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권 : 천지의 본음/1부 1장

세 종류의 빛과 빛운영

능 소 2022. 8. 14. 17:31

 

 

 

이 우주에 존재한 빛들을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1). 물질이 낸 빛. 2). 생명체의 정신 활동이 띤 빛현상. 3). 이 우주의 근원적인 배경인 진공이 띤, 성분이 진공인 빛.

 

이 우주는 갖가지 물질적인 현상과 온갖 정신적인 현상이 융복합된 세계이며 이것들이 낸 물질 성분의 빛과 정신 성분의 빛이 충만한 빛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우주는 진공 중에 위치하여 있는 것이며 이 우주를 이룬 만물의 안에도 진공이 들어차 있어서 진공이 띤 성분이 진공인 빛또한 어디나 편재해 있게 된다.

 

해달별이 빛을 내고 촛불이나 전등을 켜면 밝아지는 것은 물질들이 낸 빛이다. 좋은 소식을 전해 들으면 표정이 환해진다거나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썰렁하던 교정이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고 한다면, 이런 표현이 환하다고 한 것은 생명체가 정신 활동해 낸 것으로, 이것은 정신 활동시 활동하는 파동 현상이므로 정신 성분의 빛이라 할 수 있다.

 

물질적인 빛과 정신적인 빛과는 종류가 다른, 성분이 진공인 빛이 있다.

 

아무런 형체도 없으면서 밝고 뚜렷한 이것(無一箇形段歷歷孤明 <전심법요(傳心法要)>. 이 표현이 말한 빛은 모든 것들의 궁극의 질료인 진공 성분인 것이다. 선사들이 공적영지의 광명도 진공빛을 말한 것이고, ‘회광반조(回光返照)’ - ‘빛을 돌이켜 비추라’ - 한 것이나 예수께서 네 안에 빛이 어둡지 아니한지 보라고 한 것도 진공빛을 말한 것이라고 알 수 있다.

 

물질과 정신의 빛은 신학의 표현을 빌리면 피조물이 낸 빛이고 철학의 표현을 빌리면 오온(五蘊)’의 빛이다. 이에 비해 진공의 빛은 신의 빛이고 반야(般若)의 빛인 것이다.

 

인생들은 갖가지 물질과 여러 정신 현상을 접하고 살아가는 중이므로 이런 것들과 친숙하지만 진공의 빛이란 것은 개념부터 낯설다. 그리고 진공은 형체도 질량도 없어 그 빛이 존재한 것도 모습이 없고 소리가 없어 인생들의 시청각으로 알기 어렵다. 하지만 결코 모르지 않아야 하는 것이 진공빛이다.

 

사람들은 경전에 적힌 말을 진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진공빛에 대해 설교, 비유, 은유, 상징한 것이나 이에 대해 인생들이 신앙 활동하여 일으킨 심리적인 빛을 진공빛을 동일시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고 표현의 차이를 넘어 진공빛이 존재한 것에 대해 눈을 떠야 하고, 이 빛이 천지와 사람에 두루 밝아지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알아야 하고 아무쪼록 이 빛이 우주적인 크기로 밝아지도록 힘을 보태는 활동을 해야 한다.

 

 

 

-창세기와 만나다

 

 

로널드 헨델은 저서창세기와 만나다에서 신이 다가올 미래의 의인을 위해 빛을 따로 남겨 두었다는 미드라쉬의 해석을 인용한다.

 

라쉬의 성서 구절에 대한 해석은 빛이 창조 첫째 날 창조되지만 태양은 4일째가 되어서야 창조되는 창조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라쉬는 첫째 날의 빛이 넷째 날 햇빛과 달라야 하며 신이 이 태초의 빛을 종말이 올 때까지 감춰놓았다고 추론한다. (158P)

 

라쉬의 해석은 플라톤식 사고가 들어있는 종말론적 해석이다. 그의 성서 구절 해석에 따르면 미래 세계에서는 의인들이 초월적인 빛의 영역에서 살아간다.

 

필자는 라쉬의 이런 해석이 낯설지 않다.

 

이 책 빛운영에 관한 보고서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필자는 이 우주가 1379900만 년 전에 일어난 빅뱅에서 출현했으며 이 우주 발생은 엄청난 빛에너지 방출이 있으면서 시간, 공간, 질량이 있게 된 것이라는 현대우주론의 판단을 인용했다. 그리고 이 우주론에서 빛에너지는 창세기의 이야기에서 빗대면 넷째 날의 빛이 이제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빅뱅이 방출한 빛에너지가 팽창하고 변화한 것에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이 우주의 모든 것이 출현했다. 그리고 이 가시적인 우주의 배경에는 여전히 이 우주가 아직 창조되기 전부터 있었던 태초의 빛의 차원이 존재해 있다. 그러나 이 태초의 차원은 신의 뜻에 의해 인간의 인식 너머에 숨겨져 있었다.

 

별빛이 그 너머의 참빛의 파편을 전달한다.

