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권 : 빛의 확산/3부 1장

빛이 머리로 나오면 지혜 가슴으로 나오면 사랑

능 소 2022. 8. 12. 21:48

 

 

 

빛이 머리에 밝은 것은 그 사람이 지혜 있게 되는 환경이 된다. 빛이 가슴에서 밝게 활동하면 그로부터 감동하는 성격과 초월적인 사랑, 그리고 이타적인 행동이 나오게 된다. 빛이 진동수 상승을 불러일으킨 결과이다. 이러한 관계에 대해 에디슨과 테슬라 그리고 카버의 사례에서 보자.

 

유럽의 물리학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막스 플랑크, 닐스 보어, 퀴리 부부,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등 천재적인 학자들이 서로 경쟁하며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었으나 당시 미국의 과학기술은 유럽에 비해 내세울 것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디슨이 학자적인 이론을 갖고 있지는 못했지만 실험과 호기심을 통한 발명을 많이 해서 미국을 응용기술 면에서 유럽을 압도할 수 있는 국가이게 했다.

 

에디슨은 어린 시절부터 만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당시의 주입식 교육에 적응하는데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정규 교육을 받은 것은 3개월뿐이었으나, 교사로 일했던 어머니의 열성적인 교육 덕에 점차 재능을 발휘하게 되었다.

 

전신기 특허로 큰 돈을 번 에디슨은 1876년 세계 최초의 민간 연구소로 알려진 멘로파크 연구소를 세워 발명을 계속해서 특허의 수효만도 1,300여 개나 되었다. 이 중 가장 높게 평가되는 부문은 도시의 밤을 환하게 했다는 것이다. 전구의 발명은 발전, 송배전 부문의 발전을 가져오게 했고 가정마다 전기가 들어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에디슨은 한평생 발명과 사업에 열중했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정말로 소홀했다고 한다. 첫째 부인은 쓸 만한 발명품을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구박했고, 부인이 죽었을 때는 일이 바쁘다며 장례식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교육에 대한 자신의 콤플렉스 탓에 자식들을 공과대학을 제외한 그 어떤 대학에도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

​​​​​​고전압 방전을 일으키는 테슬라 코일, 실용화되기 시작한 무선전력 송신 방법 등 테슬라의 선구적 업적들이 최근 빛을 발하고 있다. 엘론 머스크가 창업한 자동차 기업으로서 숱한 화제를 몰고 다니는 테슬라 모터스는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주력상품 역시 테슬라가 발명한 교류 모터의 디자인을 계승하고 있고, 자기력선속밀도의 단위인 테슬라도 그의 이름에서 따서 정해진 것이다.

 

시대를 앞선 천재과학자, 또는 몽상가적 기질의 괴짜 과학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하는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1856-1943)는 에디슨의 경쟁자로도 알려져 왔다. 온갖 무리수를 두면서 직류 송전 방식을 끝까지 고집한 에디슨 진영을 제치고, 오늘날과 같은 교류 송전 방식의 확립에 크게 공헌한 인물이 바로 테슬라이다.

 

테슬라는 크로아티아 리카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발명과 기술에 흥미를 보였다. 그는 프라하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는 등 엘리트 과학도의 길을 걸었으나,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인하여 부다페스트 등지에서 전신국 직원, 전기기사 등을 전전하다가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활동하였다. 한때 에디슨의 연구소에서 일하기도 했는데, 이때 테슬라의 획기적인 발명품에 거액의 보상금을 지불하기로 했던 에디슨이 약속을 어기면서 두 사람의 악연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에디슨은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의 결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듯이 발명의 과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불사하는 끈질긴 노력과 실험정신을 중시하였다. 반면 테슬라는 과학자로서 직관과 이론적인 측면을 보다 중시하여, 무턱대고 실험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에디슨은 발명가로서 뛰어난 능력 못지않게, 자신이나 타인의 발명품을 실용화하고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데에도 매우 탁월한 재능과 관심을 보였으나 테슬라는 에디슨과의 송전 사업 경쟁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고도 큰 부를 누리지는 못했고 도리어 재정적으로 쪼들릴 때가 더 많았다. 수많은 발명과 특허를 보유했으면서도 돈벌이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과학자로서 자존심을 세웠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테슬라가 발전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테슬라는 과학자로서 자존심이 강해 에디슨을 발명가에 불과하다고 낮춰봤다.

