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修道)’와 빛운영 ‘수행’
이 글의 이야기는 글을 읽어 그 뜻을 알게 되는 일반적인 독서와 같지 못할 것이다. 감각적으로 알지 못하는 무형의 빛에 대해 그 밝기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책에서 사진이 띤 진공빛에 대해 말하곤 하듯이 이 글에 가져다 놓은 사진은 그냥 보고 지나가자는 것이 아니라 각 사진이 띤 진공빛의 밝기를 지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이 말하는 진공빛의 차원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초감각적 지각을 사용해야 한다. 이 지각은 생명이 가진 본성과 같은 것으로, 우리가 평소 사용하지 않으나 누구나 사람의 내면에는 이러한 본성 감각이 있으니 사용해 볼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생명현상이 진공빛이 존재한 것과 그 밝기에 대해 생명 본성으로 알고 그에 대해 반응해주는 신호를 따라가면서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뜻과 교감해보기 바란다.
미래에는 종교가 그간에 해온 수행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빛운영을 수행하는 것’을 ‘수행’으로, 자신과 세상을 위한 수도(修道)로 삼는 이들이 있게 될 것이다. 이 글이 말하는 이야기가 그러한 ‘수행’을 인류의 삶에 불러오는데 보탬이 되면 좋겠다.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교황과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는 타고난 진공빛의 밝기가 같았다. 이는 기이한 우연인지, 혹은 하늘의 기획인가, 알지 못하겠다. 아무튼 두 분이 타고난 진공빛의 밝기가 1억3천만으로 같다. 이에 대하여 사진1과 사진2에서 살펴볼 수 있다. 사진이 띤 빛에 대한 생체의 반응도 같게 나올 것이다.
사진1과 사진2는 둘 다 빛운영 전(2011년 4월 21일 이전)에 촬영된 것이고, 좌측의 청소년 때 사진이나 우측의 사제/추기경이 된 후나 타고난 밝기에 변동이 없다. 빛운영 전은 하늘의 천체들에서나 자연의 사물에서나 사람에서나 진공빛의 밝기에 아무런 변동이 없었다.
사진3의 좌측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은 빛운영이 시작되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 촬영된 것이다. 그래서 진공빛의 밝기가 자신의 타고난 밝기보다 한 결 밝아졌다. 빛운영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다. 사진3의 우측 바오로 2세 교황의 사진은 자신의 타고난 밝기 그대로다. 빛운영이 시작되기 전 시절에 촬영된 사진이기 때문이다.
태양에 대한 빛운영은 2011년 4월 21일 13시 52분 (한국시간)에 시작했으며 이후 계속했다. 그래서 사진4 우측의 빛운영 11년이 넘은 2022년 6월 1일의 태양은 수치화할 수 없이 밝은 진공빛을 띠었다. 그리고 태양에 밝아진 이 진공빛이 천지와 사람에 확산중이다.
빛운영 활동은 필자가 시작하였지만 이제 그럴만한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다수의 사람들이 협업해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한다면 하는대로 더 큰 단위로 진공빛이 천지와 사람에 밝아질 것이다.
좌측) 훗날 프란치스코 교황이 되는 소년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우측) 사제 때.
진공빛의 밝기, 둘 다 1억3천만
좌측) 훗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되는 카롤 보이티야의 12살 때 모습.
우측) 추기경 때
진공빛의 밝기, 둘 다 1억3천만
프란치스코 교황(왼쪽/빛운영 후)과 요한 바오로 2세.(빛운영 전)
진공빛의 밝기 좌측) 프란치스코 교황, 타고난 밝기보다 크게 밝아졌다. 우측)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1억 3천만.
2011-0420 11:30:01 UT / 2022-06-01 15:36;46 UT
진공빛의 밝기, 좌측, 5. 우측, 수치화할 수 없이 밝다.
