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험적인 것들의 기원
- ‘선험적 의학’시조 파라켈수스 (1)
눈에 띄는 글이 있어 주목해보게 된다. 파라켈수스인데, 자연은 빛이며 자연을 그 자체의 빛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보이는 자연’과 ‘보이지 않는 자연’이라 하여 구분하고, 보이지 않는 자연은, 자기 내면의 빛으로 자연을 지각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고 말하였다. 놀라운 말이다. 저 선사시대 사람들의 세계관, 특히 참전계경 경신에 ‘해·달·별·바람·비·벼락은 모습이 있는 하늘이요, 모든 것을 보지 않음이 없고 소리를 듣지 않음이 없는 것은 모습이 없는 하늘이라. 모습이 없는 하늘을 하늘의 하늘이라 하며, 하늘의 하늘은 곧 하느님이니’라고 한 말이 가진 사상과 소통된다고 보인다.
Nature is a light and by
looking at nature in her own
light we will understand her. Visible nature can be seen in her visible light:
invisible nature will become visible medicinal
transcendence, if we require the power to perceive her
in her quintessential inner light.
-Paracelsus
자연은 빛이며, 자연을 그 자체의 빛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 보이는 자연은 자연의 가시광선으로만 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자연은, 자기 내면의 빛으로 자연을 지각(知)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초월적인 지혜의 정수(精髓:본질)를 지닌 선험적인 의학적 신안(眼)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 선험적 의학시조 파라켈수스
파라켈수스(1493~1541)는 연금술사이자 의사라고 알려진 사람이다. 본명이 따로 있지만 스스로 파라켈수스라 자처했다. 이 이름의 ‘파라’는 그리스말과 라틴말에서 ‘비슷하다·대적하다·넘어서다’ 따위 여러 뜻으로 새긴다. ‘켈수스’는 히포크라테스 의학과 알렉산드리아 의학을 집성한 저서 ≪의학에 관하여≫로 유명한 로마 때 유명한 의사이다. 자신을 ‘유명한 켈수스와 맞먹거나 넘어서는 사람’이라고 부른 셈이다.
1527년 스위스 바젤에서 교수를 하던 파라켈수스는 바젤대학 앞에 책을 쌓아놓고 불을 놓았다. 당시 의사들이 교과서로 모시던 갈레노스와 이븐 시나의 고전들이었다. 여태까지 의학의 가르침이 잘못됐으니 자기 이야기만 들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의사로서 솜씨가 좋았다. 그래서 그에게 치료받기 원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의 오만한 태도는 종종 논란을 불렀고, 높은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러 생명의 위협을 받고 달아나듯 바젤을 떠나야 했다. 매독의 특효약이라며 비싸게 팔던 유창목이 효과가 없더라는 사실을 관찰을 통해 밝혀내는 바람에 당시 유럽 정치의 막후 실력자였던 푸거 가문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다. 파라켈수스는 떠돌이로 지내다 1541년에 객사한다.
파라켈수스의 명성은 살아생전보다 지금이 더 높다. 그가 실험과 관찰을 중요하게 여기던 태도 때문이다. 그는 오래된 의학서를 해석하는 대신 현장에서 외과수술을 하던 이발사, 산속을 돌아다니는 약초꾼, 아이 받던 산파를 대학 강단에 세워 지식을 나눴다. “모든 약은 독이다, 다만 용량의 문제일 뿐”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파라켈수스는 환자에게 아편을 처방하기도 했는데, 오늘날의 진통제 처방 같은 것이리라. 파라켈수스는 당시에는 천시되던 외과수술을 직접 집도했다. 또 연금술에 매달렸는데, 하찮은 금속으로부터 귀금속을 얻는다는 통상의 연금술과 달랐다. 물질의 변화를 지배하는 자연의 원리를 실험과 관찰을 통해 이해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가열, 증류, 용해, 침전, 여과 등 물리적 화학적 수단을 통해 변화과정을 인위적으로 촉진시켜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하며, 순수하고 유용한 성분을 분리, 추출해내는 기술을 의미했다. 오늘날의 신약 개발이나 주사제 추출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래서 파라켈수스는 의학과 화학, 약학의 선구자로 기억된다.
파라켈수스는 철학, 천문학(점성술), 연금술, 그리고 정당성인 의료 윤리라는 네 가지를 기둥으로 자신의 의학의 원리를 세웠다. 첫번째 기둥인 철학은 지상의 자연을 하나의 전체로 보는 자연철학을 배우는 것이었다. 사물들과 자연의 현상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알아차림에서 의학은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일까. 둘째 기둥인 천문학 및 점성술은 인간은 소우주이며 인체의 각 부위나 장기들은 대우주의 태양이나 달 행성들과 일대일 대응 관계가 있어 심장은 태양, 뇌는 달, 비장은 토성, 간장은 목성, 담낭은 화성, 신장은 금성, 폐는 수성과 맺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태양이나 달, 행성들이 인체의 각 부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고 본 것이어서 파라켈수스 의학에서 천문학과 점성술이 의학과 관련을 맺어지게 된다.
