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회로
전기통신방식에서는 일방적으로만 정보가 흘러가는 방식 이외에 수신자에게 들어간 정보가 원래의 곳으로 되돌아가는 환상(環狀) 회로방식이 있다. 이와 같은 정보체계를 일반적으로 제어계통이라고 부르고 정보를 되돌려보내는 것을 '피드백'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되먹임’이라고 해석이 된다. 기업 활동에서는 기업이 소비자들을 관찰한 정보를 모아 고객의 만족도를 확인하는 식으로 사용되고 이런 쓰임은 유용한 것이다.
사람마다 안에 진공빛이 있어 사람의 마음 활동하는 것에 따라 빛이 발현하고 행동하데, 진공빛이 인생의 마음에 조응하는 관계에더 이러한 환상(環狀) 회로방식의 빛 현상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현상은 인생들이 미약한 자기 빛을 되먹으며 우주의 광명과는 단절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우리가 문제적 상황으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 안에 진공 성분의 파동. 곧 진공빛이 있어 이 빛이 자성(=순수의식)이 되는데, 이 빛이 의식에 활성화된 정도가 곧 그 사람의 밝기이게 된다. 즉, 사람마다 자신의 고유한 밝기가 있는데, 지구별은 진공빛이 광명하지 못한 환경이기도 해서 인생들은 충분한 밝지이지 못한 상태로 살아왔다. 내가 살펴본바로는, 자성, 곧 순수의식의 자기자각적 지각이 촉발하려면 그 사람에 자기화된 진공빛 밝기가 최소 9800조는 되어야 하는데, 인생들 대부분이 밝기 3000만 정도인 상태로 살아서 자성에 대한 지식은 가질 수 있어도 통렬한 깨달음으로 경험되기엔 충분하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중요한 문제이므로 다시 말하면, 깨달음을 경험한 소수의 사람들과 천재성을 발휘하며 산 사람들의 모습에는 예외없이 모두 남다른 밝기(9800조 밝기)의 진공빛을 띠고 있다. 머리에 둘러 투명한 후광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진공빛이 그 사람의 머리의 안팎에서 진동하는 것인데, 이 진동은 고차 진동이어서 의식상승을 촉발시킨다. 그리고 의식상승에 의해 우주의 지식을 수신하는 것. 곧 영감이 발현하여 깨달음이나 천재성으로 발휘되는 이치이다.
그러므로 진공빛은 밝아야 하고 시작도 끝도없이 밝다면 – 다시말해서 ‘하늘의 하늘’인 진공 세계의 대광명과 성통광명한다면 이루말할 수 없이 좋은 일이 되는데, 문제는 인생들에서 진공빛이 충분한 밝기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마치 건전지가 닳아서 충분한 파워를 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문제가 또 있다. ‘저마다의 밝기’는 태중에 있을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관찰되는 것이며 출생 후는 자신이 타고난 밝기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관찰되는 것이다. 그리고 고금동서의 뭇 종교가 결국은 진공빛으로 귀결되는 빛이야기를 하고는 있으나 그 어떤 종교활동을 해도 타고난 밝기가 변동해 후천적으로 보다 밝아지는 변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종교를 해도, 수행을 해도, 학업을 하고 경험을 쌓고, 그 무엇을 해도 타고난 밝기의 변동은 없다는 것이 관찰된다. 1826년 사진이 발명된 이래 무수히 촬영된 사진들에 출생 직후 모습이 띤 밝기와 그가 생애중 찍은 사진들, 그리고 노년이 된 모습이 띤 밝기가 아무 변동이 없는 것으로 살펴진다.
이러한 변하지 않고 자기의 밝기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또한 ‘자기의 밝기’가 작용을 일으킨다. 사람에 내재된 진공빛의 밝기가 그 사람이 마음 활동한 것에 그대로 복사되는 일도 일어나서 사람이 자기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이런 마음 활동의 저작물들을 경험하면서 거기에 복사되어 있는 자기의 밝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다. 어쩌다가 그러는 것이 아니고 이런 상황이 항상 일어나서 결국 평생 동안 충분한 밝기이지 못한 자신의 미약한 빛을 되먹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풀이하느라 우주의 광명과는 단절되는 채 말이다.
