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나 사이의 나뭇잎

선(禪), 그 밭에서 주은 이삭들(변찬린)

능 소 2024. 1. 7. 15:15

청자빛 저무는 성인(聖人)의 하늘

바람 부는 저 허공에 보이지 않는 섬세한 거미줄이 있어

학처럼 날아가는 자유혼을 은밀히 포로한다.

제신(諸神, 여러 신)의 그물, 성인의 거미줄, 사상의 철조망에 한번 걸리면 네 무슨 능력으로 벗어나겠느뇨?

도연(道緣, 도의 인연)따라 심전(心田, 마음밭)따라 혈맥(血脈, 혈대의 맥락)따라

예수의 그물에 걸리기도 하고

노자(老子)의 그물에 걸리기도 하고

석씨(釋氏)의 그물에 걸리기도 하고

중니(仲尼, 공자)의 그물에 걸리기도 하고

회회(回回, 마호메트)의 그물에 걸리기도 하고

맑스의 그물에 걸리기도 하여

틀에 굳어지고 모난 뭇 종파(宗派)의 성직자와 사상의 괴뢰(傀儡)들과 정치의 주구(走狗, 남의 끄나풀)들을 무수히 본다.

새날 참 자유한 지인(至人, 궁극적 인간)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리(定理)모양 날줄과 씨줄로 정교하게 짜인

〈종교의 그물〉, 〈사상의 거미줄>과 <정치의 낚시〉를 벗어나

무아유(無阿有: 절대 자유의 경지)'에 대붕(大鵬)이 비상하듯

성인(聖人)의 알을 까고 온 나래로 도약하여 신령한 새 땅에 소요(逍遙)하시리.

제신(諸神)과 성인과 사상,

이 치밀한 도망(道網, 도의 그물)과 영망(靈網, 영의 그물)과 레이다 망에 걸리지 않고

판 밖에 먹줄10 밖에 탈출한 참사람은 도(道)의 정상으로 진화한 지인(至人)이니라.

『선(禪), 그 밭에서 주은 이삭들』(변찬린)

10 먹줄 : 먹줄을 쳐서 낸 줄. 제4장의 4절은 ‘판 밖에 먹줄 밖에’라고 표기한다. 제4장 9절 ‘판 밖에 먹물 밖에’의 먹물은 ‘머리에 든 지식’을 벗어난 자리로 표기함으로 이 둘의 차이를 구분해서 이해하여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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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찬린의 시를 가져오는 이유는, 선생의 시편들에 내가 진공빛으로 비추어 볼 데가 많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선생이 ‘무하유(無何有,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무엇이 생겨난다)를 노래한 것은 사람과 천지가 진공에서 발생한 것을 말한 것에 다름 아니고 이는 내가 빛운영하면서 사용하는 장치를 ‘공생명(空生明)’이라 이름 부르는 까닭과도 의미가 상통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空生明(공생명)’은 ‘공에서 밝음이 생한다’고 한 것으로, 이는 진공에서 진공 자신의 빛이 발생하는 것을 가리키고자 한 것이다.

 

이 우주가 진공에서 생겨나고 진공 가운데 있으며 사물들의 안에도 진공이 편만하였다. 진공에서 유래한 빛이 사람의 뇌에 내려와서 사람의 진아(眞我)인 순수의식이 되었다. 인간의 시조 이후 인생들이 삶을 살면서 순수의식의 깨끗한 백지에 세상을 산 자취인 흔적들을 그림 그렸지만, 진공의 빛이 광명하게 비추면 그늘진 흔적들이 사라지고 본래면목(本來面目)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본래로의 회귀, 말하자면 ‘회개’요, ‘참회’요, ‘복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성경이 비유한 ‘탕자의 귀가’도 이런 의미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성경에서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창조에 앞서 빛이 있게 하셨고 이는 ‘하나님은 진공이시다’고 안 선(僊)의 세계관에서 보면 사람과 천지에 앞서 진공이 진공 자신의 빛을 비춘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진공이 사물을 비추어 진공 자신의 내용을 전하는 진공의 생명 활동이지 않을까. 바로 그러할 때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의미가 명징해지며, 또한 이론 너머의 실재, 곧 과학적 사실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진공에서의 우주 발생이야말로 ‘무하유’의 원본이며 ᄒᆞᆫᄇᆞᆰ선생이 시의 형식을 빌려 그 태초의 원본을 노래한 것이라고 읽어졌다. 그리고 또한 선생이 선(禪)의 눈으로 성경을 읽고 만법을 회통하는 무애(無碍)의 정신을 펼쳐보였듯이 나도 진공빛의 ‘광명’파장으로 비추어 ᄒᆞᆫᄇᆞᆰ의 무애가를 들어볼 수 있기에 관심 가는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