 마지막 성숙도 인내를 이기고 온다.

 

     

불퇴전

               -능소

 

     여정의 끝은 자유다

     그 전까지는 인내다

     나 있다는 견해 없이

     온갖 선행 다할 때

    진공 성분 빛의 꽃

    걸음마다에 피어난다.

 

 

고구마는 원산지가 중남미로 따뜻하고 강수량이 많은 지역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다. 그래서 한반도의 기후에서는 꽃을 피우기 어려워서 고구마꽃은 10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다시피 했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가 고구마꽃이 핀 것을 보게 되면 행운의 징조로 여기기도 했는데, 요즘은 우리나라가 점차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고 있어서 이제 고구마꽃이 피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들린다. 검색해보면 고구마꽃 사진이 많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구마는 씨고구마를 땅에 심어 싹을 틔운 다음 줄기를 꺾어 밭에 심으면 다시 모체와 똑같은 고구마로 자라난다. 다른 식물들은 꽃을 피운 다음 씨앗을 만들어 번식하는데, 고구마는 무성생식 , 자기복제를 하여 번식한다.

 

한반도에 고구마가 들어온 때는 18세기 후반이라고 한다. 그러하니 고구마꽃을 10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했으면 그동안에 몇 번이나 꽃이 피었을까? 하지만 고구마가 꽃을 가진 식물인지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채 덩이뿌리와 넝쿨로만 살아 세대를 이었으면서도 고구마의 속에는 조건이 맞으면 꽃으로 피어날 꽃의 인자가 깃들어 있었다.

 

꽃의 인자가 안에 있다는 것. 수십 수백 년, 아니 수천, 수만 년이나 꽃을 피울 수 있는 조건이 되기를 기다리며 깃들어 있다는 것은 생명현상이 가진 신비요, 기적이다. 사람들의 안에도 때를 기다리며 침묵한 꽃 인자가 있다. 사람마다 안에 꽃의 인자가 깃들어 있는 것은,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나누어 넣어주신 빛의 꽃의 언약이다. 피어나면 장엄하고 거룩한 영성의 불꽃이다. 하지만 이 꽃은 알 수 없는 과거부터 필어날 때를 기다리며 비활성 상태로 멈추어 있었다. 모습도 없이.

 

하느님에서 유래한 빛의 꽃에 대해 사유한 것이 지구별 인간 세상에 풍미한 철학이요, 신학이다. 이 꽃이 존재하였다는 것과 마침내 개화하는 것은 반드시 일어날 사실이라고 여긴 것이 신앙이고, 이 꽃이 활짝 피도록 노력하는 것이 수행이다. 이 꽃의 사정이 이러하다.

 

고구마꽃은 물리적인 온도가 맞으면 피어나지만, 빛의 꽃이 피어나는 조건은 무엇인가?

 

인류가 존재한 이래로 지구별은 언제나 철학, 신학, 신앙, 수행이 흥행하였으며, 이따금 빛의 꽃이 핀 사람들이 있었다. 인생들은 빛의 꽃이 핀 것을 기뻐했고, 빛의 꽃이 또 필 것이라는 희망을 간직했다. 하지만 빛의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들의 빅뱅은 일어났는가? 그건 아니다. 그런 계절이 온다는 언약이 전래했을 뿐. 왜인가? 그동안에도 사람들은 빛을 사랑하고 꽃이 피기를 소망했는데, 빛의 꽃은 왜 띄엄띄엄 피는 것에 그쳤을까?

 

생각을 비우고 바라보면 그 이유는 오묘하지 않고, 까닭은 먼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 세상에 빛의 꽃이 만개할 만큼 충분한 밝음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빛의 꽃이 피기에는 밝음이 미달한, 빛이 결핍된 무명처에 지구별 인간 세상이 있다.

 

기존의 '종교''수행'이 사람 안에 깃든 빛의 꽃이 피어나도록 도왔나? 그것은 아니다. 사람들과 세상에 빛이 환해지도록 변화를 불러일으켜 준 것은 없었다. 그간에 인생들이 관계 맺은 그 무엇도 천지와 사람이 희박한 빛 가운데 있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겨울은 한랭건조하고 여름은 온난다습한 한반도에선 고구마가 꽃을 피우기 어려웠듯이 빛이 있어야 공명하여 피어나는 빛의 꽃도 만개해 피기엔 역부족인 아주 매우 희박한 빛 가운데 있었다. 인생들이 무명했다.

 

물질도 아니고 마음도 아닌 성분이 진공인- 빛이 우리를 비춘다. 우리들의 시대를 비추고 미래세의 지구별과 해와 달과 뭇별의 우주를 비춘다. 빛의 계절이 어디에나 오고 빛이 두루 모든 것을 비추는 계절이 오는 것이다. 하늘과 땅이 환해지고 사람의 안에 잠들어 있었던 빛의 꽃이 피어나서 천지인이 꽃밭이 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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