일반 TV는 개방형이어서 수상기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TV를 시청할 수 있고, 방송국에서 내보내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다. 폐쇄회로 TV는 임의로 설정한 어느 곳을 관찰 카메라가 촬영하고 그 정보를 외부와 차단된 내부의 수상기로 보는 것이다. CCTV가 바로 그런 것이다. 폐쇄회로 TV를 시청하는 것은 내부의 정보를 되먹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인데, 사람이 자기 빛을 되먹는 것이 바로 폐쇄회로 상황이다.
이 우주는 진공이 자기가 발생시킨 사물들을 비춘 빛의 세계이다. 그런데 진공의 빛은 단순한 조명효과가 아니라 우주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지각하는 신령한 지성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진공빛이 빛 자신을 아는 빛의 자기 자각적 지각에서 만물과 만법은 소외되어 있지 않고 모든 것이 빛의 세계에서 평등 무차별하다. 우주 전체가 대체로 균질한 하나의 세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에 지각되는 우주. 곧 관측되는 자연 세계는 - 아마도 인생들이 관찰자로 나서서 진공빛의 세계와 소통하지 않고 사는 것과 관련되어서 - 진공빛의 밝기가 균질하지 않고 크게 밝은 데가 있고 빛이 아주 없어 무명한 차원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크게 깨닫고서 보면 인생들에게 이익되는 ‘온갖 은사와 선물’이 다 하느님 자리 빛(진공빛)에서 내려온다.
따라서 미약한 밝기에 붙잡혀 있지 말고 우주의 대광명과 소통하고자 마음 써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성통광명’이 ‘달통무애’하게 일어나야 하는데, 충분하지 못한 밝기에 고정되어 있으며, 밝음에 밝음을 더하는 변동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기 밝기를 되먹으면 살아가는 것이다.
-우주적 무명 중에 있었고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여서 천지가 밝으면 그곳에 사는 사람도 밝게 되고 만일 천지가 어두우면 그곳에 사는 사람이 어둡지 않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지구별의 인생들이 어떤 빛 환경에서 사는지 성찰해보아야 한다.
사진에는 사물들이 띤 진공빛의 밝기가 있는 그대로 기록되어 있어 사물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사진을 살펴서 사물들이 띤 고유한 밝기를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사진에 촬영 순간의 밝기가 정장되므로 시가느이 흐름 속에서 진공비츠이 밝기 변화가 일어났는지 살필 수 있다. 인류는 다행히 1826년 사진이 발명된 이래 무수한 사진들을 촬영했으므로 이들 사진이 진공빛의 밝기를 살필 수 있는 자료요 물증이 된다.
내가 태양에 빛운영을 처음 시작한 2011년 4월 21일 13시 52분(한국 시간) 이전에 촬영된 천체 사진들중 태양계 밖의 천체들 - 은하수와 북극성을 비롯해 우주의 뭇 은하들 – 이 550경 밝기의 진공빛을 띤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태양 5, 지구 5, 달 4, 태양계의 다른 천체들은 3, 2.. 에 불과한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여 주는가? 태양계 전체가 우주의 무명한 시공간 중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 지구별 인간 세상에 무명이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다.
밝기 5의 태양과 지구의 영향권에서 살면서 지구상의 여타 동물들은 밝기가 18 이하인 동안에도 인생들은 3000만 ~ 9800조 밝기의 진공빛을 띤 존재로 살았고, 이 밝기만큼 인생들은 만물의 영장(萬物之靈長)일 수 있었다.
