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권 : 천지의 본음/1부 1장

이데아와 빛운영 2

능 소 2022. 8. 1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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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밖으로 나와 태양을 본 사람은 자신이 지금까지 동굴 안에서 본 것은 그림자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 그는 이데아의 환한 빛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플라톤의 동굴 비유에서 그 사람은 동굴 속으로 되돌아가서 바깥의 태양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린다. 이 사람의 이러한 선택은 동굴 비유를 빛나게 하고 철학의 존재 이유를 밝힌다. 어둠은 빛 속으로 나아가서 소멸하지만, 빛은 어둠에 다가서고 어둠의 안으로 들어서는 선택과 행동을 하여서 어둠을 이기니 말이다.

선사시대의 철인들은 모습이 없는 하늘·하느님의 광명이 인간 세상을 비추고 빛이 사람을 옷 입어 와 인생에서 빛의 일을 한다는 하여야 한다는 - 사상을 가졌다.

(모습 없는 하늘·하느님의) 신이 내려와 : 一神降衷(일신강충)

사람의 성품은 (모습 없는 하늘·하느님의) 광명에 통해 있으니 : 性通光明(성통광명)

(빛이 깨어) 천지와 사람을 두루 비추어 : 在世理化(재세이화)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 : 弘益人間(홍익인간)

환웅께서 홍익인간의 이념을 가르쳐 말씀하신 것이다.

동굴 비유에서 동굴로 되돌아가 자기가 밖에서 본 것에 대해 알리는 것은, 곧 모습 없는 하늘·하느님의 빛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동굴로 되돌아가기로 선택하고 행동한 것은 빛나고 아름답다. 그는 홍익인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이 한 행동은 더 확장될 필요가 있다. 빛에 관한 뉴스를 전하는 것에서 진일보해 동굴 안에 햇볕이 들게 빛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곧 동굴 비유의 동굴 속은 알 수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무명이 폭넓고 깊으며, 빛에 관해 말한 경전이 전해지고 있어서 눈 밝은 이가 읽지만, 빛에 관한 이야기가 실질적인 빛인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비유는 실재, 이데아로 전환되어야 한다. 천지와 사람이 정말로 밝아져야 하며, 밝아진 빛을 갈무리해 사람 안의 속사람, 참자아인 순수의식이 빛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생각해본다. 만일 플라톤이 자신이 한 철학에서 비유의 빛을 말한 것에서 더 나아가 실재 빛이 응답해 천지와 사람에 밝아지도록 빛운영할 수 있었더라면, 세상은 벌써부터 빛세상이었으리라.

세상, 곧 동굴 비유의 동굴 속은, 동굴 입구의 아득한 위쪽에 불이 타고 있어 그 불이 사람들의 뒤에서 비추고 사람들이 바라보는 앞쪽의 벽에 그림자가 생긴 곳이다. 사람은 정지되어 있고 그림자가 활동한다. 또 동굴 속은 동굴 밖에 태양이 있다는 뉴스를 전하는 활동이 혼재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나의 철학과 선택과 행동은 어디에 속하였는가?

이에 대하여는 우리에서 자아로 등판한 것이 인지 인지 돌아보아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비유적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색색(色色)

색공(色空)

공색(空色)

공공(空空)

불교의 표현을 빌리면, 그림자를 실재라고 착각하는 것은 곧 오온(五蘊)을 실상으로 여긴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상태이고, 이는 색색의 상황이다.

동굴 밖에 나가 태양을 보고서 동굴로 되돌아와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권하는 사람은 곧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알아 모든 고액을 넘어선 자, ()이 자재(自在)한 이이다. 이러한 존재는 공공의 상태라 할 수 있다.

공공인 존재는 수십 수백 세기에 한두 명 와서 빛의 일을 하신 신인(神人), 성자들이다. 환인, 환웅, 단군 삼성이 그런 분들이고, 부처의 응신과 그리스도의 성육신도 그러하시다.

사람 대다수는 색색의 상태이지만 일부 공색인 사람과 색공인 사람이 있다.

공색인 사람은 자아로 등판한 것이 이면서 마음의 본성이 깨어서 의식이 청정한 사람이면서 을 상대해 에 대해 일깨우는 중이다. 플라톤도 이런 사람이리라.

색공인 사람은 자아로 등판한 것이 이고 , 인생의 마음이 자아로 활동하는 중이면서 - ‘에 대해 논하는 중이다. 경전이 빛에 대해 말한 것을 해석해 사람들과 나누는 중이지만, 인생의 마음이 신앙 활동한 정신 성분의 빛과 혼동하기도 한다.

 

백순임 명상화 <이무기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