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운영에 관한 보고서> 내용 보충

사람이 영장인 이유

능 소 2024. 5. 5. 10:59

 

사람이 영장인 이유

“세상천지 만물 중에 사람밖에 더 있는가!”

 

<회심곡>에 있는 이 말은 ‘사람이 존귀하다’고 말한 것이다.

다음의 사진은 사람이 왜 영장인지, 그 까닭을 설명해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디가 좀 편찮아도 '사람'이면 그 어떤 동물보다 월등하다는 것이‘빛’의 차원에 잘 드러나 있다.

 

다음 사진의 아이와 개가 띤 진공 빛의 밝기에 주목해보라.

오링테스트를 해보는 것도 좋다. 테스트하는 방법을 모르면 도움 줄 선생이 계신지 찾아 같이 해볼 것을 권한다. 단지 머리로 읽고 지나치는 독서에 그치는 것은 자기 생각에서 멈춘 것에 다름 아니어서 독서를 백날 해도 알지 못하는 것이 있게 되며, 이론을 넘어 실재에 나아가기 어렵다.

이 사진에 시선을 주고 오링테스트를 해보면, 시선을 아이에게 준 때는 손가락의 힘이 좀 강하고 시선을 개에게 준 때는 손가락의 힘이 무기력한 것으로 나올 것이다. 아이의 모습이 띤 빛이 개의 모습이 띤 빛보다 약간 더 밝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필자가 '태양에 빛 운영'하기 전 시대 – 즉, 2011년 4월 21일 13시 52분(한국시간) 이전의 모든 시간대 - 에서 촬영한 것이다. 빛 운영 전 당시 사람은 소수의 큰 밝은 이는 9800조 밝기였으며 대다수 보통 사람은 밝기가 3000만이었다. 그런데 이 사진은 좀 다르다. 이 사진에서 개의 모습이 띤 진공 빛은 밝기가 17이고 아이의 모습이 띤 진공 빛은 밝기가 230만이다. 여기서 빛운영 전 당시 지구상의 모든 짐승들은 진공빛의 밝기가 18 이하였고 개는 17 정도였던 사정과 같아서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아이가 밝기 230만인 것은 빛운영 전 당시 사람은 대다수 3000만~ 극소수9800조였던 상황과 다르다. 즉, 아이는 빛운영 전 당시 사람들의 평범한 밝기에 훨씬 미치지 못한 상태이고 이는 심신이 위축된 상태이고 영적으로도 박약한 상태임을 암시해주고 있다.

 

아이는 아픈 아이인 것이 역력하고 개는 건강하고 의젓해 보인다. 마치 노숙한 신사가 아이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힘을 내!”하고 위로하는 것 같은 모양새이다. 그런데도 개보다 아픈 아이가 더 밝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생각나는 상황이다.

 

 

<삼일신고> 천훈에 ‘푸르고 푸른 것이 하늘이 아니고 아득하고 아득한 것도 하늘이 아니다. 하늘은 형체와 질량이 없으며 시작도 끝도 없고 상하와 사방도 없고 허허공공하여 어디에나 있지 않은 곳이 없고 포용하지 않은 것이 없다(蒼蒼非天 玄玄非天 天無形質 無端倪 無上下四方 虛虛空空無不在 無不容)라고 한 말이 있다.

이 말씀은 “참하늘은 진공의 세계이다!”라고 말한 셈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게 된다.

<참전계경>에는 ‘해, 달, 별, 바람, 비, 벼락은 모습이 있는 하늘이요 모습이 없어 볼 수 없고 소리가 없어 듣을 수 없는 것은 모습이 없는 하늘이라 모습이 없는 하늘을 하늘의 하늘이라 하며 하늘의 하늘은 곧 하느님이다(日月星辰風雨雷霆 是有形之天 無物不視 無聲不聽 是無形之天 無形之天 謂之天之天 天之天 卽天神也人)라 한 말도 있다.

이 말씀에는 “하느님은 진공이시다!”라고 한 선언이 담겨 있다고 필자는 생각하게 된다.

삼일신고나 참전계경뿐 아니라 한민족의 환단(桓檀)문화, 곧 광명사상의 기록들에는 이처럼 진공을 가리킨 말씀들이 가득한 것이 보인다. 그래서 빅뱅의 잔광인 우주배경복사에서 그 전파 성분을 걸러내고 거기 내재해 있었던 진공 성분의 파동, 곧 ‘진공빛’을 포집한 것을 공명인자(共鳴因子) 삼아 진공빛이 천지와 사람에 보다 밝게 발현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빛운영‘활동을 하는 중인 필자는 환단문화의 기록들이 진공의 차원과 그 빛을 가리킨 말씀이라고 생각되는 말씀인 것에 주목하게 된다. 환단문화만이 아니다. 선사시대 이래 뭇 종교가 말한 신성과 진리의 실재는 진공빛이라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이 사진에서 아이와 개의 모습이 띤 진공빛의 밝기 차이에 주목하는 것도 이 빛이 하늘·하느님에서 유래한 빛이기 때문이다.