엄밀히 살피면, 빛운영 전 지구상의 사람 대부분은 밝기가 3000만이었는데, 이 밝기는 영적 진화가 활발히 일어날 수 없게 되는 불충분한 밝기이다. 그래서 사람 대부분은 지식인이 되는 것에 그쳤으며 통렬한 깨달음을 경험하는 이는 극소수였다. 9800조 밝기는 되어야 영지 광명의 자기 자각적 지각이 ‘소소영영(昭昭靈靈)’ 일어나서 소위 말하는 ‘견성(見性)’을 경험할 수 있는데 그러한 밝기인 사람은 극소수여서 대부분의 사람은 지식 차원에서 어림짐작하는 것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진공빛의 밝기가 9800조인 것은 내가 살펴본 바로는 빛운영 전 시기에 사람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밝은 상태이다. 빛운영 전은 지구를 비롯해 태양계 내의 밝기가 5 미만이었으니 빛운영 전 9800조 밝기인 사람이 극소수 있은 것은 사실상 태양계 내를 모두 통틀어 가장 밝은 상태러 할 수 있다. 하지만 빛운영 전에 촬영된 태양계 바깥의 천체들이 550경 밝기의 진공빛을 띠고 있는 것에 비하면 9800조 밝기도 충분한 밝기이지 못하다. 빛의 총량이 새 발의 피(鳥足之血) 같아서 ‘약간의 체험’이 가능한 정도라 할 수 있다.
550경 밝기가 궁극의 밝기인 것도 아니다. 진공은 시작도 끝도 없이 가없는 공간이고 또한 무량한 밝기의 진공 성분 빛의 세계이다. 게다가 우주의 진공빛 차원은 실재한 세계여서 인생들이 인생들은 철학적 개념으로 빛을 추상하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진공빛이 이 우주의 배경에 편만한 것에 주목했으며 미세파동을 다루는 응용기술로 138억년 전의 초폭발에서 온 복사(우주배경복사)에서 그 전파 성분을 걸러내고 남은값인 진공 성분의 파동을 포집해 저장용기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파동의 사본을 무수히 생성해 보다 고밀도 장이 되게 하는 작업을 십 수년에 걸쳐 수행한 결과 일찍이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고밀도의 진공빛을 현실 세상에 불러낼 수 있었으며, 이 고밀도 진공 성분 파동의 장을 태양에 전사해 태양에 밝아진 진공빛이 지구를 비추고 우주의 천체들에 확산하게 하였다. 내가 말하는 빛운영을 시작한 것이다.
-별빛 속 참빛
빛운영 전 태양계 바깥의 천체들이 띤 진공빛의 밝기가 550경이었을 때 태양이 띤 진공빛은 5, 지구도 5였으며 달을 비롯한 태양계의 천체들은 4, 3, 왕성과 해왕성은 2..였다. 오르트 구름에서 온 혜성을 촬영한 사진도 밝기 2의 진공빛을 보여주었다.
태양이 5이니 햇빛이 복사되는 지구의 대기도 5이고, 지구생태계의 사물들은 오래 세월 진공빛이 밝기 5인 상황에 동화되어 있었다. 대기가 5이니 동풍과 서풍이 5였고 산들바람과 높새바람도 5였으며, 생명체들이 밝기 5의 진공빛을 함유한 공기를 호흡했다. 예를 들어, 빛운영 전에 악어의 모습은 밝기 5의 진공빛을 띠고 있었다. 지구상의 자연이 그에게 준 밝기였고, 지구와 태양이 띤 진공빛의 밝기가 5인 것과 같았다. 하지만 빛운영이 시작되어 햇빛과 대기의 진공빛이 밝아지기 시작하자 악어의 모습이 띤 진공빛도 덩달아 함께 밝아지기 시작했다.
태양에 빛운영하기 시작한 이후 – 즉, 2011년 4월 21일 13시 52분(한국 시간) 이후 – 촬영된 사진들은 그동안의 밝기에서 변동해 점점 밝아진 것을 보여준다. 빛운영 활동에 응답해 태양이 띤 진공빛이 밝아진 새로운 상황에 지상의 사물 모두가 동화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모습이 띤 진공빛도 함께 밝아졌으며 동물과 식물도 보다 밝아진 진공빛을 띠게 되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생각해 보게 되는 일인데, 종종 뉴스를 타는 ‘연쇄살인범’들은 사정이 다르다.