- ‘선험적 의학’시조 파라켈수스 (2)
일전에 박우현 교수를 처음 만나면서 이분이 특출하게 밝은 빛을 띤 것을 알았다. 사람 대다수가 평범한 밝기이며 특출한 밝기인 사람이 흔치 않으므로 어쩌다 남달리 밝은 사람을 보게 되면 반가운 마음이 된다. 그래서 박우현 교수가 그간에 활동한 것을 소개한 영상 자료에서 박우현 교수의 모습이 밝은 빛을 띤 것, 그리고 또 빛운영이 시작된 2011년 4월 이후 자신이 타고난 밝기에서 변동해 점점 더 밝아지는 중인 것을 살펴보고, 이에 대해 글을 몇 편 쓴바 있다. 이 글을 박우현 교수께도 보냈는데, 필자가 한 말을 읽으셨을까?
그간에 지구별 인간 세상은 밝음이 희귀하고 빛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단절되다시피한 상황이었다. 빛운영이 시작되어서 일찍이 없었던 새로운 밝기의 빛이 비추기 시작했지만 인생들은 여전히 빛에 대해 알지 못하고 관심이 빛이 아닌 것에 향해 있다. 세상을 주도하는 지식도 필자가 말하는 진공빛과는 간격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빛에 대해 말하는 소리는 - 이 소리가 '천지본음'을 옮겨주고 있는 것이어도 - 듣기에 낯선 말로 들리기 쉽다. 하물며 이 '빛이 천지와 사람에 밝아지도록 운영한다'니! 박우현 교수가 밝은 빛을 띤 사람이고 필자가 말하는 것을 선의로 들으셨어도 아마 필자의 말이 다 들리지 않지 않았을까.
하지만 빛은 빛의 일을 한다. 인간세상에서 빛은 사람을 통로로 생명 활동하므로 어떤 사람에 빛이 밝은 것은 그와 협업해 빛의 일을 하려는 것이다. 특히 천지와 사람이 자기 밝기에 고정되어 있었던 것에서 변동해 밝아지는 변화를 일으키게 된 미증유한 시대이니 유난히 밝은 사람은 그 빛에서 일어난 행동을 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기대하는 마음도 가지고 지켜보는 중인데, 오는 9월에 ‘치료결과 발표 및 치료기술 전수 국제 세미나’를 제주에서 개최한다는 소식이 있다. 그리고 행사 안내 포스터에 박우현 교수의 통합의학 활동을 파라켈수스의 선험적 의학과 결부 지어 안내한 것을 보게 된다.
적절한 연결이라 생각된다. 파라켈수스가 말한 ‘자기 내면의 빛’은 '보이지 않는 자연’에서 유래한 빛, 곧 진공빛이고, 박우현 교수는 이 빛이 크게 밝으니 말이다.
파라켈수스가 자연을 ‘보이는 자연’과 ‘보이지 않는 자연’으로 나누어 말한 것은 이 사람이 처음인 것이 아니고 저 선사시대 철인들의 세계관이 전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참전계경 경신에 ‘해·달·별·바람·비·벼락은 모습이 있는 하늘이요, 모든 것을 보지 않음이 없고 소리를 듣지 않음이 없는 것은 모습이 없는 하늘이라. 모습이 없는 하늘을 하늘의 하늘이라 하며, 하늘의 하늘은 곧 하느님이니’라고 한 말이 가진 철학과 의미가 통한다.
‘보이지 않는 자연’은 곧 ‘모습 없는 하늘’이다. 그리고 파라켈수스가 ‘초월적인 지혜의 정수’라 한 것은 '보이지 않는 자연'에서 온 '진공빛'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자연’에서 와서 사람 안에 들어선 이 빛이 사람이 충분하게 밝지 못하고 특히 빛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한 때문에 지금 현재는 휴면 상태가 된 것에서 깨어나야 한다. ‘선험적인 의학적 신안(眼)’도 이 깨어남에서 열리게 된다.
인류사에 등장한 모든 철인들이 다 그런 사람이었다. 파라켈수스도 분명 큰 밝은이였을 것이다. 그의 내면에 밝은 빛으로부터 명철한 지혜가 솟았을 것이다. 그래서 선험적 지성이 결핍되고 단지 자신이 한 ‘경험’만을 기술한 의서는 젊은 의학도들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신안’을 깨우기엔 미흡하다고 보게 되었을 것이다. 대학 앞에 책을 쌓아놓고 불을 지른 퍼포먼스를 벌인 것은 그 때문이리라.
