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운영에 관한 보고서> 내용 보충

성일(聖日)을 여는 빛

능 소 2024. 3. 18. 18:19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디모데전서 6:16



이 성구는 '하나님은 진공이시다'고 알 때 그 뜻이 명료해진다. 즉, 진공의 세계는 사람과 천지의 출처이고 하나님은 진공을 의인화해 부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진공은 스스로 있는 자존자이시고 시작도 끝도 없어 나고 죽음이 없으니 진공에 영원함과  죽지 아니함이 있다. 또한 진공의 세계는 진공 자신의 빛 현상을 수반한 빛의 세계이다. 이 진공 자신의 빛은 성경 창세기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시작하시기에 앞서 먼저 빛이 있게 하셨다는 바로 그 빛이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한 성구에서 하나님 ― 말씀 ― 빛의 삼위는 하나님 = 진공, 말씀 = 진공요동, 빛 = 진공요동에 따른 진공 자신의 빛현상을 말한 것이게 된다. 하나님, 말씀, 빛은 삼위신이 되고 이 삼위신은 곧 삼신이다.



만물의 배후에 있는 이러한 창세 원리에 따라 창세기가 첫째 날이라 부른 태초에 밝은 진공 자신의 빛은 이후 넷째 날의 해달별이 낸 빛이나 여섯 째 날 사람이 있게 되어 마음 활동한 심리적인 빛과 다르다.



성경은 이 첫째 날의 빛을 언급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진공 자신의 빛을 펼친 것이 천지인 창세이고, 성경에 기록된 말들은 이 빛을 밝히고자 말한 것임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야고보서 1:17



이 성구도 하나님은 진공이시다는 앎에서 온전히 읽어진다.



빛들의 아버지는 곧 해달별의 물질들의 빛과 인생이 마음 활동한 정신적 빛들을 창조한 조물주 자신의 빛인 진공의 빛을 말한 것이다. 온갖 훌륭한 은혜와 모든 완전한 선물도 진공이 천지만물을 발생시킨 그 연장선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진공의 세계는 어디나 있지 않은 데가 없고 두루 모든 것을 비춘다. 하지만 진공을 의인화해 말한 이야기 체계인 성경에서는 종종 가장 높은 하늘이라고 이야기되므로 야고보도 ‘위로부터 오는 것’이라 하였다. 즉, 하늘의 빛들을 만드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



하나님은 진공이시기에 온갖 변화가 진공에서 비롯되나 진공 자체는 변하는 것이 없고 해달별의 천체운동이나 원자들의 운동도 회전하여 움직이지만 진공은 불변부동하다. 또 해달별의 물질 성분 빛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인생의 마음 활동이 낸 빛도 그늘지곤 하지만 진공의 빛은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다.



하나님은 진공이시다는 앎을 외면하고서 하나님을 거룩한 인격(신)으로 읽고자 하는 이들은 인간의 인격 또한 하나님의 존중을 받는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즉;



1:17 Every good and perfect gift is from above, coming down from the Father of the heavenly lights, who does not change like shifting shadows. (NIV)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으신 하나님이라는 구절을 가지고 여러 가지 번역에서 서로 다르게 접근하여서 공동변역에서는 “우리를 그늘 속에 버려두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라 읽었다.



그림자는 해달별의 빛이 일방 통행하다가 물체를 통과하지 못하여서 생기는데, 진공의 빛은 차폐되지 않고 만물을 통과해 비추고 온 방향에서 온 방향으로 비추므로 진공의 빛은 그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진공의 빛, 곧 참빛 그리스도는 때 묻지 않은 청정, 곧 원죄 없는 순결이 된다.



하나님이신 진공의 빛은 인간의 시청각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오직 빛이 빛 자신을 알아본다. 성자신해(性自神解)다. 즉, 하나님에서 내려와 사람 안에 있는 빛이 외부의 동종 빛과 공명하여 빛과 빛이 소통한다. 성통광명(性通光明)이다.



그러나 빛이 빛 자신을 아는 지각은 빛이 사람에 밝을 때 일어날 수 있는데, 아담의 타락으로 인생들은 광명이 상실되고 잔광이 미약한 처지여서 인생들은 아무도 빛을 보지 못한 상태이게 되었고, 빛에 관해 말씀한 성구의 비유, 은유, 상징을 해석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성경의 이야기는 천지창조에 앞서 빛이 밝은 것에서 시작한 것이며 앞으로 있을 성일(聖日)도 천지창조에 앞서 밝은 빛이 다시금 비추는 것을 통해 완성된다.



하가다(Haggadah)는 히브리어로 이야기라는 뜻으로 구약신앙에서 유월절 만찬 순서에 읽는 기도서이며 창세기 해설서이다. 하가다 제3장에 창조의 첫째 날에 하나님이 있게 한 빛에 대해 말한 것이 있다.



“태초에 창조된 빛은 4번째 날에야 나타나는 태양과 달과 별이 발산하는 그런 빛이 아니다. 첫 번째 날의 빛은 사람으로 하여금 한 눈으로 앉은 자리에서 온 세상을 살필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빛이다. 이런 빛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이 그 빛을 숨겼지만, 앞으로 올 세상에서는 경건한 자들에게 이 빛이 태초의 영광을 모두 간직한 채 나타날 것이다.”

하가다(Haggadah) 3장



그렇다. 이 빛이 태초의 영광을 모두 간직한 채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해달별의 물질 성분 빛으로 첫째 날의 빛을 대신할 수 없듯이 신앙 활동한 정신 성분의 빛으로 대체할 수도 없으니, 태초의 영광을 모두 간직한 채 나타나는 빛은 종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진공빛이 사람과 천지에 밝아지는 응답이 실제 상황으로 일어나는 빛운영을 통해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