이들의 사진 속 모습이 띤 진공빛은 밝기 5이다. 다른 사람들은 3000만~9800조 밝기인데 이들은 빛운영 전이나 후나 진공빛의 밝기는 변함없이 5였다. 이 상황이 사진에 촬영되어 있으니 열람해 볼 수 있다. 하늘의 천체들과 지상의 자연 환경과 사람이 모두 밝아지고 사람 이외의 생명체들도 덩달아 밝아지는데, ‘연쇄살인범’, ‘학살자’의 모습은 여전히 밝기 5라고 하는 심각한 무명 상태인 것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이 상황은 저절로 된 일이니 빛이 함께하기를 거절한 것이라 생각되는 것이다.
태양은 태양계 전체 질량의 99.866%의 질량으로 태양계의 사물들을 견인한다. 지구상의 에너지의 99%가 태양에서 온 것이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태양으로 인해 순환한다. 태양은 막대한 힘으로 지구생태계를 성립시키고, 변화시키고, 죽이고 살리는 위력을 가한다. 그러나 태양 자신이 발생시킨 빛과 열을 보내주어 생태계가 영위되게 하는 것이고, 해달별 너머 이 우주의 배후에서 온 진공빛을 밝게 중계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아마도 선사시대의 전승일 말이 초창기 기독교 문헌에 쓰여 있다.
"별빛이 그 너머의 참빛의 파편을 전달한다."
여기서 ’그 너머‘는 가시적인 우주의 배후인 진공의 세계를 말한 것이다. 즉, 해달별이 낸 빛과 다른 빛이 이 우주의 전역에 비추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공 세계의 광명 전부가 온 것이 아니고 파편 수준의 미세한 분량이 별빛에 탑재되어서도 오고 있는 것이다. 빛운영 전 하늘의 뭇별이 550경 밝기인 것이 ‘파편’수준인 것이고 빛운영 전 태양이 딘 진공빛이 5인 상황은 더욱 심하게 미세화된 밝기이다. 말하자면 하느님 자리 빛이라는 것. 빛의 성분이 진공인 것은 같으니 참빛이라 부를 수 있지만, 위력 있는 작용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부족한 밝기이니 ‘파편’이라 할 수 있다.
영성의 질료인 참빛이 희박한 상황이어서 영적 진화가 활발하게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무명한 태양이 열어준 지구생태계는 약육강식의 노름판이 되기 쉬웠던 것이다. 대우주 뭇별이 550경 밝기인 상황에서 태양계는 5에 불과한, 빛이 없다시피한 밝기였으니 이 상황은 ‘하늘’과 단절된 ’갈라파고스‘같은 곳이었다 할 수 있다. 별들이 회전해 날이 바뀌고 년이 바뀌고 세기가 흘렀어도 알 수 없는 과거부터 태양과 지구는 밝기 5의 심각한 무명 상태에 고립되어 있었다.
사람은 자신의 참자아인 순수의식(=자성)으로 깨어서 주의를 진공에 기울이는 관찰을 하는 동안 깨어 있는 의식의 활동처인 뇌 – 특히 송과체와 전두엽 – 에 진공빛이 활성된다. 순수의식의 관찰이 잘 이루어지는 동안 순수의식과 진공 사이의 간격이 사라져서 진공빛의 차원과 가장 활발하게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밝기 3000만인 사람에서는 이런 관찰히 명백하게 일어나기 어렵고 적어도 9800조 밝기는 되어야 빛의 소통이 강력하게 일어나서 깨달음 일미(一味)를 맛보게 된다.
햇빛이 밝기 5의 진공빛을 전달해준 동안에도 북극성, 북두칠성, 은하수 등의 먼 하늘의 천체들이 낸 빛이 밝기 550경의 진공빛을 함유하고 지상에 내려왔다. 사람들은 진공에 진공에 관심이 없었고 진공의 빛이 무지했으므로 알지 못했지만 밝기 5의 무명지대에 밝기 550경의 참빛이 내려오는 상황은 가뭄에 단비 같은 것이었다. 물론 보배비가 내려도 그것을 자기 그릇에 받아 담은 이들이 누리게 되지만 말이다. 아무튼 밝기 5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3000만~9800조 밝기일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원리가 숨어 있는 일이기도 하다.