- 은총 혹은 진공의 자기복제
교황은 직무상 축복 입맞춤을 자주 하시나 보다.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어떤 아기에게 축복 입맞춤하시는 사진이 보인다. 한센병 환자인듯한 발에 입맞춤하는 사진도 있다. 그런데 입맞춤하시는 모습의 진공빛은 교황 자신이 타고난 밝기이고, 입맞춤을 받은 아기나 발이 띤 진공빛은 자신들이 타고난 밝기이다. 교황으로부터 밝은 빛이 전이된다거나 하는 변화는 없었다는 것이 사진에 나타나 있다. 빛운영 전은 하늘의 천체들이나 자연의 사물, 사람들이 모두 저마다의 자기 밝기에 정지되어 있었다.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정이 달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2013년 3월 13일은 태양에 빛운영하기 시작한 지 2년이 된 때였다. 그래서 즉위하신 때 교황의 모습이 띤 진공빛은 밝기가 300조(1012)이다. 타고난 밝기 1억3천만이었던 것이 빛운영을 2년 한 것에 동화되어서 보다 밝아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께는 교황 개인에 대한 빛운영도 해드렸다. 교황께서 방한하셔서 그 일정에 맞춰 빛운영 해드리게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2014년 8월 14일 오전 10시 30분 성남 서울공항으로 입국해 일정을 시작하고 방한 마지막 날인 18일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신 후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하시는 일정이었다. 그래서 방한 마지막 날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는 순간부터 빛 전달이 시작되어서 이후 빛 전달이 계속 이루어지도록 빛운영상의 설정을 했다.
설정한 대로 응답 되어서 서울공항으로 입국하시는 사진보다 출국하시는 사진이 훨씬 더 밝은 진공빛을 띠게 되었다. 두 사진에 대한 생체의 반응도 차이가 뚜렷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께 빛운영한 것에 대하여 필자가 쓴『빛운영에 관한 보고서』제1권, 제2권에서 서술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 빛전달이 계속 이루어져서 2015년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을 방문하셨을 때는 밝기가 S1재(1044)가 되었다. 그리고, 혹시 그 때문일까? 필라델피아 방문길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2015년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을 방문해 필라델피아 방문 길에 1살배기 여자아이 지안나에게 축복 입맞춤을 해주게 되었다. 지안나는 병원에서 치유 불능으로 판정을 내린 중증 뇌종양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교황의 축복 입맞춤을 받은 지안나의 뇌종양이 치유되었다. 이 ‘기적’은 유튜브 뉴스를 인용해 우리나라 SBS도 보도하였다.
교황이 축복 입맞춤을 하자 지안나가 교황과 같은 밝기로 변한 것이 사진에 나타나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당시는 빛운영한 지 5년이 된 때여서 지안나도 크게 밝은 빛을 띠게 된 상황이었지만 교황께는 개인에 대한 추가적인 빛운영이 이루어져서 교황은 남달리 더 밝은 빛을 띤 상황이었다.
교황의 직무가 신을 대리하여 것이니만큼 요한 바오로 2세도 축복 입맞춤하실 때 더없이 정성스럽게 하셨을 것이다. 교황이 축복하셨으니 이런저런 감동이 있었을 것이고, 그에 따른 변화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진공빛이 밝아지고, 다른 사람이 밝아지도록 변화를 불러일으킨 것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중이었지만 빛운영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으며 활동한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께서 아기를 축복하신다.
교황은 자신의 타고난 밝기이고 아기도 자기 밝기이다.
이 사진은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께서 한센병 환자의 발에 축복 입맞춤을 하는 장면인 것 같다.
교황은 자신의 타고난 밝기(1억 3천만)이고, 발도 자기 밝기이다.
2015년 9월, 필라델피아를 방문중인 교황께 축복 입맞춤을 받기 위해 수행원이 지안나를 교황께 들어올리고 있다.
‘태양에 빛운영’ 4년 5개월이고 ‘교황께 빛운영’한 지 1년이 된 때여서 교황의 진공빛의 밝기가 S1재(1044)이다.
※S1재=9,999무량수×1재(1044)
교황이 축복해줄 수 있도록 교황께 들어 올려지는 지안나.
진공빛의 밝기, S20.
※S20=S1(9,999무량수)×20.
2015년 9월은 태양에 빛운영한 지 4년 5개월 된 때여서 사람들이 대체로 이런 밝기가 되었다.
교황의 입맞춤 축복을 받은 후의 지안나. 교황과 같은 밝기가 되었다!
