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권 : 빛의 확산/4부 2장

고갱의 ‘고귀한 야만인’​

능 소 2022. 8. 13. 13:57

 

화가가 방사한 진공빛이 그림에 저장되고, 빛운영 전 상황에서는 화가와 그림이 같은 밝기라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고갱의 사례에서도 보자.

 

드넓은 바다 태평양의 한 섬에 자리 잡고 폴리네시아인들이 씨족사회를 이루어 살아간다. 200여 년 전 유럽인들이 태평양을 탐험하다가 폴리네시아인들을 발견했을 때 이들은 선사시대 사람들처럼 살고 있었다. 그들은 감자와 빵나무를 재배하고 원시적인 수준의 어업을 하며 살았다.

고흐와 결별한 후 폴 고갱은 산업사회가 된 서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고, 마침내 두 달이나 걸려서 남태평양 타히티의 파페에테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문명에 때 묻어 있었기 때문에 고갱은 더 오지의 섬으로, 아직 천연의 상태인 테하마나에 찾아들어 그곳에 정착했다.

 

테하마나는 고갱이 찾던 순수하고 아름다운 곳이었고, 거기에 폴리네시아인들이 살고 있었다. 고갱은 그들의 순박한 삶에 흠뻑 빠지게 되었고, 거기서 80점의 그림을 그렸다. 테하마나에는 이미 오래전에 불교가 들어와 있었으며, 현지의 토속신앙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고갱은 이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좌측) 고갱의 1902년 작품원시의 이야기이 그림이 띤 진공빛의 밝기, 5000.

우측) 폴 고갱. 진공빛의 밝기, 5000

 

 

만년의 고갱은 타히티섬의 여러 가지 전설을 자기 나름대로 이야기로 해석하여 상징적인 그림을 자주 그렸다. 1902년 작품, 원시의 이야기에는 가부좌를 한 남자와 그 가까이에 있는 순진한 여자를 그들의 뒤에서 음험하게 바라보는 옷 입은 짐승의 모습으로 등장해 있다. 전해지는 해설에 따르면, 가부좌한 남자는 불교, 그 옆의 여자는 이 섬사람들의 토속신앙, 괴이하게 생긴 남자는 이 섬사람들의 순수함을 편견에 찬 눈으로 바라본 서구인들과 그들의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상징한 것이라한다.

 

고갱은 순수한 섬 테하마나의 사람들을 '고귀한 야만인'이라 불렀다. 이는 당시 서구인들이 이 섬사람들을 얕잡아 야만인이라고 부른 것 앞에 '고귀한'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른 것이다. 고갱에게는 무엇이 야만이고, 무엇이 고귀한것이었는지, 마치 안개 너머로 섬이 자태를 드러내듯이 고갱의 정신세계 내부의 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다.

 

고갱은 테하마나 사람들의 순박한 삶과 어우러져 살았지만, 경제적으로는 물감을 살 수 없을 만큼 궁핍했다고 한다. 거듭된 음주와 이 섬에 들어올 때 이미 지병이 되어 있었던 매독의 후유증, 그리고 피부에 난 뾰루지로 인해 나병 환자로 오해를 받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져서 입원과 퇴원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고.

 

고갱은 자신의 일생일대의 작품을 그리기로 생각하고서 유명한 대작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를 그렸다. 그것이 그의 유작이 되었다. 고갱은 친구 몽프레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12월 한 달 동안 유작으로 대작을 그려보기로 했네. 미친 듯이 그렸네. 사람들은 이 작품이 미완성이라고 하겠지. 그러나 내가 지금껏 그린 것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네.”

​​

이 작품은 구상이 뚜렷하고 생동감이 느껴지는 대작이어서 고갱 자신이 보아도 걸작으로 생각되었을 만하다. 그건 그렇다. 그러나 고갱 자신이 띤 진공빛의 밝기가 5000조였기 때문에 고갱이 그린 모든 그림에는 5000조 밝기의 빛이 담겼다. 그가 그리다가 버린 습작들에도 5000조 밝기의 빛이 담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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