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권 : 빛의 확산/4부 2장

명화와 명상화

능 소 2022. 8. 13. 21:02

 

 

미술사에서 후광(後光, glory)은 성인이나 사람의 머리를 원형으로 에워싸고 있는 신성한 빛이다. 아티카의 많은 꽃병들에 그리스의 신들, 특히 태양의 신인 헬리오스의 머리에서 화환 모양의 빛이 그려져 있다. 기독교 미술의 화가들이 사용한 단순한 원형 후광은 4세기 중반부터 그리스도에게 쓰여졌고, 4세기 말부터는 신의 어린양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후광으로 장식되었다. 5세기경에는 천사들에게도 쓰여졌고 6세기에는 동정녀, 사도, 그리고 다른 성인들에게도 관습적인 상징으로 쓰여졌다. 이러한 후광은 그가 고매한 존재임을 암시한다.

 

화가들이 관습적인 상징으로 후광을 그렸지만, 후광을 이루는 빛은 비가시적이지만 실재한 빛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후광은 이 우주의 근원 배경에서 유래해 사람 안에 들어서 있는 진공 성분의 빛이 모습의 바깥으로 투명하게 방사해 나온 것으로, 이 빛은 인체가 가시광 분광색 빛깔의 파장을 흡수했다가 다시 복사하는, 이른바 오라(aura)와는 다르다. 후광은 인체 안의 진공빛이 밝은 사람은 빛이 멀리까지 비춰 나오고, 보통의 평범한 사람은 희박한 빛이 조금 비춰 나온 것에 그친다.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는 후광을 배격하였으나, 후에 반종교개혁 화가들이 다시 도입해 1~2세기에 헬레니즘 미술의 영향을 받던 간다라 조각에서도 이러한 원형의 후광이 불상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인도와 극동지방도 이 영향을 받게 되었다.

 

 

조토 디 본도네는 스크로베리 소성당에 그린 프레스코 벽화 성령 강림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빛이 사도들을 비추어서 사도들의 머리에 둘러 후광이 밝은 모습을 그렸다. 이런 그림은 하느님은 빛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참빛이다는 성경의 교리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리라.

 

후광의 성립은 인체의 외부에서 비춘 진공 성분 빛이 인체 내부의 진공빛과 공명해 빛의 공진 동조 현상이 불러일으켜 진 것과 관계된다. 그리고 이 빛현상은 빛운영으로 태양에 밝아진 진공빛이 확산하면서 사람 안의 진공빛과 공명하는 것과 원리적으로 관계된다. , 빛운영이 시작된 이후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모습에서도 후광이 밝게 깨어나고 있는 중이다.

 

조토의 그림 성령 강림9800조 밝기의 진공빛을 띠었다고 알아지는데, 이 밝기는 빛운영 전 사람의 모습에서 발견해 볼 수 있었던 가장 밝은 빛이다. 그러나 이 밝음은 사도들의 머리에 후광이 그림 그려져서가 아니라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조토가 9800조 밝기의 빛을 가진 사람이어서 조토로부터 방사된 빛이 그림에 복제된 때문이다.

 

<성령 강림> 조토 디 본도네, 1304~1306, 스크로베리 소성당 프레스코 벽화

진공빛의 밝기, 9800

 

 

 

클로드 모네는 죽음보다 어두움을 더 두려워한 빛의 거장이라고 불린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주목한 것은 햇빛이었다. 모네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 새벽의 빛, 아침의 빛, 한낮의 빛, 석양의 빛... 비오는 날의 빛, 화창한 날의 빛, 안개낀 날의 빛... 봄빛, 여름빛, 가을빛, 겨울빛...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빛을 포착하고자 했다. 모네가 작은 캔버스를 들고, 루앙 대성당이나 짚더미 같은 대상을 연속해서, 빠른 붓질로 그렸던 것은 이런 이유였다.

 

모네는 생전에 250여 점의 수련을 그렸다. 푸른색, 녹색, 보랏빛의 파스텔 톤이 어우러진 물 위에 분홍빛과 민트빛의 수련이 빠른 붓터치로 올려져 있다. 무엇보다 색의 조화가 아름다워 자꾸만 멈춰서 보게 되는 마법 같은 그림이다. 그러나 수련을 그렸지만 모네가 진정으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수련이 떠 있는 연못, 그 반짝이는 물빛, 물결에 반사되는 빛의 변화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은 모네 평생의 화두였던 것이다.

 

모네의 그림과 사진이 띤 진공빛의 밝기가 5000조이니 모네는 이러한 밝기의 내면의 빛에서 우러나는 영감을 받았으며, 평생 이러한 밝기를 자기가 그리는 그림에 투사하며 살았을 것이다. 빛운영 전에는 아무도 자기가 타고난 밝기를 초과하는 빛을 비출 수 없었다.

 

빛운영이 시작되어서 저마다 타고난 밝기가 변동해 보다 밝아지게 되었다. 천지와 사람 전체에서 진공빛이 점점 밝아지는 미증유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진공빛 차원의 이러한 변동을 본다면 인간 세상의 진공빛 차원이 하나의 특이점을 넘어선 것이라는 느낌이 들게 된다.