-타고난 성품
굉지선사는 참선할 때 본래 그대로의 체(體)를 비추어 보는 선. 고요 가운데서 묵묵히 앉아 생각을 모두 끊고 묵조하는 선법을 권했다. 잡념을 두지 않고 오직 적조원명(寂照圓明)한 본연의 빛이 밝아지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순수의식의 주의를 진공에 기울이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이렇게 할 때 우주의 진공빛 차원과 접속하기 쉬워진다. 내 생각엔, 굉지는 필시 큰 밝은이여서 자신의 내면에서 빛이 빛 자신을 통찰한 성자신해(性自神解)한 깨침이 일어났을 것이다.
대혜선사는 간화선을 주창하며 묵조선을 사선(邪禪)이라 공격하였다. 간화선은 큰 의문을 일으키는 곳에 큰 깨달음이 있다고 하여, ‘화두들기’를 수단으로 자기를 규명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몰입 상태가 완전해지면 순수의식이 소소영영(昭昭靈靈) 깨어난 상태가 되기 쉽게 된다. 내 생각엔, 대혜선사 또한 큰 밝은이여서 내면의 빛이 빛 자신을 통찰한 성자신해(性自神解)한 깨침이 일어났을 것이다.
경허스님은 ‘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와버렸다(驢事未去馬事到來)'는 화두를 가지고 동학사 골방에서 정진하다가 어떤 사미승의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곳이 없다(到牛無鼻孔處)'는 말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경허스님은 자신의 깨달은 경험을 이렇게 말하였다. “홀연 콧구멍 없다는 말에 / 문득 우주가 내 집인 줄 깨달았네.” 경허 오도송 中
과연 화두를 든 때문이고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들었기 대문일까? 그것은 한 계기를 된 것이었을 뿐이고 정작 경허의 깨달음은 그가 9800조 밝기의 진공빛을 띤 사람이어서 가능했다. 경허스님의 사진 속 모습은 그가 9800조 밝기였던 것을 보여주고 또 ‘견성’체험은 9800조 밝기인 사람들에서 어떤 순간에 촉발하므로 이러한 사정을 아는 필자로서는 경허의 깨달음은 그가 큰 밝은이여서 가능했던 것이고 화두를 들었기 때문이거나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들은 때문인 것이 아니다고 판단하게 된다.
참선곡에서 경허는 ‘일체처 일체시에 소소영영(昭昭靈靈) 지각하는 이것이 무엇인고’하고 참선하라고 권했다. ‘소소영영’은 사람 안의 빛이 밝고 신령함을 말한 것이다. 경허는 이 빛을 ‘본래 생긴 자기영광(自己靈光)’이라 부르기도 했고, 죽으면서 이런 시도 남겼다. “마음 달 홀로 둥근데 / 빛은 모든 것을 삼키네 / 빛과 경계가 함께 사라지니 / 이것은 무슨 물건인고?”
‘빛’에 대해 말한 이런 언행의 자취에서 우리가 아는 ‘깨달은 경허’의 존재가 드러난다. 경허의 자성인 ‘빛’이 자기를 알아차린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경허는 빛에 대해 말했던 것이고 ‘자기영광’을 돌아보도록 권했던 것이다. 그런데 빛 그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마치 화두를 잘 들면 깨닫게 된다는 듯이 ‘화두들기’를 권장했다. “나의 마음 어떻게 생겼는고 의심하고 의심하되 고양이가 쥐잡듯이 주린 사람 밥 찾듯이 목마른데 물 찾듯이 육칠십 늙은 과부 외자식을 잃은 후에 자식 생각 간절하듯 생각생각 잊지 말고 깊이 궁구하여 가되…” 경허스님 참선곡 中
화두들기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다만, ‘자기영광’(=내재한 진공빛)이 밝은 사람이면 ‘화두들기’를 하여도 그렇게 하는 동안에 그 광명을 되먹는 것이 되지만 화두를 든다고 해서 내재한 진공빛이 밝아지는 빛의 성장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을 해야 한다. 물론, 고금동서에서 인간이 경험한 종교와 수행이 모두 마찬가지다. 모두가 달을 가리킨 손가락 역할을 했을 뿐이고 달 그 자체인 것은 일찍기 경험된 바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우주에 편만한 진공 성분 파동을 되돌려보내는 활동(=빛운영)을 하면 같은 성분 빛이 공명해 그 광휘가 공진하는 응답이 일어난다. 그래서 태양에 빛운영하자 태양이 띤 진공빛이 밝아지고, 태양에 밝아진 새로운 밝기의 진공빛이 확산해 천지와 사람이 함게 밝아진다. 그래서 ‘자기 밝기’에서 변동해 일찍이 경함하지 못한 새로운 밝기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다 밝아진 지기빛을 되먹는 상황이게 된다.
