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240

공자의 마음에서 연속된 것

공자는 제자들을 대동하고 제후국을 수십 년이나 떠돌며 자신의 도덕 사상과 학문을 기반으로 정치를 펼쳐줄 군주를 찾았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공자를 끝까지 따르던 제자들은 스승의 실패와 좌절을 지켜보아야 했다. 기원전 492년, 60세의 공자는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싣고 다시 정나라로 향하지만 중간에 제자들을 놓쳐 혼자가 되고 만다. 갈 곳 없는 그는 외성의 동문 밖에 서서 제자들이 찾아와 주기를 기다린다. 제자 자공이 스승의 행적을 찾다가 지나던 정나라 백성에게 공자의 행적을 수소문하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상반신은 그런대로 성인의 기상이 보이지만 하반신은 집 잃은 개처럼 풀이 죽은 사람이 동문 밖에 서 있던데, 그 사람이 당신이 찾는 사람일까요?” 뒤에 공자를 만나서 자공이 자기가 들은대로 ..

신발 털기

​ 아담의 타락이라 상징된 사건으로 인해 인생들은 영이 자아 주체로서 혼육을 부리는 구조였던 것에서 일대 착란이 생겼다. 영이 자아의 위상을 상실하고 혼이 자아로 동일시되어 살아가게 된 것이다. 성경은 이를 선악과로 인해 지혜가 생겼다고 하였다. 천지와 사람이 있기 전에 하느님이 빛 가운데 계셨고, 이 빛에서 천지가 나왔다. 하느님은 천지의 먼지로 사람을 만들고서 사람의 안에 당신 자신의 빛을 넣으셨다. 이 빛은 하느님 자신의 영생하는 생명이고, 사람이 이 빛을 가지게 됨에 따라 이 빛은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아담의 타락은 하느님이 사람 안에 있게 한 빛을 잃고 먼지로 돌아간 일이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느님의 빛으로 돌이켜 회복하는 것이다. 유대 사람들에게는 신발에서 먼지를 터는 풍습이 있었다. 이 ..

양명심학의 치양지

왕수인(王守仁)이 살았던 중국 명나라 때는 학자들이 대부분 주자학을 공부했다. 주자는 중국 송나라 때 학자로 공자의 가르침을 훌륭하게 정리하고 해석해 중국 사람들은 물론이고 조선의 많은 선비들도 그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따랐다. 주자는 공부의 시작이랄까 바탕이랄까 하는 것으로 ‘격물치지’라는 말을 썼다.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사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격물) 지식을 넓힌다(치지)는 것. 격물과 치지는 사서(四書) 중 하나인 대학(大學)에서 밝힌 도를 실천하는 팔조목에 속하는 것이다. 학파에 따라 격물의 목적은 영원한 이치에 관한 우리의 지식을 넓히는 데 있다고 하면서 치지가 격물보다 먼저라고 생각하였거나 오히려 격물이 치지보다 더욱 먼저라고 견해를 달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하여 주자는 인간의 마음은 영특..

선시(禪詩)의 신광(神光)과 빛운영

​​​ ​ ​​​​​​​​​​​​​​​​​​​​​​​​​​​​​​​​​​​​​​​​​​​​​​​​​​​​​​​​​​​​​​​​​​​​​​​​​​​​​​​​​​​​신묘한 광명 어둡지 않아 / 만고에 아름다운 길이 되나니 / 이 문에 들어오려거든 / 아는 체 분별심을 두지 말라. (神光不昧 萬古徽猷 入此門內 莫存知解) 원(元)나라 때 사람​ 중봉명본(中峯明本)의 신광송(神光頌), 곧 신령한 빛을 읊었다는 것이다. 여가서 이 시의 저자는 불교의 선사이니 신공이란 곧 불성(佛性)을 말한 것이겠고, 필자가 읽기엔 직설해 진공빛을 가리킨 것이다. 현대의 과학자들이 토션장이니 스칼라파니 하여 말하는 것과 이웃 사촌쯤은 되는 것이라고 보인다. 중본명본은 ‘이 문에 들어오려거든 분별심을 두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는 빛..

아우구스티누스의 ‘조명’과 빛운영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기독교 천년 제국의 기틀을 세운 신학자이자 성직자(주교)로, 그의 신학의 골자인 조명설은 플로티노스의 빛 철학을 통해 선사시대의 ‘광명’ 사상으로부터 영감받은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처음에 인간은 이성으로 진리를 찾아 나선다. ​​우리는 세상을 이룬 감각적인 사물 속에서 진리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사물은 변하고 지나가서 결국 없어지므로 우리는 그것들에서 진리를 찾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이번에는 우리 자신의 안으로 들어와 진리를 찾게 된다. 우리의 안 – 즉, 의식 속 - 에는 감각적인 사물들의 인상(印象, imago)들과 형상(形相, forma - 본질)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쉽게 변해 없어지는 감각적 사물보다는 오래..

