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권 : 빛의 확산/2부 1장

식물의 진공빛

능 소 2022. 8. 10. 12:32

 

 

빛운영 전에 사람의 모습에서 관찰되는 진공빛은 그 밝기가 3000~9800조였다. 극소수였지만 진공빛의 밝기가 5인 사람도 있었다. 이는 사람 개개인의 밝기 차이가 매우 크다는 의미이다. 이에 비해 빛운영 전 지구상의 온갖 생물 과 개체는 모두 18 이하의 밝기 범위에 있었다.

 

사람의 경우 자기화된 밝기가 9800조는 되어야 깨달음이 촉발되는 경험에 이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빛운영 전 사람 대다수는 밝기 3000만이었기 때문에 지식 차원의 이해가 가능한 정도였다. 이 상황과 비교하면 지구상 동물들이 18 이하의 밝기 범위에 있었던 것이니, 이는 영성 활동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삼일신고』「진리훈에 이런 말이 있다.

 

人物同受三眞하니 曰性命精이라 全之하고 偏之니라.

인물이 동수삼진하니 왈성명정이라 인은 전지하고 물은 편지니라.

 

여기서 ()’은 곧 공성(空性), 신성(神性), 영성(靈性)을 말한 것이고, 이런 말들이 가리킨 것은 진공빛이라고 뜻을 새기면, ‘사람은 진공빛이 밝게 받았고 동물들은 밝음이 부족하게 받는다고 말한 것이 된다. 필자는 그렇게 읽는다.

 

 

식물은 인간이나 동물과 사정이 다르다.

 

식물들의 모습도 빛을 띠었지만 식물들은 빛을 자기화해 가진 것이 없다. 식물들의 안팎에도 진공빛이 편재했지만 이는 햇빛과 대기가 띤 진공빛이 식물들의 안팎에도 분포한 것이지 식물들이 자기의 고유한 밝기로 가진 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빛운영 전 태양과 지구의 진공빛 밝기가 5였을 때 지구상의 식물들은 과 개체를 망라해 모두 진공빛의 밝기가 5였다. 그랬다가 빛운영한 것에 따라 햇빛과 대기의 진공빛이 밝아지게 되자 식물들도 덩달아 밝은 빛을 띠게 되었다.

 

여기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식물들은 왜 인간이나 여타 동물과 다른 사정일까? 이와 관련해 돌아볼 것이 있다.

 

부처님은 뭇 존재들이 선악의 업인(業因)에 의해 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에 윤회하지만 유정(有情)은 언젠가 성불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였다. 불교에서 유정은 마음을 가진 생명체이다.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함식‘(含識, 의식을 가진 존재)이라고도 한다. 불교의 이런 사상에서 보면, 장차 부처가 될 수 있는 원인이 내재해 있는 존재들이 온 누리에 무수히 많은 것이 되는데, 이상하게도 불교는 유정의 범주에서 식물들은 제외했다.

 

불교는 식물을 무정(無情)’, 즉 심령이 없는 종류로 분류했다. 산천초목(山川草木)이라 한 말에서 보면, 초목을 산천과 같은 것으로 일컬었고, 초목와석(草木瓦石)이라 한 말에서 보면, 초목을 기와나 돌과 같은 것으로 본 것이다. 인간의 상식에서 보면 식물도 생명체이고, 아마도 식물에도 마음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무정으로 분류할까?

 

중생에 상응하는 산스크리트어는 사뜨바(sattva)있음’, ‘존재하는 것을 가리킨 말이다. 그래서 이런 뜻에서 본다면 식물도 사뜨바에 해당한다. 하지만 심령을 가진 생명체인가를 구분하면서 식물들은 제외된다.

 

불교의 이러한 중생관은 불교 역사에서 많은 이견을 낳았다. ‘유정만이 부처가 된다고 한 부처님의 설법을 넘어선 것 같은 목소리로 산하대지가 법문을 설한다라고 말하는 사상도 출현했다. 송나라 때 문장가 소동파가 남산이 내게 보여주더군 / 계곡의 물소리는 부처의 음성 / 산 빛깔은 그대로 진리의 모습 (南嶽示無情說法 溪聲便是廣長舌 山色豈非淸淨身)”이라 읊은 것도 그런 것이다.

 

전해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크게 자성전승(自性傳乘)과 변상전승(變相傳乘)으로 나눌 수 있다. ‘자성전승은 곧 마음의 공성(空性)’이고, ‘변상전승은 곧 생명의 안에 성분이 진공인 빛이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를 사람마다 안에 업장에 가려진 정광심(淨光心)이 있다. 이 정광심이 불과(佛果)를 성취할 수 있는 인()이다고 하셨다. 예수님도 사람 안의 빛을 가리키셨다. “네 안에 빛이 어둡지 아니한지 보라”.

 

그런데 단지 이라 가리켜 말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반드시 그 밝기가 진공의 본래 밝기인 무량광이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빛이 있지만 분량이 미세하면 빛의 지성이 분명하게 일어나지 못하고,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식물들은 빛이 자기화해 가진 것이 아주 없어서 식물 스스로 빛의 지성과 교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식물인 나무는 목공이 깎은 것에 따라 목불이 되고, 부처처럼 미소 지을 수는 있지만, 그 어떤 목불도 성불하지는 못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불교의 세계는 하나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나무를 깎아 만든 미술작품(불상)을 법당에 전시한 불교가 나무(식물)는 부처가 되지 못합니다!”하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백순임 명상화 <화병>

'제 2권 : 빛의 확산 > 2부 1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물들이 띤 진공빛  (1) 2022.08.09
버락 오바마의 사례  (0) 2022.08.09
진공빛의 차원  (0) 2022.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