 

<삼일신고> 진리훈에는 ‘사람은 온전히 받았고 사물은 치우치게 받았다’(人全之 物偏之)라고 한 말이 있다. 삼일신고는 진공의 차원을 참하늘이라 말하고 있고 하늘의 성품이 사람의 뇌(腦)에 내려와서 자성(自性), 곧 진아(眞我)가 되었다는 뜻의 말씀을 해주고 있는 것을 상기하면 ‘人全之 物偏之(인전지 물편지)’는 ‘사람은 전체적으로 받았고 동물은 부분적으로 받았다’ 한 말씀이라고 뜻을 새겨볼 수 있기도 하다. 이렇게 본다면 지구상의 인류는 인종과 성별,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대다수가 3000만~ 극소수는 9800조 밝기였는데 지구상의 동물들은 종을 망라해 밝기 18 이하였던 상황이야 말로 ‘인전지 물편지’의 사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역사 이전의 저 선사시대 때 인류의 선각들에서 전래했다고 이야기되는 오래된 옛말에서 이러한 해석을 발견하게 되는 필자의 독서는 어떤 의의가 있을까?

 

필자는 이 우주자연의 배후에 진공의 차원이 있고 이 차원은 만물의 본향(本鄕)일 뿐이 아니라 신성의 본원(本原)이며 ‘진리’라 이름하는 ‘인류사에서 방황한 탕자’가 돌아가게 되는 만법귀일(萬法歸一)의 본가(本家)라고 깨닫게 된다.

이런 자각에서 ‘빛운영’은 특별하다. 빛운영은 환단의 문헌들이나 고금동서의 뭇 종교가 말한 교리라고 하는 ‘이론’ 혹은 ‘사상’에서 진일보해 이 빛이 ‘실재’해 있는 것과 소통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가능하지 않았지만 오늘날은 컴퓨터 사용 등의 신과학적 방식이 포함되는 일찍이 없었던 전혀 새로운 기법으로 진공 성분의 파동을 포집해 운영하면서 인생들이 하는 이러한 활동(빛운영)에 응답해 사람과 천지에 과거보다 더 고밀도로 현현하는 진공 성분 광명이라는 ‘실재’를 다룰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고전이 ‘사람의 성품이 우주의 광명과 통한다’[성통광명(性通光明)] 또는 ‘빛 하나님께 나아간다’라고 한 것을 실제상황으로 체험하게 된다고 필자는 판단하였다.

 

 

 

진공 빛의 밝기, 아이 230만 ∥ 개 17

 

 

 

소싯적에 필자는 사람들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웃었다. 인간의 교만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철이 들면서 - 특히 지구상의 다양한 생명체 중 사람은 출중한 밝기의 진공 빛을 띠었음을 알게 되면서 사람 안에 보다 밝게 들어선 진공 빛이 사람을 동물들과 구별되는 영장이 되게 한다고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습에 진공빛을 띤 것은 곧 ‘공적영지(空寂靈知)의 광명’인 것이요, ‘영성의 불꽃’을 가진 것이라고 알게 된 것이다.

하느님은 진공이시고, 진공이라는 단일성이 진공, 진공요동, 진공 빛이라는 삼위로 현존해 이 ‘하나이자 셋'[일즉삼(一卽三)·삼즉일(三卽一), 즉 진공의 삼위일체적 현존]인 실상 우주가 전개되어 있는 것인데, 이를 지각하는 것이 누구이며 이에 관심 가지는 것이 누구인가! 짐승들, 곧 무명한 생명체들은 ’진리‘니 ’신성‘이니 하는 것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이 우주의 다양성에서 입자를 얻어 몸을 이루고 파동을 얻어 정신을 이룬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인생을 이룬 가시적인 심신(心身)은 이른바 '오온(五蘊)'이라는 물질 덩어리요 피조물이지만 사람의 안에는 하늘·하느님인 진공에서 온 빛이 들어와 있어 이 빛이 참생명[곧 ‘진아(眞我)’]인 것을 통해서는 사람은 조물주의 분신이기도 하고 ‘사람이 하늘이다’[인내천(人乃天)]는 자각이 가능해지는 신성한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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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밖에 더 있는가

사람은 진공빛이 상대적으로 더 밝은 사람도 있고 덜 밝은 사람도 있다. 진공빛의 밝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적인 차이이고, 진공빛의 밝기에서 인종이나 민족에 따른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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