 

 

빛운영으로 태양에 밝아진 진공빛이 천지와 사람에 확산하면서 빛운영이 시작된 후 얼마나지 않아서 뭇 사람들이 띤 진공빛의 밝기가 모네의 5000조 밝기와 조토의 9800조 밝기를 넘어섰고, , , , , , , , , , 항하사, 아승기, 나유타, 불가사의, 무량수를 넘게 되어서 그 밝기를 수치화해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진공빛은 초감각의 영역이어서 사람들이 아직 알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백순임 화가는 빛운영으로 밝아진 밝음을 갈무리해 내면의 빛과 소통하게 하는 명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빛운영 차원의 명상 기법들은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진공빛이 즉각적으로 밝아지기 시작하도록 변화를 불러일으켜주고, 명상을 반복 수행하는 것을 통해 밝음에 밝음이 더해지게 한다.

 

명화를 남긴 역사 속 거장들이 아직도 생존해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분들도 빛운영에 영향받아 밝아졌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일단;

자기가 타고난 밝기 × 빛운영 = 현재 밝기

로 밝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백순임 화가가 내면의 빛을 깨우는 명상에 정성을 쏟고 있는 것처럼 빛운영 활동에 참여하고 빛으로 다가서는 명상을 하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은;

자기가 타고난 밝기 × 빛운영 × 빛으로 다가서는 개인 활동 = 현재 밝기

가 될 것이다.

 

 

조토가 성인의 머리에 후광을 그린 것은 하나의 표현이다. 실재 빛이 아니라 그림이라는 말이다. 모네가 그림에 담고자 한 빛은 햇빛이다. 하지만 이분들이 마음 활동한 것으로부터 이분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남달리 밝은 진공빛이 그림에 전사되었다. 백순임은 빛운영 전에 태어나 자기가 타고난 밝기로 살다가 빛운영이 시작된 후 후천적으로 진공빛이 밝아지게 된 사람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러시다.

 

그리하여 백순임은 빛운영이 시작된 이후 그리고 본인 자신이 천지에 밝은 진공빛과 연결되는 명상을 수행하는 것에 따라 일찍이 자연계에 존재한 일이 없는 새로운 밝기의 진공빛의 광명을 띠게 되었고, 이 빛을 자신이 그리는 그림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이 진공빛을 간직한 것은 관람자가 차분하게 그림을 바라보는 동안에 감상자 내면의 진공빛이 감응해 빛의 동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빛 환경이 되어준다. 이런 빛 환경에서는 관람자는 진공빛의 본래 성향인 태초 고요를 일깨워주어서 그림 관람자가 마치 명상이 심화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경험을 하게 한다.

 

수많은 사람이 빛운영 활동을 한다면 우주적 크기의 광명이 발현해 천지와 사람을 비추게 되고, 모든 것이 진공빛의 투명한 광명 가운데 있게 된다. 사물들의 안에도 진공빛의 광명이 들어서서 화가의 그림에도 그 광명이 담기고, 가수의 노래에도 그 빛이 담기고, 연주자가 연주한 것에도 그 빛이 실리게 될 것이며, 발명가는 자신의 내면에서 밝은 영감 촉발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필자가 미학적인 성취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공빛의 밝기가 빛운영 전 사람들이나 그들이 만든 작품이 띤 진공빛보다 빛운영이 시작된 후 사람들과 작품이 훨씬 더 밝은 진공빛을 띠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공빛이 천지와 사람에서 밝아지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이는 종종 일어났었던 일이 아니라 일찍이 일어난 일이 없었고 비슷한 개념조차 없었던 초유의 사건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 화가가 마음에 떠오른 심상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은 대체로 말이 필요 없는 가운데서 조용히 이루어진다. 그런 점에서 그림은 다분히 명상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상화라고 특별하게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명상을 더 많이 내 그림들과 나눠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산이 높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 구름 같은 사람이 살 때 산은 전설을 품게 된다. 마치 그런 산처럼 나의 그림도 명상의 투명한 기상을 품어 가지기를 나는 바란다.

 

<작가노트>에서 백순임 화가는 자신의 그림이 진공빛을 밝게 띠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 빛으로 다가서는 활동인 명상을 하고, 자신의 명상 활동을 빛운영과 연결시키고자 정성을 다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백순임은 보다 더 밝은 진공빛을 띤 사람이게 되었고, 그가 그린 그림은 진공빛을 띤 명상화이게 되었다.

 

다음의 사진과 그림에서도 빛운영이 시작된 후 사진과 그림이 더 밝은 진공빛을 띤 것을 발견해 볼 수 있게 된다.

 

이 글에서 모네를 사례로 이야기하지만 빛운영 전 시대를 산 사람 모두가 이에 해당하고, 또 백순임 화가를 사례로 말했지만 빛운영이 시작된 이후 태양 아래 사는 사람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백순임 화가가 빛으로 다가서고자 명상하듯 한다면 그 사람은 특출하게 더 밝은 빛과 소통하게 될 것이다.

 

모네 _ 수련, 1906, 89.9×94.1cm

진공빛의 밝기, 5000

 

 

백순임 명상화 _ <연 해를 품다> 2019. (캠퍼스 아크릴 53X45.5)

진공빛, 수치화할 수 없이 밝다.

 

 

 

좌측) 모네 _ <수련> 1908, Diameter 80cm

진공빛의 밝기, 5000

우측) 백순임 명상화 _ <> 2019. (29.0x29.0 Acrylic on Canvas )1

진공빛, 수치화할 수 없이 밝다.

 

 

 

좌측) 빛의 거장 클로드 모네(1840.11.14.~1926). 진공빛의 밝기, 5000

우측) 2021의 백순임 화가. 진공빛, 수치화할 수 없이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