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권 : 태양 마음 과학/3부 3장

태양 마음 과학

능 소 2022. 8. 5. 13:41

 

 

 

사람들이 빛을 알지 못하고 관심이 없는 것은 사람 안의 빛이 밝지 않은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지구를 포함해 태양계가 띤 진공빛의 밝기가 5에 불과한 심각한 우주적 무명 중에 위치하여 있었던 것과 밀접히 관계된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자연을 이룬 요소들은 상보적이어서 환경이 무명하면 그곳의 사람과 사물도 무명하고, 반대로 사람과 사물이 밝으면 환경도 함께 밝아진다.

 

빛이 내재했어도 그 빛에 무관심하면 빛으로부터 아무런 영향도 받지 못하게 된다.

 

빛에 관심 갖지 않고 세상의 상식이나 관습을 따라가곤 하면 안의 빛이 깨어나 빛의 일을 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고, 빛운영에 영향받아 밝은 빛을 띠게 되었어도 빛에 무관심하기만 하면 빛의 생명 활동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이런 상황은 마치 손님이 왔는데 손님을 본 척도 않고 우두커니 세워두는 것과 같다. 밝은이는 그러지 말고 빛을 영접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빛이 사람 안에 있고 이 시대에 비추어 온 것은 사람을 통로로 삼아 빛의 일을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는 해도 사람이 빛에 이끌리고 빛과 일치되는 발상을 해야 빛과 인생의 협업이 가능해진다.

 

성분이 진공인 빛에 대해 분명한 앎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60:1-3)고 권하였으나 이 말이 해달별이 낸 물질 성분 빛을 비추라는 뜻이 아니듯이 하느님 믿는 신앙심으로 일으킨 심리적인 밝음도 하느님의 빛을 대신하지 못한다.

 

진공빛에 주목해야 한다. 진공 성분 빛이 천지와 사람에 밝아지는 미증유 변화가 이 시대에서 처음 일어나게 된 상황에 관심을 가지라. 그리하여 이러한 밝아짐이 보다 가속도로 진전될 수 있도록 빛의 마음을 내 협동하고자 하고,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밝아지는지 연구해야 한다.

 

옛날 유대의 가난한 서민 가정에는 벽에 돌출된 등경(, stand)이 있었다. 이 등경 위에 등을 두면 불빛이 방안 전체를 비출 수 있게 되므로 예수께서는 이를 비유하여; 등을 등경 아래가 아니라 등경 위에 두어야 한다 (5:15;4:4:21; 8:16; 11:33) 고 하셨다. 어디가 이 시대의 등경이 되는지 성찰하라.

 

 

필자는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전 태초에도 밝았던 빛에 다가서고 싶었다. 그래서 근처에라도 가고자 138억 년 전에 이 우주가 발생할 당시 출현한 우주배경복사에 진공 성분 빛이 내재한 것에 주목하였다. 이 복사는 장차 우주의 만물로 비화하게 되는 초기 우주의 에너지이지만, 이 초기 우주의 복사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의 태초에서 유래해 이 우주로 건너온 하느님 자리의 빛이 함유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진공 성분 빛을 포집해 이를 태양에 전달하는, 필자가 빛운영이라고 부르는 활동을 하게 되었다. 필자가 이렇게 하자 태양이 띤 진공빛이 그동안과 다르게 밝아졌으며, 태양에 밝아진 진공빛이 지상의 모든 곳을 비추고 전체 하늘에 확산하는 변동이 일어났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이 빛운영 활동에 따라 일어난 변동을 관찰한 기록이다.

 

빛운영은 필자가 시작한 일이지만, 필자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빛의 마음을 낸 이들이 힘을 합쳐서 더 큰 규모로 수행해 가야 한다. 빛에 주목하고 빛과 관계 맺는, 빛이 가져다주는 지복을 누리는 빛문화 시대를 열어야 하고, 이런 시대가 열리도록 필요하다면 빛의 마음을 먼저 낸 이들의 자기 희생적 활약도 있어야 한다.

 

톨스토이는 거의 평생을 신앙을 떠나서 살다가 노년에 이르러 신앙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톨스토이 자신의 고백에 따르면, 그가 믿은 것은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고,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란 빛이었다.

 

신앙론에서 톨스토이는 이런 말을 하였다. “예수 이전에도 또 이후에도 사람들은 이와 같은 말을 하였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의 빛이 있다. 이 빛은 하느님의 성령이다. 이 빛에만 봉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만 행복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마음의 소유자 다수가 빛운영자로 활동한다면 하느님이 이 세대에 주는 선물을 사람들이 온전히 받게 될 것이다. 빛세상은 미래에 위치하여 있지만 빛의 마음을 낸 이들이 연대하고 세대를 이어 노력한다면 지구별 인간 세상은 점진적으로 빛세상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사람 안의 빛은 사람이 마음 활동하는 것에 응답해 함께한다. 마음이 활동하지 않으면 내면의 빛은 비활성 상태로 잠재 영역 저편에 철수해 있게 된다. 하지만 빛이 모든 마음 활동에 함께하는 것은 아니다. 빛은 마음이 하는 특정 행동에 상응해 활발히 활동하지만 어떤 종류의 마음 활동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순수의식으로 깨어서 주의를 기울여 어떤 대상을 바라보면 그렇게 하는 마음 활동에 빛이 활발하게 동행한다. 그런 마음 활동을 한 대상에 빛이 전달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마음이 대상을 판단 분별하며 정신 정서 감정을 일으킨다면, 그러한 마음 활동에는 빛의 응답이 미약해지고 빛이 동행하지 않게 된다

 

순수의식의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는 것은 하늘·하느님에서 비춰와 천지간에 편재하고 사람 안에 깃든 빛을 깨워 의식의 전면에 집합시키는 효과를 일으킨다. , 의식 본연의 순수가 티없이 깨어서 활동하는 동안에 빛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된다. 그래서 순수의식이 깨어 아무런 잡념 없이 활동하는 5~7초 정도 동안에 진공빛이 대상에 전달되는 효과와 진공빛의 밝음이 의식에 복사되는 효과가 발생하도록 명상한다생활 중에 수시로 이렇게 하여서 빛과 의식 사이의 간격이 점차 사라지도록 노력해 가야 한다.