‘선험적’인 것은 경험하기 이전부터 인간에게 있는 것이고, 이것은 사람 안에 밝은 빛에서 올라온다.
옛사람들은 진공빛을 ‘양기(良氣)’라고도 불렀다. 5000년 전 선인 발귀리의 100글자 시가 ‘대일(大一)의 극(極)을 양기(良氣)라 한다’고 한 것에서 ‘대일’은 진공을, ‘양기’는 진공빛을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진공의 생명 활동에서 진공빛이 비추어 사람 안에 신령한 기운인 양기가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양기'는 날 때부터 청정한 마음인 양심(良心)이 되고, 또 날 때부터 저절로 아는 능력인 ‘양능(良能)’이 되고, 저절로 아는 지혜인 ‘양지(良知)’가 된다. 즉, ‘선험적’인 것은 빛이 일으켜주는 지복(至福)인 것이다.
‘선험적 의학’도 마찬가지다. 밝은이라야 이것을 알아차리게 되고 능히 터득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파라켈수스가 자신의 의학 이론으로 세운 네 가지 기둥 중 첫 번째인 ‘철학’은 ‘보이는 자연’과 ‘보이지 않은 자연’이 인간과 어떤 관계인지 깨닫는, 천지인과 그 배후의 진공이 하나로 어우러진 세계를 성찰하는 신안을 여는 것이다. 진정한 사람도 여기서 시작되고 의학 역시 이 첫 번째 기둥이 바로 섬으로써 가능해지게 된다. 두 번째와 세 번째인 천문학(점성술)과 연금술은 의학을 위한 지식과 지혜, 그리고 의료적 방법이 마련되게 하는 것으로, 이것은 ‘양지’와 ‘양능’의 활동이다. 그리고 마지막 기둥인 의료 윤리는 배우고 익히는 것이기에 앞서 '양심'의 활동으로 저절로(선험적으로) 되는 것이다.
- ‘선험적 의학’시조 파라켈수스 (3)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부모, 학교, 이웃이 모두 힘을 합쳐 교육하고 양육하고 키워나간다는 의미로, 이러한 견해는 ‘아이를 내가 키운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는 것에 비할 수 없는 열린 시각이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몸이 튼튼하고 병이 없는 상태인 ‘건강’이 가능해지고 이를 지키는 것도 단순히 본인 자신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주변 환경과 밀접히 관계된다.
이때 건강한 삶이 성립하고 영위되는 것과 연관된 ‘주변 환경’은 범위가 어디까지일까?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 그리고 건강이 성립하고 지켜지는 것에 있어서도 - 온 우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생각은 놀랍게도 저 선사시대 인류의 선조들이 하셨다. 그들은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며 왜 살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천문, 지리, 인사를 살폈다.
이것은 우주의 파동이 인체 안에까지 전해지며, 이로 인해 천지의 운행과 인간의 생명현상이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라 이해한 것이다. 이는 지구의 천체운동, 곧 시간의 흐름에 따른 운기의 변동이 인체에 영향을 끼쳐준다는 것으로, 황제내경이 ‘인신(人身)과 자연에는 하나의 통일적 정체(整體)가 있다’고 한 것도 이를 말한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부서지지 않는 하나의 전체로 존재하며, 서로 연결되어 있고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변화한다’는 홀로무브먼트(holomovement) 사상/인체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현대의 생체 매트릭스 이론과도 연관된다.
결국, 먼 천체들이 운행하여 위치가 달라지고 빛이 변하는 것은 사시음양(四時陰陽)이 바뀌어 풍·한·서·습·조·화 등의 기후가 변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 음양 승강이 한서를 만들고, 오르는 것은 우측으로 행하고 아래로 가는 것은 좌측으로 행하면서 좌우를 도는 것이 질병의 소인과 발병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명한 관찰자들은 이에 대해 살피고자 지구의 자전과 공전운동의 주기를 계산해 보고 또 세기적인 변동을 살피기 위해 태양계가 플레이아데스성단의 태양 알씨오네를 선회하는 대주기 운동을 하는 것까지도 염두에 두어 대우주로부터 인간에 끼쳐져 오는 영향력을 살폈던 것이며, 이를 통해 건강 관리를 위한 적절한 대응 지침을 마련할 수 있었다. 황제내경이 “오운 음양은 천지의 도이며, 만물의 강기이고, 변화의 부모이며, 생살의 본시이고, 신명의 기호다”라고 하여 우주 자연의 기운이 인체에 끼쳐주는 영향이 막대함을 말한 것도 그 때문이고, 동의보감에서 허준이 “의사는 운기를 알아야 한다"고 한 것도 각 사람이 오운 음양의 영향을 어떻게 받고 있는지 파악해 볼 것을 권한 것이다.