조지 워싱턴 카버(George W. Carver 1860년경~1943)는 인간적인 면에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추앙받는다. 그는 부모가 누구인지, 자기가 태어난 해가 언제인지도 모르는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서 온갖 고난을 겪으며 성장했다. 미국의 명문 농과대학인 아이오와 농과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대학교수직을 마다하고 흑인들을 가르치는 조그만 학교인 타스킥 학원의 교사가 된다.

 

당시 미국의 남부 지방이 노예제도를 지키려고 한 것은 목화 재배에 의존해 경제가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목화 농장이 별로 없고 산업 시설이 많이 있던 미국 북부 지방은 노예제도에 대해 회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세계 각국의 이목을 두려워했다. 이렇게 갈등의 골이 깊어가다가 결국 양쪽의 감정 대립이 무력 충돌로 발전하고 말았다. 남북전쟁이 끝나면서 노예를 마음대로 부릴 수 없게 된 탓도 있지만, 때마침 목화에 생긴 해충 때문에 미국 남부의 목화 농장은 황폐해졌다. 바구미의 일종인 이 해충 때문에 미국 남부의 모든 목화가 전멸하다시피 했다. 게다가 목화 농사는 지력을 많이 소모 시키기 때문에 목화밭은 더욱 황폐해졌다. 때마침 생겨난 땅콩 재배 덕분에 목화밭을 땅콩밭으로 바꿀 수 있어 다행이었다.

 

카버는 지역민들에게 땅콩 재배법을 가르치면서 105가지의 요리법과 땅콩을 이용한 350가지가 넘는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땅콩버터, 잉크, 플라스틱, 밀가루, 페인트, 물감 등 당시 에디슨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발명한 것들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토마스 에디슨 / 니콜라 테슬라 / 조지 워싱턴 카버

진공빛의 밝기, 에디슨 5천조. 테슬라 7천조. 카버 9800.

 

​​​

히틀러, 찰리 채플린, 간디는 1930년대에 뉴스를 많이 탄 유명인으로 꼽히는데, 진공빛의 밝기에 주목해보면, 간디는 9800, 채플린은 5000, 히틀러는 5로 차이가 크다. 왜 이런 것일까? 그리고 이 밝기 차이로 인해 이들의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자서전에서 채플린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맛보았던 행운, 불운은 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같아서 결국은 바람 따라 달라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는 불행에도 그다지 심한 충격을 받지 않았으며 행운에는 오히려 순수하게 놀라워할 수 있었다. ”

 

1914년부터 1953년까지 채플린의 미국 생활은 성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광신적인 반공주의였던 매카시즘의 광풍이 시작되자 채플린은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로 소환되었고, 채플린은 미국을 떠나 스위스 브베에 정착해야 했다. 채플린이 평소 전쟁을 비판하고, 가난한 시민들의 삶을 그려내고, 부자와 맹목적인 종교인, 부르주아를 비판한 영화들을 제작하였기 때문이다.

 

간디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가 독립하도록 민중을 이끈 정치적 리더였다. 그러면서도 간디 자신은 우파니샤드를 탐독하고 묵상한 사람이었으며 청빈한 수행자처럼 금욕을 실천하면 살았던 영성인이었다. 간디의 모습은 9800조 밝기의 진공빛을 띠고 있는데, 이 밝기는 빛운영 전 시절 깨달은 사람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밝기였다. 간디에게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의 마하트마라는 호를 준 타고르도 모습에 9800조 밝기의 빛을 띠었다.