진공빛의 밝기, S1재
2015년 9월은 태양에 빛운영한 지 4년 5개월이 된 때여서 천지와 사람이 띤 진공빛이 증대된 것에 따라 지안나도 밝기가 S20이 되었다. 그런데 교황께는 교황 개인에 대한 빛운영이 추가적으로 이루어져서 교황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훨씬 더 밝은 S1재(1044) 밝기인데, 이러한 빛이 축복 입맞춤을 통해 지안나에게 전해진 것이다.
- 빛운영에 응답한다
빛운영 전은 하늘의 천체들이 띤 진공빛의 밝기가 변동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저마다 타고난 밝기가 변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고 모든 것이 변하는 가운데서도 진공빛의 밝기가 변하는 일은 천지와 사람 어디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사실은 1826년 사진이 발명된 이래 인류사에 축적된 사진들이 보여주는 것에서도 발견해 볼 수 있다. 그래서 보게 된다. 사람이 저마다 타고난 밝기로 평생을 살았음을.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직무를 보는지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빛은 그런 것에 참견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이 빛에 대해 설교, 비유, 은유, 상징, 격외의 표현을 하여도 아무런 반응이 없고, 예로부터 늘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 같다.
‘침묵’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이 우주가 진공에서 났고, 진공 안에 있고, 사물의 안에도 진공이 들어선 때문에 ‘침묵’은 진공의 소리, 곧 천지의 본음이다. 진공빛이 밝아지는 응답도 거기서 비롯해 온다.
빛이 빛을 알고, 빛이 빛의 일을 한다. 성분이 같은 빛이 공명한다. 빛은 빛이 아닌 것을 알지 않고, 빛의 일이 아닌 일을 하지 않는다. 성분이 같지 않은 빛이 공명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대화하고자 하면 하느님의 말을 사용해야 한다.
하느님이 인간의 말을 알아 들어주시기를 바라는 것은 빛에게 빛이 아닌 것을 이해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하느님은 빛이시니, 하느님이 비춘 빛을 하느님의 빛에게 비추어야 한다. 그러면 같은 성분 빛이 공명해 그 광휘가 공진하므로 밝음이 증대한다. 빛운영이다.
천지와 사람에서 진공빛이 밝아지는 응답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빛운영은 겨자씨가 자라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는 나무가 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성장하는 천국이다. 수많은 이들이 연대하고, 세대를 이어 노력하기를 거듭하면 점진적으로 나무가 자랄 것이다.
종교는 이정표와 같고, 네비게이션의 안내음과 같다. 종교는 안내음이 한 말을 믿는 것을 중요한 일로 다룬다. 빛운영을 수행하는 것은 실지로 운전해 목적지로 향해가는 것 같다. 빛운영에서는 믿음은 참고 사항이고, 운전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되는 카롤 요제프 보이티와(Karol Josep Wojtyla)가 1920년 5월 18일 폴란드 바도비체(Wadowice)에서 탄생했다.
진공빛의 밝기, 1억 3천만.
1978년 10월 16일 교황으로 선출됨으로써 교황 하드리아누스 6세(Hadrianus VI) 이래 456년 만의 비(非)이탈리아인 교황이자 최초의 슬라브인 교황이 되었다.
진공빛의 밝기, 1억 3천만.
1984년 5월 3일 한국을 첫 사목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김포공항 트랩을 내리자마자 엎드려 땅에 입 맞추고 있다.
진공빛의 밝기, 1억 3천만.
1989년 세계성체대회를 위해 한국을 다시 찾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진공빛의 밝기, 1억 3천만.
평생이 기도하신 나날이셨다.
진공빛의 밝기, 1억 3천만.
2002년 토론토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서 청년들에게 인사하는 교황.
교황의 진공빛의 밝기, 1억 3천만.
986년 인도 캘커타를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테레사 수녀와 만나고 있다.
교황의 모습이 띤 빛은 자신이 타고난 밝기인 1억 3천만이고, 필자가 보기에는 테레사 수녀의 모습이 더 밝은 빛을 띠었다.
1981년 5월 13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피격당했지만 모습에 평소와 같은 밝기의 진공빛이 함께하여 있다. 만일 돌아가실 것이었으면 진공빛이 떠나고 없을 것이다.