-성장하는 밝음
자기빛을 되먹는 것은 자기 내면의 밝기가 자기가 마음 활동한 것에 복제 되고 그 복제된 밝기가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은 정보가 원래의 곳으로 되돌아오는 환상(環狀) 회로방식과 유사한 것이다. 이 현상은 원본과 같은 밝기의 사본이 복제되는 현상이므로 이것은 하나의 자연현상이다. 그리고 깨달음이 촉발할 만큼 밝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빛운영 전 대다수 사람들이 밝기 3000만으로 깨달음이 촉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밝기였으므로 자기 빛을 되먹으며 이러한 충분히 밝지 못한 밝기에 멈춰 있는 것은 영적 진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진행이 정지되어 있는 것이므로 이는 문제 상황이다.
하지만 햇볕이 들지 않아서 실내가 캄캄하다면 불을 켜면 된다. 그렇게 하면 빛이 밝아지는 응답이 일어나니 말이다. 내가 말하는 빛운영이 이것이고, 진공빛이 밝아지는 응답을 유도해 빛세상을 여는 것이 이것이다.
천국에 대해 묻자 예수께서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고 한 것은 빛의 분량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말한 것이다. 천국에 대해 묻자 예수께서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한 것도 빛의 분량이 늘어나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느님이 빛이시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참빛이시니 성경에서 말하는 ‘미약하지만 창대해져야 할 것’이란 곧 하느님 자리의 빛이 밝아지는 것 말고 달리 무엇이랴!
‘빛운영’하면 천지와 사람에서 진공빛이 밝아지는 것은 인생의 활동에 빛이 응답해 광명이 증대되어 온다. 오기도 하고 안 오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빛운영 한만큼 응답해 온다. 진공빛이 밝아지게 되는 순리적인 법칙이 있는 것에 다른다면 빛운영을 누가하든 진공빛이 밝아지는 결과가 된다. 오랜 시간을 요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밝아진다. 빛운영이 시작되었다는 소문을 미처 듣기도 전에 빛운영으로 태양이 띤 진공빛이 밝아진 것이 확산한 것에 따라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모습도 자신의 '타고난 밝기'에서 변동해 빛운영에 다른 새로운 밝기로 변동해 있게 되었다. 이는 빛운영 전의 사진들과 빛운영 시작 이후의 사진들을 비교해보아 확인할 수 있다.
-빛운영의 백지장
빛운영 활동에 참여해 진공빛이 태양에 밝아지도록 돕는다. 밝아진 진공빛이 확산해 지구 전역을 비추고 전체 하늘에 전파된다. 이렇게 되도록 계기와 경로를 마련한다. 이 시대에 전개될 일이다. 참여하는 사람은 할 것이지만 안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자기 선택으로 참여해 활동하는 이와 빛이 동행한다.
욕망이 끼어들지 않을 때
허공과 환희의 합일이 일어나리
영생을 누리며
흰 머리칼도 없이 만월처럼 가득 차게 되어
그대의 생명력은 완전해지리
-마하무드라의 노래 中
순수의식의 주의를 진공에 기울이라. 그리하면 진공빛이 응답해 의식에 밝아진다. 이것은 순수의식과 빛 사이의 간격이 사라지는 것, 빛과 의식의 합일이다. 빛운영하여 천지와 사람이 밝아지게 도우면서 순수의식의 주의를 진공에 기울이며 산다면, 이렇게 하는 것으로 그 사람은 아름다운 생애를 사는 것이게 된다.