성경이 말한 빛들과 빛운영

성경의 첫 장에서 빛이 언급된다. 빛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기에 모든 이야기에 앞서 말해진다. 사실은 그 이상이다. 빛은 처음 시작과 새로운 시작을 연다. 새로운 것이 다 빛에서 나온다. '빛'이라 하여 같이 이름 부르지만, 조물주의 빛과 피조물의 빛이 다름을 새겨 알아야 한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이 빛은 조물주 자신의 빛이다. 이 빛이 있고서 하느님이 첫 창조를 하셨다. 다시 하시는 새 창조도 이 빛으로 하신다. ‘하느님은 진공이시다’는 앎이 명료하면 피조물의 빛과 혼동하지 않게 된다. 창조의 넷째 날 태양이 낮을 밝힌 것과 여섯째 날 사람이 있게 되어서 사람의 생체가 띤 빛과 마음 활동이 내는 빛이 있기 전에서 ..

이데아와 빛운영 2

​ ​​ 동굴 밖으로 나와 태양을 본 사람은 자신이 지금까지 동굴 안에서 본 것은 그림자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 그는 ‘이데아’의 환한 빛으로 나아갈 수 있다. ​ 그러나 플라톤의 동굴 비유에서 그 사람은 동굴 속으로 되돌아가서 바깥의 태양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린다. 이 사람의 이러한 선택은 동굴 비유를 빛나게 하고 철학의 존재 이유를 밝힌다. 어둠은 빛 속으로 나아가서 소멸하지만, 빛은 어둠에 다가서고 어둠의 안으로 들어서는 선택과 행동을 하여서 어둠을 이기니 말이다. ​ 선사시대의 철인들은 모습이 없는 하늘·하느님의 광명이 인간 세상을 비추고 빛이 사람을 옷 입어 와 인생에서 빛의 일을 한다는 – 하여야 한다는 - 사상을 가졌다. ​ (모습 없는 하늘·하느님의) 신이 내려와 : 一神降衷(일신강충..

이데아와 빛운영 1

화이트헤드는 플라톤의 저작이 후대 철학의 일반 개념들 형성에 풍부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뜻으로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플라톤은 이데아(idea)를 영원하고 불변하는 사물의 본질적인 원형(原形)이라 하였고, 구체적인 현실의 사물은 이데아의 모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은 끊임없이 변화해 일시적인 속성을 지니지만, 이데아는 불변하며 항구적인 속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철학자는 가시적인 사물의 세계가 아닌 사물의 본성과 원형에 대한 인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한 것이다. 이런 견해는 필자가 보기엔, 선사시대 철인들의 세계관과 뜻이 통해 있다. 이를테면, 플라톤이 이데아를 ‘영원하고 불변하는 사물의 본질적인 원형’이라고 한 것은, 천부경이 ‘무시일..

플로티노스, 고대의 빛을 성서에 전하다

플로티노스(205년~270년)는 고대 철학의 마지막 부흥기를 이룬 위대한 철학자로, 빛이라는 개념으로 자신의 형이상학과 미학을 이야기한 ‘빛의 철학자’로 이야기된다. 플로티노스 철학의 특징인 빛과 빛의 유출에 대한 지식은 저 고대로부터의 전승이다. 빛은 세상이 생기기 전에서 비추어와 인류의 시조들을 비추었고, 인류의 시조들은빛의 생명 활동에 동화되어 빛의 광휘에서 우러난 지성의 정신문명을 열었다. 인류의 시조들에게 빛은 진리였으며, 인간의 밝은 이들은 빛과 동행하는 것을 통해 신의 지성과 거룩함을 공유하였다. 그때는 역사 이전의 영적 황금시대였다. 한 시대가 저물어 사람들의 마음에서 빛의 신성한 광휘가 잦아들던 즈음에 플로티노스가 태어나 활동했다. 그는 빛나는 사람이었고, 그의 빛의 철학은 고대에서 전승..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갈리아의 새

부엉이는 눈이 크고 밝아서 사람이 볼 수 있는 빛의 100분의 1 정도에서도 사물을 정확히 식별한다고 한다. 그래서 부엉이는 모두가 잠든 밤에도 홀로 깨어서 진실을 볼 수 있는 지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크고 밝은 눈으로 세상 구석구석을 살펴서 신에게 세상의 동정을 알리고, 또 신의 깨달음을 세상에 전달하는 전달자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된 것도 그 때문이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는 황혼 녘에 산책을 즐기는데, 항상 자신의 부엉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변증법으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자신의 저서 『법철학』 머리말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는, 후세에 유명해진 말을 하여 이후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철학을 상징하는 말로 ..