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에 사람 없고 새도 돌아오지 않아 / 외로운 마을 어둑한데 찬 구름만 쌓였다 / 절의 중은 유리 세계를 밟고 나가서 / 강 얼음을 깨트려 물을 길어 돌아온다. 검단사의 설경_정렴
저 멀리 찬 구름에 쌓인 세속의 마을에서 떨어져 한적한 산천과 어울린 산사와 스님의 맑고 고적한 생활의 선미가 일품인 이 시는 조선조의 문인 정렴의 시이다. 정렴은 북창이라는 호로 불린 사람으로 매월당 김시습, 토정 이지함과 더불어 조선 삼대 기인으로 불린 사람이다. 그는 유교의 심성 수양을 중시한 선비였지만 도교의 방술과 불교의 참선에도 몰입했다고 한다. 이 시는 그가 잠시 검단사에 머물었던 동안에 지은 듯하다.
검단사는 한강 하류인 파주 통일전망대 아래 임진강이 한강과 합수되어서 서해의 바닷물이 밀물과 썰물에 맞춰서 수위가 변하는 곳에 있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유리 세계’라 한 것은 검단사에서 바라본 한강 물이 언 빙판이 마치 유리 같이 맑은 것을 빗댄 것이라고 읽을 수 있다.
불교에서 ‘유리 세계’는 법신(法身)이 청정함을 말한 것이다. 불교는 비로자나불을 청정법신(淸淨法身)이라 부르는데, 이는 불교에 등장하는 모든 불보살을 화신(화신)이라 하고 비로자나를 모든 불보살의 진신(眞身)이라 부르는 것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비로자나는 진공을 불격화해 말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비로자나를 ‘어디나 있으며’[변일체처(遍一切處)], ‘두루 모든 것을 비추는’[광명변조(光明遍照)]는 부처님이라고 말하는 것도 진공이 진공 자신의 빛을 삼라만상에 추는 것을 말한 것이다.
진공이란 물질이나 정신(=즉, ‘오온’)에 물들지 않은 공이다. 그래서 그 청정함이 마치 유리가 티 없이 맑은 것에 빗댈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정렴의 시에서 ‘절의 중은 유리세계를 밟고 나가서’라는 시구는 물지게를 지고 스님이 얼음장을 밟아 강 가운데까지 나가서 얼음장을 깨고 한강물을 길어오는 현실 세상의 풍경에서 비로자나불의 청정한 국토가 겹쳐 보이게 된다.
순수의식으로 깨어 진공의 세계를 관조할 때 보는 자와 보인 대상의 경계가 사라져서 마치 유리 속처럼 맑음이 투명하게 빛나는데, 구한말 후천 세계의 도래를 예고한 김일부 선생도 「십일음」에서 ‘유리 세계’를 언급했다.
천지의 맑고 밝음이여, 일월의 빛남이로다 / 일월의 빛남이여, 유리 세계로다 / 온 누리여! 하느님이 비추어 오심이로다. 십일음_김일부
선생은 하도낙서(河圖洛書)로 상징되었던 선천이 가고 ‘정역(正易)’으로 상징되는 후천이 열린다고 예견하였는데, 선생은 평소 존공(尊空)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존공은 진공이 거룩한 공간인 것을 안 것이다. 선생은 평소 공자의 도는 유형천(有形天) - 곧 ‘모습 있는 하늘’ - 에 통한 것이고, 자신의 도는 무형천(無形天) - 곧 ‘모습 없는 하늘’ - 에 통한 것이라 하여 존공 사상을 드러냈다. 그래서 필자는 일부 선생이 ‘유리 세계’라고 하고 ‘하느님의 빛이 비추어 오심’이라고 한 것은 진공빛이 광명한 빛세상이 열리는 것을 예지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태양과 한강에 빛운영이 실행되어서 발원지 검룡소에서 한강 하류까지 한강 물 전체가 지구상의 다른 강, 호수, 바닷물보다 훨씬 더 밝은 진공빛을 띠고 흐르게 된 것은 진공 성분 광명이 유리같이 투명한 흐르는 일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한강수야, 샛별처럼 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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