저격당하시자 교회는 기도하였다. “성모님의 자애로운 손길 덕분에 목숨을 구하고”
요한 바오로 2세는 바티칸 교황궁에서 2005년 4월 2일 토요일 오후 9시 37분에 선종하였다.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유해가 3일 바티칸 아포스토릭궁 클레멘타인홀에 공개된 가운데 에두아르도 마르티네즈 소말로 추기경(좌)이 성수를 뿌리고 있다.
추기경은 살아계신 분이시므로 이 분이 타고난 밝기의 빛을 띠었고, 돌아가신 교황의 모습에는 진공빛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빛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임종에 앞서 빛이 먼저 떠나갔다.
- 빛운영하라, 그리고 진공을 보라
아버지는 ‘가까이할 수 없는 빛 속에 사시고’, ‘하느님은 영이시며’, ‘일찍이 아무도 하느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영적 권고 묵상집 『기쁨에 찬 가난』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은 성경의 다른 말들 사이에 떨어져 있었던 부분들을 가져와 한 문장처럼 보도록 우리 앞에 놓아주셨다.
하느님은 빛이시고 영이시다, 그래서 하느님은 영이 산 자만을 '살았다' 하시고, 영이 죽은 거듭나야 하는 자는 하느님께는 ‘없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사랑으로 인하여 오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의 빛을 잃은 자이며 영으로 거듭나지 못하였고 혼을 자기로 알며 살아서 ‘없는’ 것과 같은데도 성경은 ‘구원’에 대한 소식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기독교 천년 제국의 기틀을 세운 신학자이자 주교였다. 그의 신학의 골자인 ‘조명설’에 의하면, 처음에 인간은 이성으로 진리를 찾아 나서지만 감각적인 사물들에서 진리를 찾지 못한다. 이번에는 우리 자신의 안으로 들어와 우리의 안, 즉 의식 속에 들어와 있는 감각적인 사물들의 인상들과 형상들에서 진리를 찾지만 의식 속에 있는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서 지나가 버리고 결국에는 없어지는 것이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식에 있는 것에서도 진리 자체인 것을 찾지 못한다. 그리하여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우리는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의 의식에 있는 것들도 뛰어넘어(超越) 마침내 진리와 만나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우리가 진리와 만날 때 ‘빛’이 우리를 비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조명’(照明, illuminatio)이라 하였다.
우리 자신의 의식에 있는 것들을 뛰어넘는 것은 곧 순수의식을 수립하여 하느님이 살리신 처음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순수의식이 빛의 자리이고, 죄 없는 상태이다.
예수께서 ‘네 안의 빛이 어둡지 아니한지 보라’한 것은 ‘조명’하라고 이르신 것이고, 성경이 ‘일어나 빛을 비추라’한 것도 ‘조명’을 권고한 것이라고 알 수 있다. 그러나 빛이 있어야 비출 수 있는데, 우리가 빛을 잃고 잊어서 있기나 한지 봐야할만큼 빛이 미약하다.
빛이 미약하면 그것으로 창대하게 비추지 못한다. 하지만 길은 있다. 밝음에 밝음이 더해지게 비추면 빛의 분량이 늘어난다. 이렇게 되어서 진공빛이 밝아지는 응답이 하늘의 천체들과 자연의 사물과 사람들에서 두루 일어나게 된다. 빛운영이다.
로널드 헨델은 저서 『창세기와 만나다』에서 신이 다가올 미래의 의인을 위해 빛을 따로 남겨 두었다는 미드라쉬의 해석을 인용한다. 라쉬의 성서 구절에 대한 해석은 빛이 창조 첫째 날 창조되지만 태양은 4일째가 되어서야 창조되는 창조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라쉬는 첫째 날의 빛이 넷째 날 햇빛과 달라야 하며 신이 이 태초의 빛을 종말이 올 때까지 감춰놓았다고 추론한다. (158P)
천지 이전도 진공이니 창조의 첫날에 있은 빛은 진공빛이다. 이 알아차림으로 인해 ‘하느님은 진공이시다’는 저 선사시대 철인들의 세계관에 주목해보게 된다. 그리고 생각해보자. 어찌하여 ‘의인’인가? 하느님의 빛을 세상에 전하는 활동은 의로운 일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