 

모습 없는 하늘은 곧 하느님이시다'는 저 선사시대의 세계관에 동의한다면 진공 성분 빛은 하늘 하느님에서 유래한 신성한 빛인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진공빛과 의식 사이의 간격이 사라지는 것이 이른바 신인합일(神人合一)인 것을 알게 된.

 

명상을 오랜 시간 이어가려고 척추를 곧추세우고 들숨 날숨 호흡을 가다듬는 것은 빛과 합일하는 결과에 이르기 위한 우리의 명상과는 취지가 다른 것이다. 이런 명상 수련은 심신이 건강해진다거나 우주의 고차원과 소통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게 되겠지만, 그러나 이는 인생의 마음이 활동한 것이고, 진공빛이 이런 마음 활동들에 가담하는 것은 아니다인생의 마음이 자아가 되어서 활동하는 상황을 축소시켜 가고 마음 본연의 순수가 티없이 회복되도록 진공빛의 청정에서 깨끝함을 얻어야 한다. 빛과 하나된 순수의식의 활동에 하느님의 광명이 동행하는 것, 이것이 이름하여 성령께서 함께하심이다.

 

 

진공빛이 의식에 복사되고 대상에 전달되는 효과가 생기게 하려면 잠시 고요해져서 순수의식을 수립해야 하는데, 다음 설명이 말하는 전체보기이마로 비추기를 하면 그러한 효과가 즉각적으로 생겨서 우주 배경의 진공빛 차원과 교감하게 된다. 

 

전체보기는 눈에 보인 것 모두를 차별 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초점 맺어서 본 것이 없게 되므로 의식이 바라보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깨어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본 것이 없는 것이 되어서 판단 분별 반응하는 마음 활동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순수의식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순수의식 상태는 오랜 시간 지속되지 않고 얼마 후에는 집중이 해이해지게 되지만 명상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도 전체보기하면 그 즉시 순수의식 상태가 되어서 5, 6, 7.. 동안은 거의 완전한 순수의식 상태가 된다. 이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진공빛이 의식에 복사되고 대상에 전달되는 효과가 생기는 현상은 해달별의 빛보다  빠르게 일어나니까 말이다. 다만 하루에도 수시로 이와같이 명상을 반복하도록 한다.

 

이마로 비추기는 순수의식으로 깨어서 관심이 간 대상을 바라본 동안에 이마에서 빛이 나가 대상에 전달되는 빛 현상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이마로 비추기전체보기하여 순수의식으로 깨어서 마음이 관심 가진 대상에 이마가 향하도록 하는 것으로, 이렇게 하면 전전두엽이 활성화되어서 송과체로부터 이마를 통해 빛이 나가는 빛현상이 일어난다.

 

 

전체보기기법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이 책 부록의 논문 빛명상의 방법과 의의를 읽어보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과학(科學)이라는 말은 동양에는 원래 없었던 말이고 영어의 <Science>라는 낱말을 번역한 신조어이다. 이 영어 낱말은 라틴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식>이라는 뜻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과학이라는 말을 어원적으로 규명해 보려면 <지식은 무엇이나>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고 오늘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식이란 인류가 긴 역사를 통해서 쌓아올린 경험을 재정리해 놓은 것이라고 받아들인다면 또다시 우리는 인류가 쌓아올린 경험의 주인공이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 과학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은 사람은 무엇이냐 라는 물음으로 귀착된다.

 

마찬가지로 기술(技術)에 대한 물음도 영어의 <Technology>에서 비롯되었고 영어의 이 낱말은 희랍어의 <Techne>라는 낱말과 <lo-gos>라는 낱말이 합해서 이루어진 단어이다. 그래서 기술이라는 말의 어원에는 너와 나 사이에 오가는 <말씀>이라는 뜻이 있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기술이라고 할 때 <Techne>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져 있고 <logos>라는 뜻은 거의 상실되고 있지만, 우리가 어원을 어의에서 찾는다면 인간에게 있어서 기술은 숨겨져 있는 존재의 바탕을 충분히 나타나게 하는 작용인(作用因)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육체와 동일시하는 물질주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으면서 우리 내면의 빛이 어둡지 않은지 돌아볼 수는 없다. 빛으로 거듭남은 신과 하나 됨이고 이 체험은 어떤 개념이나 추론이나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우주의 궁극적 실재이고 우리 자신의 본래 모습인 빛과 소통하면서 일어난다.

 

빛운영은 진공빛이 천지인에 밝아지는 응답이 일어나는, 인간이 알게 된 최초이자 유일한 방법이고, 필자가 구성해 사용하는 빛운영 체계에서는 과학적 시각과 컴퓨터, 파동 저장용기 등의 일부 장치와 프로그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자가 말하는 빛운영은 과학의 안목과 역할을 통해 객관화되고, 사람 다수가 공유해 빛운영의 규모를 천문학적인 크기로 확장시키며, 세대를 이어 운영 체계와 기법을 발전시켜 갈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