 

초창기 영지주의(=과학적 시각. 필자 ) 기독교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이 말은 가시적인 우주의 배후에 진공빛의 차원이 존재한 것과 관계된다고 필자는 읽는다. 그리고 파편이라 한 것은 진공 차원의 광명이 감춰지고 그 잔광이 남은 상황을 말했다고 보게 된다.

 

이 우주의 출처는 진공이고 진공이 만물의 존재를 떠받쳐 주고 있다. 그리고 생명 활동의 안팎에 진공빛이 함께한다. 이 점은 있는 그대로의 실상이며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이다. 이 세계의 존재는 인간의 신념이 대신하지 못한다.

 

이런 이해에서 필자는 종말이 올 때 감춰놓았던 태초의 차원이 알려진다고 깨닫게 된다.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2:17

 

종말이 올 때까지 태초의 빛을 감춰놓았다는 것과 종말이 이른 때에 감추었던 만나를 준다고 한 것은 그 맥락이 통해 있는 것이며 종말의 때는 인류사가 21세기에 이른 지금이라고 필자는 느낀다.

 

빛운영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방법이다. 그리고 디지털 인프라와 과학적 장치가 활용된다는 점에서 빛운영은 금세기라고 하는 인류사의 특정 시기에 출현할 수 있었다.

 

빛운영에 응답해 천지인에 진공빛이 밝아지는 이 초유의 현상이 과연 신이 감춰놓은 태초의 빛이 이 시대를 비추는지는 사람마다 안에 진공빛이 깃들어 있는 것에서 올라온 지혜가 알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수많은 이들이 빛운영자로 활동하는 날이 와서 진공빛이 밝아진 응답이 우주적인 크기가 되고 사람들이 그 초월적인 빛의 영역에서 살아간다고 필자는 믿는다.

 

 

 

 

-연꽃 공양

 

 

진공은 상대가 끊어진 절대의 세계이고,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은 투명한 세계이다. 진공 세계의 맑음에는 삼라만상이라고 하는 다양성의 세계가 존재하였다. 하나의 진리지만 하나는 획일적이지 않은 까닭에 진공이라는 하나의 현존으로부터 혹은 부처의 이야기가, 혹은 하느님의 창세 이야기가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연화생(པདྨ་འབྱུང་གནས, 蓮華生)'은 연꽃에서 난 부처라는 뜻으로 티벳의 불조 파드마삼바바의 별명이다. 그는 8세기 인도 사람으로 부탄과 티벳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미타불의 화신이라고도 알려진 사람이고 < 사자의 서> 등의 저서가 현대의 우리에게도 전해졌다.

 

파드마삼바바는 인도에서 불도에 통한 저명한 조사로 활동하던 당시 특이하게도 불교대학에서 과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가 강단에서 주창한 것은, 오늘날의 양자역학적 세계관과도 의미가 상통하는 내용이지 않았을까. 후세에 전해진 그의 어록에서 '진공에너지'라는 표현이 등장해 있는 것을 보아도 나의 이런 추정은 근거가 있다.

 

진공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무()와도 동일시된 개념이다. 나가로주나의 공사상도 진공을 사유하고 넘어선 것이다. 현대물리학에서는 지난 2005년에 진공을 우주의 발생과 팽창에 관여한 '진공에너지'라고 공인했다. 이런 점들에서 보면 진공을 진공에너지라고 인식한 파드마삼바바의 견해는 선진적이다.

 

현대우주론에서 우주배경복사는 진공 세계의 파장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그로부터 출현하게 된 빅뱅에서 번쩍이게 된 빛의 잔광이라고 정의된다. 나는 이 복사에서 진공 성분의 빛을 포집해서 이를 빛운영을 위한 공명 인자로 사용 중이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진공의 빛은 실재한 것이며, 취득, 저장, 복제, 전사가 가능한 것이다. 필자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같이 밝아지고, 이 빛이 밝아지도록 응답을 유도하는 빛운영도 관심을 가지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필자에게 파드마삼바바의 진공에 관한 성찰이 그 어떤 경전의 말씀보다 친숙하게 가슴에 와닿는다. 그는 진공을 철학적으로 사유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이것의 생명력 - ‘에너지’ - 와 교감하고 소통하여서 이로부터 깨달음이 촉발하는 것에 관심을 쏟았을 것이다.

 

진공은 있음과 없음이 하나를 이룬 미묘한 것이다. 그래서 진공이 존재한 모습인 진공 성분의 빛은 인생들이 눈 뜨는 동안 실재와 비실재 모두에서 피어난다. 파드마삼바바가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추앙된 것에서도 연꽃이 피었다. 아미타경에 나와 있는 연못 비유 - ‘극락세계에 온갖 보석으로 장엄된 연못이 있는데, 거기에 여러 가지 빛깔의 연꽃이 피어서 파란 연꽃은 파란빛으로 빛나고 흰 연꽃은 흰빛으로 빛난다에도 투명하게 비어-있는 밝음이 비춘다.

 

 

백순임 명상화 <연> (116.7x90.9 Acrylic on Canvas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