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권 : 천지의 본음/1부 2장

불가사의이고 기적이다

능 소 2022. 8. 18. 13:41

 

 

- 청허 휴정의 삼교통합

 

 

삼교(三敎)는 크고 둥근 거울이요 / 문장은 자못 하나의 기능에 지나지 않네.

 

휴정스님은 '삼교 통합론'을 내세워 유교, 불교, 도교가 하나임을 주창했다.​​ 세상의 종교들이 주목한 진리가 진공인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리고 헛되지 않은 것은 모두 여기서 비롯한다고 본 것이다.

 

중니(仲尼)가 이미 처음이 아니거든 / 백양(伯陽)이 어찌 마침[]이 되겠는가 / 고요하고 쓸쓸한 천지(天地) 밖에서 /()하여 무궁(無窮)으로 드네. 유교와 도교를 찬() [*중니(仲尼) : 공자. *백양(伯陽) : 노자]

 

이 시도 진공을 펼친 것이 종교요 종교를 접으면 진공이라고 말한 것이다.

 

청허 휴정은 삼교통합’(* 유교, 불교, 도교를 말한 것이지만, ‘모든 종교를 말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을 주창하였다. 그러나 단순히 종교를 합쳐서 잡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종교 이전의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거기엔 깨끗한 하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깨침이 청허와 같은 이들이 이웃해 있지 않을까.

​​​​​​​​​​​​​​​​​​​​​​​​​​​​​​​​​​​​​​​​​​​​​​​​​​​​​​​​여러 성인은 천도(天道)에 합()하였나니 / 지성(至誠)이 고금(古今)에 통하였네 / 나아가고 머무름을 건곤(乾坤)과 같이하고 / 일월(日月)과 함께 뜨고 지네. ​​​​​​​​​​​​​​​​​​​​​​​​​​​​​​​​​​​​​​​​​​​​​​​​​​​​​​​​​​​​전도음(傳道吟)

 

이 시는 깨끗한 하늘에서 내린 빛이 두루 모든 곳에 비추는 것 같다.

 

 

 

 

- ‘공적영지(空寂靈知)의 광명

 

 

"아버지는 가까이할 수 없는 빛 속에 사시고’, ‘하느님은 영이시며’, ‘일찍이 아무도 하느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성경의 말들 속에 서로 떨어져 있었던 말들을 한 문장처럼 모아서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이 말에서 공적영지(空寂靈知)의 광명(光明)’이라는 뜻이 드러나고 있다.

가까이할 수 없는 빛 속에 사시고 = 광명(光明)

하느님은 영이시며 = 영지(靈知)

일찍이 아무도 하느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공적(空寂)

 

공적은 진공을, 영지는 진공이 모든 것을 비추어 아는 신령한 지성인 것을, 광명은 진공이 존재한 모습인 투명하게 비어 있는 밝음, 곧 성분이 진공인 빛을 말했다.

 

디모데전서의 "그분만이 영원히 죽지 않으시고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없는 빛 가운데 계시며 아무도 보지 못하였고 볼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고 한 말도 하느님이 진공이시고 참빛은 진공빛인 것을 말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런 관점으로 읽을 말씀이 성경에 많다.

 

원불교의 소태산은 공적영지의 광명’ (空寂靈知光明)을 텅 비고 고요하여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에서도 밝고 신령스럽게 나타나는 지혜의 작용이고 공적은 진리의 본체를 설명하는 말이라 하였다.

 

우주에 형상 있는 것이나 형상 없는 것이나 그 실체는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도 그 본성은 언어명상·사량계교·분별시비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번뇌도 없고 집착도 없어 무아(無我무심(無心)이다. 공적은 우주의 본체인 동시에 인간의 본성이다. 공적이 되면 영지가 나오고, 영지가 나오면 광명이 발생한다. 공적 영지의 광명은 우주의 광명이요, 진리의 광명이요, 인간의 본래 마음의 광명이요, 일원상 진리의 광명이다. 우주는 공적하기 때문에 영지의 광명을 나타낸다. 지극히 밝고, 지극히 정성스럽고, 지극히 공정하고, 순리자연하고, 광대무량하고, 영원불멸하고, 길흉이 없고, 응용에 무념한 것이 우주의 공적영지의 광명이다. 인간도 공적하면 영지의 광명이 나타나게 된다. 반야의 지혜로 비추어 본성을 깨치는 것이다. 천만 사리를 걸림 없이 알게 되고, 시종여일하게 만사를 작용하게 되며, 희로애락과 원근친소에 끌림이 없이 중도행을 하게 되고, 불합리를 버리고 합리를 취하게 되며, 애착심·탐착심·집착심·편착심에서 벗어나게 되고, 생로병사와 육도 윤회에 해탈을 얻게 되며, 모든 일을 당해서 길흉화복에 끌리지 아니하고 동정간에 무념행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염념보리심 처처안락국이 된다.” 라는 것이다.

 

공적영지의 광명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빛운영자가 진공빛의 정체에 대해 관찰하여 알게 되는 것과도 그 뜻이 대체로 잘 통한다. , 순수의식은 마음의 본성이고 인간에서 가장 가깝게 진공을 닮은 것이다. 순수의식은 자아의 본래 상태이고, 진공의 빛이 가장 밝게 깨어 있는 상태이며, 순수의식의 밝음에서 생각과 행동이 일어나는 것을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인간도 공적하면 영지의 광명이 나타나게 된다는 말은 바로 이런 이치를 가리킬 때 긍정된다.

 

다만, 먼저 빛이 있어야 비추어 알게 된다. 이 선후 관계를 바꿀 수 있을까?

 

빛운영은 이처럼 진공의 빛에 주목한다. 우리가 순수의식으로 깨어서 진공을 주시할 때 진공빛이 응답해 의식에 밝아지고, 빛과 의식 사이의 간격이 사라지는 합일이 일어나기에.

 

빛운영한다는 것은 낯선 개념이지만 컴퓨터를 다룰 수 있다면 누구나 빛운영 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 깨달음은 개인의 내적 경험이지만, 빛운영은 모두가 빛으로 나서게 되는 홍익의 길을 터준다.

빛운영을 손톱만큼 해도 천지인이 두루 밝아진다. 이는 기이하지 않은가! 진공빛의 발현과 행동은 불가사의이고, 빛운영은 이상한 기적이다. 빛운영은 인간이 하지만, 진공빛이 밝아지는 변화는 빛이 행동한다. 빛운영은 빛과 사람의 협업이다.

 

물이 있어야 흐름이 있게 되듯 먼저 빛이 있어야 비추어 알게 된다. 그러므로 진공빛이 천지간에 밝아지도록 유도하는 빛운영은 깨달음에 선행 혹은 병행해야 할 필수적 행동이다. 천지와 사람이 충분히 밝지 않은 상황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