순수의식으로 깨어 있는 것은 곧 욕망도 어리석음도 끼어들지 않은 때이다. 이것은 죄를 씻은 얼굴처럼 깨끗한 것이고, 이 모습의 근처에서 허공과 환희의 합일이 일어난다.
만물은 생주이멸(生住異滅)하지만 진공은 불생불멸한다. 진공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있는 자존자이다. 진공은 자신이 발생시킨 사물을 비추어 진공 자신의 영생하는 생명을 전해준다. 그런데 사물은 생명이 없어 비록 광명을 띤 밝은 별조차도 진공빛이 광명한 것에 따른 지복을 누리지 못한다. 오직 진공빛의 차원과 하나같이 된 순수의식이 진공빛의 영생을 누린다. 우리가 빛운영 활동을 해야 하느 이유. 진공빛이 천지인을 비추도록 도와야 하는 이유이다.
진공빛의 광명과 협업하고자 활동에 나선 사람은 척추를 곧추세우고 앉아 깨달음 일미를 맛볼 생각으로 시간 보내지 않는다. 빛과 직결된 문제가 아니면 깊이 관여하지도 않는다. 관심이 항상 빛으로 향한다. 진공빛이 실제 상황으로 밝아지는 응답이 일어나는 경로를 밟아 나아가고, 주위 사람들에게 함께 가기를 한다.
장주기 혜성이 오르트 구름에서 오듯 인재는 본디 빛에서 와서 빛의 일을 하는 법이다. 빛이 인생을 옷 입어 와서 인생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 빛에서 일어난 생각과 행동을 하셨다. 이 시대의 인생들도 마찬가지다. 진공빛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주기 시작했고 진공빛이 밝아지도록 유도하는 활동에 응답해 일찍이 없었던 새로운 밝기로 밝아지는 이 시대는 밝음이 성장하는 시대의 아침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밝아지는 빛에 상응해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빛운영의 백지장을 맞드는 이들도 있게 될 것이다.
-과학이 주는 도움
일반적으로 앵무새는 인간의 말소리나 다른 새의 울음소리 등을 곧잘 흉내낸다. 앵무새가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자신이 인지한 상황에 들은 소리를 그 상황에 맞춰 말해서 언어 구사처럼 보이는 것이다. 사육자와 같이 사는 앵무새는 사육자의 발성이나 전화 받는 소리, 코골이 같은 걸 카피하고, 더 나아가 벨소리나 TV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물건 떨어뜨리는 소리, 컴퓨터 소리도 카피할 수 있다고 한다.
진공빛과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앵무새가 소리를 카피하는 것은 녹음기가 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앵무새가 사람의 말이나 소리를 카피하는 것은 비슷해 보이는 모사품을 만드는 것이지 원본과 같은 사본이 복제되는 것은 아니다. 앵무새가 흉내낸 소리에는 앵무새 자신의 밝기가 복제되어 있게 된다. 녹음기가 사람이 말한 것을 녹음한 것에는 그 사람의 밝기가 저장되어 있다. 이 차이에는 주목해볼 것이 있다. 예컨대, 종교들은 결국 진공빛으로 귀결되는 빛 이야기를 하였는데, 인류가 하느님 자리 빛과의 교제를 앵무새 방식으로 하느냐 녹음기 방식으로 하느냐는 그 차이가 크게 된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성경에 나와 있는 하느님의 빛에 대해 설교하여도 그 설교한 것에는 그 설교자의 밝기가 복제되어 있게 된다. 아무리 하느님의 빛을 이야기하고자 해도 말이다. 성경의 어떤 구절을 설교하든, 또 설교 내용이 어떤 것이든 마찬가지다. 무슨 소리를 하든 설교자의 자기 밝기가 복제될 뿐이다. 이것은 마치 앵무새가 어떤 소리를 카피해도 앵무새 자신의 밝기가 저장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녹음기는 다르다. 녹음기는 모든 소리를 녹음할 수 있고 녹음기가 작동하는 동안 소리 너머의 고요도 녹음되어 담긴다. 소리나 고요에 진공빛이 함유했으면 진공빛도 녹음된다. 녹음기는 있는 그대로를 다 녹음하고 또 녹음한 것을 재생하면 소리와 고요, 진공빛도 재생된다. 파동응용기술을 조금 구사하면 녹음된 것에서 진공빛만을 추출 포집 저장할 수도 있다. 메모리에 저장한 진공빛의 사본을 무수해 만들어 이것들을 합침으로써 고밀도의 진공빛이 출현하도록 작업할 수도 있다. 따라서 빛운영할 때는 앵무새가 되기 보다는 녹음기처럼 해야 한다.