동양의학이 말한 ‘운기’는 서양의 의학에서도 중요시하였던 ‘생기’와 같은 개념이다.
히포크라테스도 ‘생기’론자였고, 점성술을 이용했다. 하늘의 생기가 각 개인에 끼친 체질적(4체액)적 특징을 파악하고자 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오운육기 산출과 목적과 방법이 다르지 않다.
데카르트의 물질주의와 기계론이 출현한 이후 생명과학과 의학은 생기론의 한계를 비판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하게 되었지만, 생기론은 18세기 몽뻴리에 학파의 대표적인 생기론자 바르떼즈의 선언처럼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학에서 가장 큰 발전을 이루었다. 이처럼 동약이 주목한 ‘운기’나 서양이 중요시한 ‘생기’는 모두 저 선사시대 철인들의 천문 지리 인사를 살핀 것의 사상적 방법론적 전승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생명현상은 대우주 천체들의 활동과 대응 관계에 있다는 천인상응사상이 발원한 곳은 저 선사시대이다. 다시 말해 천문학(점성술)은 선사시대 때부터 인류의 밝은이들이 개척한 우주적 지혜이다.
- ‘선험적 의학’시조 파라켈수스 (4)
파라켈수스도 선사시대 철인들의 세계관을 계승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가 ‘자연은 빛이며 자연을 그 자체의 빛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 것, 자연을 ‘보이는 자연’과 ‘보이지 않는 자연’이라 하여 구분한 것, ‘보이지 않는 자연은 자기 내면의 빛으로 비추어 지각할 수 있게 된다’고 한 것은 그 사상이 선사시대 철인들의 세계관과 유사한 것이다.
파라켈수스가 의학은 모름지기 철학, 천문학(점성술), 연금술, 그리고 의료 윤리라는 네 가지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창한 것도 선사시대 철인들의 세계관이 전승된 것이다.
즉, 보이는 자연(우주 자연)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자연(진공)이 있으며 이 두 세계와 자연 세계를 이룬 사물들은 서로 유기적인 연결 관계에 있다는 철학은 선사시대 철인들이 우리가 누구인지 성찰하고자 철학을 하고 자연과학적 성찰을 한 것이다. 천문학(점성술)은 인류의 선조들이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살핀 것이고 이것이 가진 해석의 차원 역시 자연과학적 성찰에 기반해 있는 앎이다. 파라켈수스가 연금술을 한 것도 오늘날의 신약 개발이나 주사제 제조를 위해 하는 일이다.
파라켈수스는 고대 지혜와 지식의 전승자이고, 이 고대 지혜와 지식은 동양의 ‘운기’론과 서양의 ‘생기’론으로 변주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은 물질주의와 기계론적 세계관이 보편화 되다시피 했지만, 단지 이런 것뿐이라면 우주를 마치 골격해부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사람을 ‘보이는 자연’의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된다.
인류가 살아가는 시대가 알든 모르든 인간은 우주의 축소판으로서의 소우주다.
또한 알아야 한다. 천지의 축소판일 뿐인 것이 아니라 천지의 배후에 존재한 진공, 곧 ‘보이지 않는 자연’이 함께 하여 삼태극으로 성립된 우주의 축소판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진공에서 온 빛이 내면의 참자아 영이 되고, 이 우주의 정신적인 차원에서 기운과 법칙이 들어와서 개아적 마음인 혼이 되고, 이 우주의 물질적인 차원에서 성분을 얻어 몸이 이루어짐으로써 이것이 육이 되어 영혼육 삼위가 일체인 삼태극적 존재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성찰이 선사시대 인류의 선조들이 후세에 전해준 지혜요 지식이다. 상고시대의 이러한 세계관이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고금동서의 철학 사상과 종교, 과학으로 비화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이와같이 아는 것은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니며 저절로 드는 생각이다.
또 한 가지 우리가 함께 알아야 할 것도 있다. 선사시대로부터 위대한 지혜와 지식이 후세에 전해지면서 종종 인류의 무지에 의해 오해되고 매도되기도 하였다는 점이다. 한 예로(파라켈수스도 대중의 무지와 편견에 맞섰으리라!), 서구의 중세에는 신약/주사제 제조를 위한 과정이기도 한 이러한 연금술이 ‘마녀’의 행동으로 오해되기도 하고, 또 정치적 종교적으로 박해받기도 하였다. 동화책에 등장한 마녀가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가열해 마법의 약을 만든 장면 등이 연금술이 매도된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고대의 지혜와 지식의 전승자이며 자연과학을 한 선진적 지식인들이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