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약(新約)을 읽으며
변찬린
한 때 나는 난(蘭)을 가꾸면서
노자(老子)의 초입(初), 말하자면
곡신불사(谷神不死) 시위현빈(是謂玄牝)의 골안
그 부근에서 쇄풍(曬風)74하기도 했고
뜨락에 은행잎 지던 어느날에는
구(丘)의 예(禮)다운 투정
굵게 썬 회(贈)를 나무래던
간지러운 잔말을 귓밖에 들으면서
천상지재(天上之載) 무성무취(無聲無臭)의 하늘
그 주변을 서성거리기도 했고
혹은 연꽃에 마음(馬陰)을 감추(藏)시고
사정삼매(射精三昧)에 듭신
구담(瞿曇)75의 자부름을 흉내내어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마당
그 계하(階下)76에서 조흘기도 했고
그러다가 자꾸만 낯설어지는 세상
답답하고 심심하여 쇠주(酒)를 마시다가
흐릿한 취중(醉中) 양잿물을 먹고
하루에도 너댓번은 실히
저승의 문턱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헌데, 참 별난 일은
그 전에도 풋풋하고 싱싱한
백합(百合)의 체취(體臭)가 향도(嚮導)하는
이 신작로를 뻔질나게 지나쳤지만
그건 아마도 건성이였던가?
하늘이 도끼질하여 장작을 패듯
아둔한 내 머릿골 쪼개시고
요한복음(福音) 사장(四章)이십사절(二十四節)에
지지(知止)77케 하시니
이 또한 무슨 도연(道緣)일까?
아계(啞鷄)78 홰쳐우는 이 아침
청수(淸水)에 눈 닦고 세이(洗耳)하고
천지(天地) 사이 향(香)을 사른 후
신단수 아래 고요히 남면(南面)하여
구름이 사라진
신약이 여백(餘白)을 의시하며
그 행간을 되씹어 고쳐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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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다시, 신약(新約)을 읽으며」는 『선방연가(禪房戀歌)(지은이 변찬린 해제 이호재)에 수록되었다.
74 쇄풍(驪風) : 볕에 말리고 바람을 쐼.
75 * 구담(瞿曇): 부처님 열가지 이름 중의 하나.
76 계하(階下) : 섬돌 아래.
77 지지(知止) : 앎이 그치는 자리, 종교체험의 다른 표현.
78 아계(啞鷄) : 벙어리 닭.
* ᄒᆞᆫᄇᆞᆰ선생이 ‘청수(淸水)에 눈 닦고 세이(洗耳)하고’라 한 것은 내(능소)가 수신(受信)명상할 때 ‘전체보기’해 보이는 것 모두를 차별없이 보기하고 ‘전체듣기’해 들리는 것 모두를 차별없이 듣기하여서 순수의식을 수립하는 것과 내용이 같다 할 수 있다.
―――
요한복음 4장 24절을 읽는다
능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한복음 4장 24절을 새긴다
하나님은 빛이시니
같은 성분과 공명하신다
하나님은 진공이시니**
모습이 없어 볼 수 없고 소리가 없어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
마음의 본래 자리에 돌아와
순수히 깨어 주의를 진공에 기울이라***
천지가 진공에서 나고,
만물이 진공중에 있고,
사람이 진공에 돌아가니라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예배자와 함께하신다.
―――
** 하나님은 진공이시다 : 모습 없는 하늘을 일컬어 '하늘의 하늘'이라 하는데 이 '하늘의 하늘'이 바로 하느님이다. 無物不視 無聲不聽 是 無形之天 無形之天 謂之天之天 天之天 卽 天神也. <『참전계경』 「경신」>
*** 순수히 깨어 주의를 진공에 기울일 때 진공빛이 전두엽과 송과체에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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