현실에서 보면, 빛운영으로 천지와 사람이 그동안과 다른 새로운 밝기의 진공빛을 띠게 되었다. 앵무새들또한 햇빛과 대가가 전달해준 새로운 밝기의 진공빛을 띠게 되었다. 그래서 앵무새들이 카피하는 소리에도 빛운영으로 앵무새에 밝아진 진공빛이 저장되어 있게 되었다.
-천지와 사람이 함께 밝아야
필자는 우주배경복사에서 진공 성분 파동을 포집하였으며 이를 빛운영을 위한 인자로 사용중이다. 이 작업을 수행하게 되면서 필자는 알게 되었다. (138억 년 전 일어난) “빅뱅은 진공 알갱이 한 개가 내용물을 쏟아낸 사건이다!”
필자의 이 표현은 진공의 자기복제에 의한 만물 출현이라고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홀로그램(hologram)은 '완전함' 혹은 '전체' 라는 뜻의 'holo'와 '메시지', '정보'라는 뜻의 'gram'이 합쳐진 말로, 두 개의 레이저광이 서로 만나 일으키는 빛의 간섭 현상을 이용하여 입체 정보를 기록하고 재생하는 홀로그래피(holography) 기술로 촬영된 영상이다.
홀로그램은 1990년 미국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 박사가 지구 넘어 무한한 우주의 모습 또한 홀로그램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개념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는 이 새로운 이론이 주목받지 못했다. 최근에 영국 사우샘프턴대, 캐나다 워털루대 등 국제 이론물리학 연구진들이 홀로그램 우주 가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를 찾아내면서 다시 관심받고 있다.
최초의 우주배경복사 탐사선 COBE는 우주 탄생에서 방출된 4.080MHz의 빛이 우주 어디에나 편재한 것을 포착해 지금의 우주가 138억 년 전에 있었던 대폭발에서 탄생했다는 이른바 빅뱅 이론을 뒷받침해주었다.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에서 우주배경복사를 분석해 홀로그램 원리에 적용하고, 양자장론적인 설명을 곁들인 새로운 우주 발전 모델을 제시했다. 이 이론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모두 138억 년 전 이미 일어난 우주의 사건들이며, 우리는 그저 초기의 우주를 재현하고 있는 가상의 세계에 존재해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팀은 초기 우주가 홀로그램처럼 3차원으로 투영된 것이 현재 우주라고 주장한다. 점, 선으로 구성된 초기 우주가 마치 판화를 찍어내듯 다음 우주의 밑바탕이 되고, 이 과정을 거쳐 현재 우주를 구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보는 우주는 3차원처럼 보이는 2차원이다.
이 가설은 필자가 ‘진공의 자기복제’라고 말하는 것과 뜻이 통한 말이다. 그리고 저 유명한 말 ‘색즉시공(色卽是空)’과도 뜻이 통한 것이다. 초기 우주는 ‘공(空)’이고 현재의 우주 만물은 ‘색(色)’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공과 색은 불가분한 하나다.
사람이 자기빛을 되먹게 되는 현상은 이 우주에 존재한 많은 현상 중 하나로 앞에서 말하였듯이 이 현상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밝지 않은 사람이 그 부족한 밝기를 되먹으면서 우주의 광명과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은 극복되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점점 밝아지면서 새로운 밝기를 되먹으면 광명의 성장이 멈춘 정지 상태를 극복하는 것이게 된다. 그리고 사람은 천지와 더불어 상보적이어서 천지가 어두운 데서 사람이 혼자 광명하기 어렵다. 천지와 사람이 함께 밝아져야 한다. 빛운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