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나 사이의 나뭇잎

理世(이세)냐 以世(이세)냐

능 소 2024. 11. 9. 13:45

광명이세 홍익인간은 한국의 고전사상에서 중요한 개념이죠. 광명이세를 한자로는 주로 光明理世라고 쓰는데, 드물지만 光明以世라고 쓴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되시나요? 한자의 뜻을 새길 때 각각 어떤 뜻이 발견되는지 봅시다.

 

光明理世 (광명이세)

光明 (광명): 밝은 빛, 빛남. 여기서는 깨달음이나 진리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理 (리): 다스리다, 이치. 세상을 이치에 따라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世 (세): 세상, 세계. 이 단어는 세상을 뜻합니다.

따라서 "光明理世"는 "밝은 빛(진리)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의미가 됩니다.

光明以世 (광명이세)

光明 (광명): 밝은 빛, 빛남. 이 역시 깨달음이나 진리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以 (이): ~로써, ~을 통해. 여기서는 수단이나 방법을 나타냅니다.

世 (세): 세상, 세계. 세상을 뜻합니다.

"光明以世"는 "밝은 빛(진리)으로써 세상을"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또는 "밝은 빛(진리)이 세상을"이라는 의미도 됩니다. 이는 "진리를 통해 세상을 밝힌다", "빛이 세상을 밝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두 표현 모두 진리를 통한 세상의 개선을 강조하지만, "光明理世"는 다스림을 강조하는 반면, "光明以世"는 진리가 세상을 밝히는 수단임을 강조하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빛이 사람과 천지를 밝힌다는 사실 자체를 가리키고 있다는 앎이 옵니다.

 

제가 "다스림"이라는 개념에 거부감을 가진 걸까요? 제가 대자유와 자재율*을 선호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공은 자기복제로 사람과 천지를 내고, 자기자신인 빛을 자신의 산물들에 비추어 진공 자신의 성품을 전하는 것이 우리가 견성해야 할 사실이지만, 이 관계가 강제성을 띠는 것은 아니죠. 인생들이 이 빛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관심이 없어도 –무지몽매해도 - 그 때문에 진공의 세계에서 추방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사람과 천지는 진공이 낳고, 만물과 만법이 진공 가운데 있으며, 사물들과 현상들의 안에도 진공이 들어차 있습니다. 다만, 순수의식의 주의를 진공에 기울일 때 연결되는 진공 빛과의 통명(通明)을 누리고 경험할 기회가 없을 뿐입니다. 이게 없으면 진공이 거룩한 공간인 것을 닮지 못하고 신명의 덕혜력과도 인연이 끊겨서 사실상 영성의 활성이 어려워지지만 말입니다.

 

이는 진공/진공빛이 그렇게 되라 하는 것이 아니고 인생들이 무명해서 스스로 자초하는 일입니다. 무명이 짙어 동종의 빛과 공명하는 이끌림이 미약할수록 더 심해집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 철학으로 알았었으나 양자역학이 상식이 된 오늘날은 이제 이것이 과학적 사실이 되었습니다.

 

진공 빛이 사람과 천지에 편재했다는 사실. 눈 있는 자 보아야 할 목록1로 제게는 보입니다. 인생과 진공빛 차원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과학적 시각으로 조명되고, 그리하여 인생들이 진공빛과 通明하는 데서 효과적인 과학 장치를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시대이니, 이는 일찍이 없었던 일이니 미증유요, 사람이 하지 못했던 일이고 빛과 협업으로 가능해진 일이니 파천황입니다.

 

빛과 인생의 협업은 빛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며 호혜적 상호작용인 것을 제가 압니다.

 

😊

* 자재율: <부도지>에서 말한 ‘자재율’. 즉,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자재함. 자재 (自在) ① 저절로 있음. ② 속박이나 장애 없이 마음대로임.

 

 

무궁화; 옛이름=빛의 꽃(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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