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나 사이의 나뭇잎

밝은 분 사례

능 소 2024. 6. 7. 14:54

감사합니다, 백원장님.

주님보시기에 아직도 못나고 부족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과의 동행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

우리들의 희망이고 인생의 여정 길 입니다.

그래서 더욱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소외되고 무시된 가난한 사람들을 어여삐 여겨

우리자신의 시간을 내어 봉사하며 도와줘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너무 큰 사랑을

받았으니까 거져 나누어줘야 합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자신의 능력이 아닌 은혜의 선물로 주심을

말입니다.

신앙과 삶의 행적에는 예수님의 평가가

우리에게 곧 주어집니다.

항상 정동의 마음자세로,

빛과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을 카이아즘적 접근법으로 깨닫고,우리의 정신적인 신앙적 마음상태를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에

주파수를 맞추고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항상 영접하게 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수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유럽에서.

..........

카톡방에

박우현 교수님이 밝으신 분인 것을 이야기한 글을 링크해 올렸더니, 이런 귀한 답신을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교수님은 안에 빛이 밝아서 그 밝음에서 우러나는 영성이 활동하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종교인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영성으로 쉽게하게 되는 것이 종교 활동이라는 거죠.

종교 활동은 더 밝을수록 더 많이 심오함에 접근하는 결과로 이어져서 출중한 모범이 됩니다. 물론, 큰 밝은이가 빛에서 우러난 활동을 하는 경우는 빛의 초월성으로 인해 종교인들이 흔히 하였던 일들에서 초월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차원에 나아가기도 합니다.

말씀 드리지는 못했지만

나는 종교를 넘어 빛운영 활동을 하자고 초대하고 싶습니다.

내가 '빛이 밝은 사람 사례'라 하여 교수님 이야기를 글로 쓴 것도 그래서 한 일이고요.

늘 말하지만, 빛운영은 누가하든지 밝아지는 변화가 실제 상황으로 일어납니다. 빛이 운영자를 통해서 빛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종교는 좀 다르지요. 고금동서 위대한 종교들은 빛을 가리켜 말하였습니다만, 종교를 신행한 때문에 종교인들이나 그들이 산 세상이 보다 밝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미약한 빛이 창대해지는 식으로 성장하는 개벽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 실험적인 관찰로 확인해 볼 수 있게 설명할 수 있고 입증할 수 있습니다.

오직 작은 겨자씨같았던 밝기가 큰 나무로 자라서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게 되는 것 같은 빛의 성장이 빛운영 활동으로 인해 지금 여기서, 즉각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리고 밝아진 빛에 동화되어 진정한 밝은이로 변모하도록 도울 수 있는 '빛을 자기화하는 명상 기법'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내가 관찰하고 확인한, 그리고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나름 애 쓰고 있는 것을 남다른 밝기이신 박우현 교수님과도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약은 못하고 있지만,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

하여,

지금으로서는 좀 아쉽습니다.

그리고 천지간에 신령한 영장인 인생들이 사는 한, 큰 밝은이는 모름직이 하늘이 낸 귀한 인재이기에

그리고 밝은이라야 빛의 일을 할 생각도 내는 것이 이치이기에

교수님이 빛운영 이후 더 크게 밝아지고 있는 중인 것이 점차 더 가속되기 바라며

빛의 송가, 광명송을 합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소서!"

빛이 밝은 사람 사례 - https://os-m.tistory.com/m/entry/%EB%B9%9B%EC%9D%B4-%EB%B0%9D%EC%9D%80-%EC%82%AC%EB%9E%8C-%EC%82%AC%EB%A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