히틀러도 30년대에 뉴스에 자주 나온 사람이었고 수많은 추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재능을 발휘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전쟁의 광풍을 불러일으키고 홀로코스트 같은 희대의 악행을 저질렀다. 바로 그것과 관계된다. 히틀러의 모습에서는 진공빛이 존재한 것을 볼 수 없다.

 

필자가 미세파동 레벨에서 수치화해 보았을 때 진공빛의 밝기가 5로 측정되는데, 이는 빛운영 전 악어나 독수리의 모습이 띤 밝기와 같다. 빛운영 전 태양과 지구가 띤 진공빛도 이런 밝기였다. 사진을 찾아 조사해본다면, 히틀러의 측근으로 희대의 악행을 함께 저지른 자들의 모습도 진공빛의 밝기가 5로 나올 것이다.

 

) 히틀러. 진공빛의 밝기, 5

) 간디. 진공빛 밝기, 9800

) 찰리 채플린. 진공빛의 밝기. 5000()

 

 

2021년은 빛운영한지 10년이 넘은 때여서 천지와 사람들이 띤 진공빛이 크게 밝아진 상황이다. 그런데도 요즘도 진공빛의 밝기가 5인 사람이 얼굴이 종종 티브이 화면에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연쇄살인을 저지른 악한, 학살범이 그들이다. 빛이 밝은 사람들이 빛에서 우러난 지성과 사랑의 삶을 사는 것과 반대로 빛이 너무 없으면 반영성적인 희대의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에바 브라운 / 히틀러 / 애완견

진공빛의 밝기 : 에바 브라운, 20. 히틀러, 5. 애완견, 17.

 

 

 

간디에게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의 호를 준 타고르의 사진 속 모습이 9800조 밝기의 진공빛을 띠었는데, 진공빛이 이처럼 밝다는 것은 진공의 성품인 공적(空寂)함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타고르의 사례가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타고르의 부친은 수십 개의 마을을 포함하여 수천만 평에 이르는 영지를 소유한 부유한 영주였다. 영지 중에 우거진 아열대의 숲으로 둘러싸여 강이 흐르는, 더없이 고요하고 한적한 곳이 있었다. 타고르는 지붕이 달린 작은 목선을 타고 몇 달씩 이 아름다운 강 위에서 지내곤 했다.

 

 

타고르.

진공빛의 밝기, 9800.

 

 

어느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그날도 타고르는 강물에 목선을 띄우고 촛불을 켜고 이탈리아의 역사철학자 크로체가 쓴 미학에 관한 논문을 읽고 있었다. 크로체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면 진리가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타고르는 밤 깊도록 책을 읽다가 피곤해져서 책을 덮고 촛불을 껐다. 이제 잠자리에 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촛불을 그자 목선의 창문으로 달빛이 흘러들어와 선실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한순간 타고르는 침묵에 빠졌다. 그는 밖으로 걸어 나가서 뱃전에 섰다. 조용한 숲 위 하늘에 떠오른 달은 아름다웠고, 달빛의 윤슬이 드리워진 강물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타고르는 그날 밤 일기에 이렇게 썼다. “아름다움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줄도 모르고 아름다움에 관한 책에 파묻혀 있었다. 아름다움은 책 속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었는데, 내가 켜놓은 촛불의 연약한 빛 때문에 달빛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우리가 명상하여 고요해지고 순수의식을 회복해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지만, 그 사람에게 진공빛이 밝을 때 그의 내면의 빛의 공적한 성품에서 명상이 자연발생하고 순수의식이 스스로 깨어나기도 한다.

 

 
 

'제 2권 : 빛의 확산 > 3부 1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재, 진공빛이 밝은 사람  (0) 2022.08.13
서번트  (0) 2022.08.12
시애틀 추장과 피어스 대통령  (0) 2022.08.12
맞수들과 투쟁가들  (0) 2022.08.12
이사도라 던컨과 최승희  (0) 2022.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