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나 사이의 나뭇잎

능소가 권하는 '빛이 밝아지는 명상'

능 소 2024. 7. 9. 14:13

 

잠시 고요해져서 보이는 것 모두를 차별없이 다 바라보는 ‘전체보기’ 명상눈을 떠 바라보면 지금까지 마음이 식별하던 사물들의 윤곽이 모두 마음의 관심 밖으로 철수되고 마음이 바라보는 행위만으로 홀로 깨어 있게 된다. 마음이 자기 자신 및 대상세계를 아는 마음 자체의 자기지, 마음의 본래적 각성, 본각(本覺)이 깨어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것을 ‘순수의식의 주의를 진공에 기울인다’ 또는 '순수의식으로 깨어서 보는 바 없이 본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잠시 순수의식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들어서 있었던 잡동사니 – 번뇌 – 가 문득 사라지고 그러한 순수의식 상태가 5~6초 정도 지속된다. 한번 전체보기 명상눈을 뜰때마다 5~6초 정도는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은 마음의 본래 상태가 되는 것이니, 우리가 이렇게 하기를 하루에도 무시로한다면 우리 마음은 빠르게 마음의 본래 상태를 회복할 것이다.

 

 

순수의식으로 깨어 진공을 직시하는 명상눈을 뜨는 것은 소소영영(昭昭靈靈) 지각이 일어난 상황이다. 밝을 소昭, 신령 영靈. 마음의 본래 상태인 빛의 마음이다.

 

마음의 자기지를 원효는 ‘본성이 스스로를 신묘하게 안다’는 의미에서 ‘성자신해(性自神解)’라고 부르고, 지눌은 ‘텅 비고 고요한 마음이 신령하게 자신을 안다’는 의미에서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 부른다.

 

텅 비어서 탁 트인 자유가 있는 빛의 마음.

 

이를 우리 명상은 ‘순수의식의 주의를 진공에 기울이면 진공빛이 응답해 의식에 밝아진다’고 말한다. 지눌의 말과 교환한다면 ‘공적영지의 광명’이 된다.

 

 

그러면 원효 지눌이 한 말을 현대어로 다시 한다는 것인가?

 

단지 그런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 원효 지눌을 말한 것은 고금동서의 뭇 종교와 명상이 모두 빛의 마음으로 뿌리를 내리고자 한 것임을 짚어 주는 것이고, 우리는 ‘빛운영’해 사람과 천지가 띤 진공의 빛이 보다 밝아져서 일찍이 없었던 밝기의 광명이 되게 유도하는 중이다.

 

빛운영 활동을 한 것에 따라 사람과 천지의 진공빛이 밝아지는 변화가 실제 상황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빛운영 활동을 계속하는 것에 따라 광명의 성장이 현재 진행중이다. 이는 이미 실현되는 중인 미증유이다.

 

그리하여서 우리가 위치한 이 현실이 새로운 밝기가 된 새 빛환경인 것에서 하루에도 무시로 ‘순수의식의 주의를 진공에 기울인다’는 것이고, 이 명상의 반복으로 우리의 자아인 순수의식과 광명 사이의 간격이 사라지는 합일(合一)에 이르자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광명해져서 진공의 빛이 빛의 일을 하는 것을 협업하면서 빛에서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어나는 삶을 살자는 것이다.

 

 

 

<부석사 가는 길> 사진=정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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